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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 북한 로켓 발사 이후:
강대국들의 개입은 북한 ‘위협’을 해결할 수 없다

4월 5일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이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움직임은 미국의 처지가 이빨 빠진 호랑이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미국은 UN을 통해 대북 제재 결의를 이끌어 내려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에 부딪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조처를 취할 수 없었다. 미국은 결국 9일 만에, 제재 결의 대신 구속력 없는 UN 안보리 의장 성명을 발표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북한 제재에 실질적으로 동참할 가능성이 별로 없으므로 의장 성명은 말에 그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번 의장 성명은 북한이 “안보리 결의 1718호를 위반”했다고 강경하게 비난했다.

북한의 행동은 동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의 촉매 구실을 할 수 있는 등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결코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북한 비난에 동조할 수는 없다.

인공위성을 군사적 목적으로 앞장서 사용해 온 강대국들이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 로켓 발사를 둘러싼 비난이 한창이던 지난 4월 20일에는 인도가 첩보위성을 쏘아 올렸는데도 이에 대한 어떠한 비난이나 제재 움직임도 없었다. 인도는 2006년 핵실험을 감행했고, 지난해에 중국이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자마자 달 탐사선을 발사하는 등 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는 행위자로 새롭게 떠올랐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핵실험을 강경하게 비난한 것과 달리 비슷한 시기 인도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묵인했다.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를 동맹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첩보위성 발사에도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점점 관리하기 어려운 북한 ‘위협’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강경하게 비난하는 진정한 이유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나 동북아 평화 등의 명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려고 북한을 ‘악마화’해 왔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소련 블록에 대항한다는 미일 동맹의 명분이 약해지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부추겨 동아시아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미국의 압박은 오히려 북한이 실제로 핵과 미사일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도록 내몰았다. 그래서 오늘날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갖춘 ‘위협’적 존재가 됐다.

군사적 초강대국 미국에게 북한 ‘위협’이란 군사력 자체보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이 미치는 정치적 파장과 관련돼 있다. 미국은 1990년대에 ‘북한 위협’을 미일 동맹을 묶어둘 소재로 활용해 왔지만, 이제 북한 문제는 미국에게 매우 껄끄러운 문제가 되고 있다. 가령 일본 우익들은 ‘북한 위협’이 불거질 때마다 독자적 핵무장 명분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는데,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일 동맹은 이렇듯 매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2기 부시 정부 하의 미국이 중동 전선에 발목이 묶여 있는 동안, 현상 유지 수준에서 북한 문제를 관리하려고 허용한 다자주의적 틀이 오히려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여 주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실질적 제재를 하려 해도, 6자 회담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포한 북한을 회담장에 끌어들이려 해도, 모두 중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런 세력 관계는 이번 북한 로켓 발사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를 반대하자, 결국 미국이 의장 성명 수준으로 수위를 낮춰야만 했던 것에서도 잘 드러났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라크 등에 발목이 묶여 북한에 대한 전면적 군사적 공격을 하기도 어려운 처지지만, 자신의 패권이 추락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북한에 실질적으로 양보하지도 않은 채 시간 끌기 성격의 회담과 압박을 반복해 왔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압박과 무시를 참기 어려운 북한의 대응은 점점 강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 러시아에게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이들 나라들은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를 반대했지만, 이들은 단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로 자국 주변에 미국의 개입이 강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뿐이다.

미국이 북한 위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동아시아에서 통제력을 더욱 잃어 갈수록 주변 강대국들은 각자 자국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더욱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들 강대국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북한 문제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 등 강대국들의 각축전이야말로 동아시아의 불안정을 낳는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군사적 방식이든 외교적 방식이든, 강대국들의 개입은 북한 ‘위협’을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