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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아펙(APEC) — 해롭거나 기껏해야 유명무실

2025 아펙(APEC)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아펙에서 미중 정상회담과 (가능성이 낮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펙 개최와 정상회담들을 외교적 성과로 남기려 한다. 9월 25일 국회에서는 ‘아펙 정상회의 성공 개최 및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국회 결의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펙은 결코 환영할 만한 행사가 아니다.

‘경제 협력’?

아펙은 일본과 호주의 주도로 1989년에 만들어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강국인 일본과 호주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유럽공동체(EC, 유럽연합(EU)의 전신) 등 다른 경제 블록과 경쟁하려고 아펙을 결성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아시아·태평양 패권을 다지려던 미국은 일본 등이 아펙을 주도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특히 당시 미국 지배계급은 유럽연합과 일본을 새로운 경제적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금방 중국으로 그 대상이 이동했지만).

일본은 아펙에서 미국과 공존하려 하면서도 아시아 패권국 지위를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1990년대 아펙 내에서는 미국-일본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 외무장관은 “악의 정신에 사로잡힌”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시장 개방을 압박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의제를 아시아에 확산시키는 통로로 아펙을 이용했다. 1993년 아펙 회의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기여하며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후 아펙은 WTO 협상이 난관에 부딪힐 때 WTO의 비공식 협상장 구실을 하기도 했다.

‘테러와의 전쟁’ 지지

아펙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응원 부대로도 활용됐다.

2001년 상하이 아펙 회의에서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공식 선언문이 채택됐다.

당시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 질서하에서 빠르게 성장하던 중국도 미국의 중동 전쟁을 지지했다. 그 대가로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하던 중국의 WTO 가입 지원을 약속했다.

2003년 방콕 아펙 회의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은 부시를 만나 한국군 파병 결정을 재확인시켜 줬다.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아펙 회원국들은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이주민 단속 정책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렇듯 아펙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위한 기구로 작동했다. 그래서 아펙이 열리는 곳에서 아펙 반대 시위가 열리는 일이 많았다.

특히 2008년 경제 위기와 이후 보호무역 조처들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국가 간 경쟁·갈등이 심화되자 ‘경제협력체’ 아펙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졌다.

트럼프

2010년대 이후 미국과 중국은 아펙에서 상대방을 견제하고 각자의 의제를 관철시키려 애썼다.

트럼프는 아펙을 중국 견제와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연단으로 활용했다. 집권 1기 시절인 2018년 아펙에는 부통령 펜스를 대신 보내 중국의 무역 관행을 강하게 비난했고, 그 탓에 아펙 사상 처음으로 정상 공동 성명 채택이 무산됐다.

트럼프는 이번 아펙에 참가해 재선 이후 처음으로 시진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아펙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심지어 미중 관세 협상에 진전이 생긴다 해도, 이는 일시적 봉합일 뿐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를 여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을 낳고 키우는 제국주의 경쟁 시스템은 아펙이 있든 없든 계속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계급은 아펙을 한국 자본주의의 위상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에 협력하는 것을 주된 수단으로 삼아서 말이다.

2024년 아펙에서 윤석열은 북한-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세계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미국의 패권 전략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도 근본에서 다르지 않았다.

2001년 김대중은 상하이 아펙에서 ‘테러와의 전쟁’ 지지 성명 채택에 동참했다.

노무현은 2003년 방콕 아펙 회의에서 “‘항구적 자유 작전’[‘테러와의 전쟁’의 작전명] 참여로 적극적인 반테러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혀 부시를 도왔다. 2004년 칠레 아펙 회의에서도 “테러에 대한 효과적 대응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며 미국에 힘을 실어 줬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개최한 부산 아펙에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민중을 학살하고 그곳을 유린한 전범 부시가 참석했다. 당시 아펙과 부시의 방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부산에서 열렸다.

친미

이재명 정부는 이번 아펙에서 미중·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길 바라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을 잇는 “브릿지”(가교)임을 내세워 한국 자본주의의 위상을 높이고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며 국내외 지지를 모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에서 이재명 정부는 공평무사한 중립자가 아니라 한미동맹에 분명히 기울어 있다. 이재명 정부는 아펙을 앞두고 극우의 반중 시위에 견제구를 날리면서도, 중국을 겨냥한 대규모 한미·한미일 전쟁 연습은 지속하며 아시아·태평양의 군사적 긴장을 키우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한국 지배계급의 친미 노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아펙 기간에는 국내외 굴지의 대자본가들도 모인다. ‘아펙 CEO 정상회의’에 모인 기업주들은 AI 등 신기술을 새로운 이윤 창출 수단으로 만들 방도를 모색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의장국 정상으로서 기업주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연설을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아펙 준비 과정은 계급 차별적·인종차별적이다. 법무부는 아펙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답시고 대대적 이주민 단속 계획을 밝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 수반들이 국빈 대접을 받으며 아펙에 참석하는 동안 그 나라들에서 온 노동자들은 추방 위협에 떨게 됐다.(관련 기사: 본지 560호, 아펙 앞두고 미등록 이주민 단속 강화: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아펙 맞이 “대청소 운동”인가)

평범한 사람들이 이 회의에 기대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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