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이명박과 한국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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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가 금융시장 구제 방안을 부결한데다, 8월 경상수지 적자가 47억 1천만 달러로 사상 최대에 이르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한때 1천2백30원까지 올랐다. 더구나 정부가 ‘외환 시장에 1백억 달러를 공급하겠다’고 한 직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러다가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는 “그때[IMF]는 기업부채가 4백 퍼센트를 넘었지만 지금은 1백 퍼센트 이하고, 외환보유액은 당시 경상지급액의 3개월[치]도 안 됐는데 지금은 6개월[치] 이상”이라며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MF 때보다 더 우려스러운 차이점도 있다.
1997년 위기의 진원은 당시 세계경제의 변두리인 동아시아였다. 타이에서 시작된 위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등을 거쳐 한국에 상륙했다.
반면 현재는 세계경제의 중심부인 미국과 서유럽이 가장 먼저 무너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부족해지면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국·서유럽의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에도 타격을 주면서 한국 수출에 타격을 주고 있다.
1997년 동아시아 위기는 미국과 서유럽 정부가 개입해 어떻게든 파국을 막을 수 있었던 반면 최근의 위기는 막을 만한 정부가 없어 보인다.
한편, 한국에서 금융 위기를 낳을 만한 요인도 1997년과 차이가 있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거품이 꺼지자 호황을 구가하던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로 자금이 몰렸다. 당시 한국의 총대외채무는 3년 동안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설비투자에 들어갔는데 1994~1996년 연평균 설비투자증가율은 17.1퍼센트에 달했다. 이런 과잉투자 속에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인 이윤율 저하가 전개됐고, 세계적 자동차·철강의 과잉생산 속에 수익성의 저하는 기업들을 더욱 압박했다. 이런 낌새를 느낀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대규모 차입으로 투자에 나섰던 한보철강, 기아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은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다. 이는 일부 대형 은행의 부실로 이어졌다.
반면 이번에는 부동산 거품과 가계 대출의 급증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 5월 말 현재 가계대출은 4백89조 6천여억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이 중 절반 가까이는 주택담보대출이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는 반면 금리는 급상승하면서 위험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 미분양 증가로 금융권에서 건설사에 대출해 준 80조 원에 대한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대거 부실 자산이 되고 있다.
단기외채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1997년 경제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신용과 외환이 경색되고 국제수지 적자가 악화하면서 외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자동차·가전제품·반도체 등의 수출은 감소한 반면, 석유 등의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서 8월 말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무려 1백15억 7천만 달러에 달했다.
게다가 올 들어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4백25억 달러에 달해 여기에 무역수지 적자를 합친 것만 해도 5백40억 달러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한국 자본주의와 수익성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인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1994년 39억 달러, 1995년 85억 달러에 이어 1996년에는 2백30억 달러에 이르던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가 됐다.
게다가 당시나 지금이나 금융기관과 기업 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단기외채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서로 대출을 꺼리면서 한국 금융기관들은 단기외채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장기차입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다. 때문에 만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단기외채는 2천2백23억 달러로 외환보유액 대비 비중이 86퍼센트에 달하고, 금융기관들은 초단기 대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혈관이 막히고 피가 마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몇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중국과 일본의 중앙은행들에게 달러를 차입해 위기를 막는 방법이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계속 위기로 빠지는 상황에서 국제수지가 해결될 가망이 거의 없으므로 이 방법이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금융 투기로 날린 부실이 계속 드러나고, 낮은 이윤율의 문제가 남아 있는 한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위기와 현재의 최대 공통점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서민에게 전가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은 대규모 정리해고와 임금 삭감, 비정규직 급증으로 위기의 대가를 치렀다. 그 때문에 재벌·부자는 위기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났고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이명박 정부도 종부세 등 부자에 대한 세금 감면, 물가 인상, 임금 동결, 비정규직 확대,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저들이 만든 위기의 대가를 우리가 또다시 치러서는 안 된다. 재벌·부유층만을 위하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투쟁할 때만 우리의 삶을 지킬 수 있다.
나아가 노동자·서민의 희생을 통해서만 위기를 해결하려는 재벌·부자만을 위한 모순투성이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