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중국을 도발한 미군 전투기들: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인의 안전을 위협할 것임을 보여 주다
〈노동자 연대〉 구독
2월 18일 주한미군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공중 훈련을 진행하면서 미군 전투기와 중국 전투기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주한미군 F-16 전투기 10여 대가 오산 기지를 출발해 서해의 중국 방공식별구역 쪽으로 접근했다. 사실상 중국의 서해 연안에 상당히 접근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군 전투기들은 실탄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곧장 중국 전투기들이 대응 출격했고 양측이 공중에서 서로 대치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 수도권을 겨냥한 도발”이라며 미군 측을 비난했다. 서해는 중국 수도권과 핵심 경제 지역에 인접해 있고 동중국해로 오가는 해상 관문이어서 중국 정부가 예민할 수밖에 없다.
미군 전투기가 서해에서 이렇게까지 중국을 도발한 것은 전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앞으로 그런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일본 규슈,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 어디서든 침략을 거부할 수 있는 군대를 갖추겠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동맹국들이 자국의 항구와 시설에 대한 미군의 더 강력한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즉, 한국이 미군의 대중국 발진 기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동맹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 대응을 주되게 책임지고, 주한미군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주한미군 웹사이트에 공개한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전력은 … 위기나 유사시 미군이 진입해야 하는 방어선 내부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전력[이다.] ... 중국 입장에서, 오산 공군 기지의 미군은 원거리 위협이 아니라 근거리에서 중국 내부 또는 주변에 즉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배치된 전력으로 보인다.”
오산 기지는 세계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군 공군 기지다. 한국이 역내의 전략적 중심에 위치해 있는 덕분에, 미군이 전구(戰區) 내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데 큰 군사적 이점이 있다. 바로 그 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출격해 서해로 갔다.
지난해 11월 미국 정찰 무인기 MQ-9 ‘리퍼’가 군산 앞바다에 추락한 일이 있었다. 그 두 달 전에 주한미군은 MQ-9으로 구성된 정찰 대대를 군산 기지에 창설했다. 군산의 MQ-9이 하는 임무 중 하나가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정보·감시·정찰 분야의 한미 공동 중요 임무 작전 지원”이다.
북한군뿐 아니라 서해에서 중국군의 움직임도 감시하려고 무인 정찰기들을 군산에 배치한 것이다. 향후 군산 기지에 F-35 1개 비행대대를 상시 배치하고 추가로 1개 비행대대를 순환 배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처럼 서해는 미군이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 작전 지역이 돼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되면서 한반도 주변에 긴장이 쌓이고 있다. 그만큼 중장기적 위험도 커지는 것이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서해에서도 거의 즉시 군사 충돌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미·중 전투기들의 서해 대치를 보며 많은 한국인들이 ‘동맹 현대화’에 대해 우려했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한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주둔해 왔지만, 이제 주한미군이 “외려 한국의 ‘안보 위협’이 되어가는 현실”(〈경향신문〉 사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에 대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령 〈한겨레〉는 일본식의 ‘사전협의’ 제도를 만들어 미군이 한국 정부와 군이 모르는 군사 전개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는 위험을 통제하는 데에 불충분할 것이다. 위기가 본격화되면 미국이 종이 쪼가리에 쓰인 문구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세 문제에서 보듯이, 미국은 필요하면 과거의 약속을 바로 공문구로 만들어 버린다.
앞서 이재명 정부는 미국이 제안한 한·미·일 연합 공중 훈련에 불참했다. 결국 미·일만 동해와 동중국해에서 연합 훈련을 실시했고, 바로 그 시점에서 미군 전투기가 서해로 출격했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한국 정부와 사전 소통 없이 미군이 서해에서 훈련을 한 것에 항의했다. MBC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사과하고 추가 훈련을 취소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렇지만 이재명 정부가 동맹 현대화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이재명 정부도 한미일 군사 협력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고, 앞으로 전시작전권 환수와 자주국방을 내세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하는 “한미동맹 현대화”에 계속 타협할 공산이 더 크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한미일 연합 훈련 불참의 이유로 훈련 일정이 22일 일본 ‘다케시마의 날’(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려고 제정한 날)과 너무 가까워서였다고 밝혔다. 다른 때라면 훈련을 해도 된다는 뜻일까.
트럼프 정부는 결코 인도-태평양에서 물러서지 않고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주한미군은 그에 맞게 대중국 견제의 첨병 구실을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 정부가 협력하는 것에 반대할 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한미 협력의 대가로 또는 안보 위기를 빙자해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식으로 군사력 증강에 매진하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