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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에 맞서 연준 독립성을 지켜야 하나?

적의 적은 우리편이 아니다 트럼프의 권력 집중에는 맞서야 하지만, 연준 ‘독립성’ 사수는 저항의 깃발이 될 수 없다 ⓒ출처 백악관

미국 도널드 트럼프는 연방 정부의 주요 기관들을 모두 장악한다는 계획을 완수하려 한다. 그동안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이에 저항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이 경기 부양에 필요한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고 있다며 그를 “얼간이,” “멍청이”라고 비난했다.

지난주 트럼프는 연준 이사 7명 중 한 명인 리사 쿡을 모기지 대출 서류 위조 혐의를 이유로 해임했다. 트럼프의 의도는 명약관화하다. 쿡을 다른 인물로 교체하는 데 성공하면 트럼프는 연준 이사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트럼프는 말한다. “우리는 곧 다수파가 될 것이다. 이는 무척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격분한 자유주의자들은 쿡을 방어하고 나섰다. 쿡 자신도 변호사를 고용하고 트럼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우리는 모두 리사 쿡”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다소 호들갑스럽다. 트럼프 정부하에서 훨씬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특히, 이민세관단속국(ICE) 깡패들에 의해 구금되고 추방된 수많은 이주민들이 그렇다.

자유주의자들은 트럼프가 연준을 장악하려 드는 것에 특히 분노하고 있다. 1913년 설립된 연준은 경쟁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지 않도록 제어하고, 역사가 제임스 리빙스턴의 말을 빌리면 “금융 시스템이 … 대기업들의 협력에 기초한 투자 체제를 지휘하는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고안됐다.

이를 위해서 연준은 선출되는 정치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했다. 1950년 연준은 법적으로 정부와 독립적인 기관이 됐다. 쿡은 조 바이든이 임명했고 그의 임기는 대통령 임기의 4배인 16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연준 의장들은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라는 압력을 종종 받았는데, 대표적인 대통령으로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있다.

이런 사정은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 변했다. 진정한 시발점은 1979년 10월 폴 볼커가 만성적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대대적 통화 긴축을 추진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금리와 달러 환율이 치솟아 세계적 경기 후퇴를 낳았다. 이는 미국 노동계급의 투쟁성을 꺾었고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일제히 파산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아무튼 잡혔고, 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신자유주의의 핵심 교리가 되는 데에 일조했다.

그 교리의 핵심 가정은 선출되는 정치인들이 금리 조정을 담당하기에는 유권자들의 변덕스러운 요구에 너무 쉽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은 전문 기술자들에게 맡겨야 하고, 이를 위해 중앙은행장들은 정치적 책임을 일절 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런 가정에 기초해 설립됐고, 영국 중앙은행도 금리 조정 권한을 갖게 됐다.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이 이끈 이 현명하신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어마어마한 초국적 금융 거품을 키우는 것을 방치했다. 2007~2008년에 거품이 터졌을 때 세계경제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다.

역설이게도, 2007~2008년 경기 폭락의 여파 속에서 중앙은행장들은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다.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 경제 관리자가 됐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허상이 무색하게도, 중앙은행은 정치 지도자들과 그 외 지배계급과의 밀접한 조율 하에 움직인다.

연준의 애초 설립 의도에 따라 중앙은행들은 경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금융 시스템에 주입하는 데 골몰했다. 그 결과 주식, 채권, 부동산 등 금융 자산의 가격이 꾸준히 올랐다. 부자는 더 부유해졌다. 반면 평범한 사람들은 경기 폭락과 뒤이어 은행들이 요구한 긴축 정책의 결과를 감당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팬데믹이 지나고 인플레이션이 왔을 때 이를 예상하지 못한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들의 목표는 실업률을 높여 실질 임금을 낮춤으로써 이윤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괴물이지만 영리하게 자신의 적을 고를 줄 안다. 파월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40퍼센트 이하로 추락했다. 2008~2009년 위기 이전에 그린스펀의 지지율이 80퍼센트에 육박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를 보면 민주당이 트럼프에 맞서는 데서 이다지도 무기력하고 시원찮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민주당은 우리에게 각종 재난을 안기고 있는 신자유주의 기성 질서와 깊숙히 얽혀 있다. 트럼프가 권력을 집중하는 것에 맞서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준 중앙은행의 허구적 독립성을 사수하자는 기치는 그런 저항의 일부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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