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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다중 위기’ 시대가 지났다는 생각은 자유주의적 단견이다

최근 몇 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는 동안 가장 확실한 안내자 중 한 명은 좌파 자유주의 역사가인 애덤 투즈였다. 그는 현 위기의 경제적, 생태학적, 지정학적 차원을 명민하게 포착했고, 이를 통칭하기 위한 표현으로 ‘다중 위기’라는 말을 대중화시켰다. 매우 널리 쓰이고 있는 표현이 됐다.

트럼프야말로 다중 위기의 현신이다 ⓒ출처 백악관

그러나 이제 투즈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SNS에 올린 글에서 ‘다중 위기’ 개념이 여전히 유효한지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 2.0 첫해의 국제 상황을 묘사하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 직관적으로는 별로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이다. 모든 증거는 기후 혼란이 가속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제국주의간 경쟁도 완화 조짐이 없다는 것은 중국의 최근 열병식이나 유럽의 재무장을 보면 알 수 있다.

투즈가 다중 위기 개념의 유효성을 회의하게 된 데에는 모든 것을 자본주의 구조에서 비롯한 객관적 과정들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부분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현 상황을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은 이유 하나는 지금의 파열들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이나 도널드 트럼프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려 하는 것은 “매우 고의적인 공세적 행위”라는 것이다.

역사 변동에서 인간의 의식적 행위가 중요한 요인이라는 투즈의 지적은 당연히 옳다. 그러나 투즈는 나치 경제에 관한 탁월한 책을 쓴 바 있다. 그런 만큼 그는 히틀러 정권이 자행한 범죄에서 이데올로기적 필요, 관료적 경쟁, 구조적 압력이 서로 맞물려 있었음을 잘 알 것이다.

투즈는 SNS에 올린 글에서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역사적 융합을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요약했다. “트럼프는 ‘일국 차원의 다중 위기’가 미국에서 인격화한 것이다. 트럼프는 다중 위기의 현신이다.” 문제는 투즈가 이런 생각을 충분히 진척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투즈의 문제는 위기 개념 자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투즈는 이렇게 설명한다. “(위기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 의학 교리에서 기원한 것으로,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도달했을 때를 가리킨다.”

그래서 지금의 환자는 누구인가? 투즈에게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규칙 기반 질서”이고, 그 환자는 현재 내부적으로는 트럼프와 극우에 의해,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질서 고장 증후군”이라는 말로 다중 위기 개념을 설명하는 시도를 우호적으로 인용한다.

투즈는 이 질서의 자체 방어 능력이 매우 무능하다는 것에 의아해하고 또 좌절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는 트럼프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을 장악하려 하는데도 금융 시장이 이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고 있음을 거듭 언급한다. 그리고는 결론을 맺는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현재 상황은 사정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위기는 모두 결국 두 가지 결말 중 하나를 맞이한다. 환자가 회복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투즈는 의심할 바 없이 매우 명석한 사람이지만 이 말은 매우 혼란스럽다. 첫째, 다중 위기 개념이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위해 꼭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2020년에 “위기의 다중적 차원 — 생물학적, 경제적, 정치적”에 관해 쓴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위기를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위기로 설명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재난의 새 시대》[국역: 《재난의 시대 21세기》, 2024, 책갈피]에서 펴밝혔고, 자유주의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이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더욱이 트럼프가 신자유주의를 폐기했다는 생각은 일면적이다. 분명 그는 신자유주의가 조성하는 데 일조한 분노로 사람들을 결집해서 대선에서 승리했고, 관세 부과 등 경제 전반에 정치적 통제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그가 하고 있는 일(감세와 지출 삭감, 규제 완화)은 완전히 신자유주의적이다.

지난주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계 고위 경영진이고 오랫동안 민주당을 후원해 온” 인물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이렇게 실토한다. “나는 트럼프가 하고 있는 일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내가 트럼프 정책의 커다란 수혜자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은 내 세금을 깎았고, 내 회사로 유입되는 현금 흐름을 크게 늘렸고, 경기 부양 자금을 시장에 쏟아넣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자산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들로 금융 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승은 거대 기술 기업과, 인공지능이 이윤을 잔뜩 안겨 줄 것이라는 희열감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것이 과거 철도, 자동차, 인터넷처럼 거품일 수 있다는 의심은 최근 테슬라 이사진이 일론 머스크에게 1조 달러 보너스를 제안했다는 사실로 말끔히 사라졌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 역자] 거품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트럼프가 미국 자본주의를 안정화시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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