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일본 경제 불황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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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은 35년 만에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주 일본은행은 “일본의 경제 상황이 크게 나빠지고 있다” 하고 경고했다. 일본은행은 2010년 3월까지 -3.1퍼센트 수축할 거라 예측했다.
이것은 1990년대 불황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일본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다. 1990년대 불황으로 수많은 일본인들의 삶이 파괴됐다. 예컨대, 1990~2003년에 남성 자살률이 갑절로 늘었다.
현재 경제 위기가 워낙 심각해, 상당수 전문가가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세계경제가 1990년대 일본 불황 정도로만 악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 세계 위기와 1990년대 일본 위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당시 일본 불황은 부동산 투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했다. 1986~1989년에 부동산과 주식이 두 배나 올랐다.
기업들은 낮은 이자율을 이용해 주가를 올리고, 복잡한 금융 기법을 활용한 투기 활동을 벌였다.
[불황 이전에] 일본 경제는 연평균 5퍼센트 성장했고, 일본 자본가들은 공장과 기계에 신규 투자했다.
그런데 1990년 도쿄 주식 시장에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1990년대 동안 일본 경제는 해마다 간신히 1퍼센트 성장했다.
주류 논평가들은 당시 일본의 문제가 금융 투기와 부동산 가격 인상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실물 경제와는 상관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일본은 1970년대 초 이후로 전 세계적 이윤율 하락 경향의 영향을 받아 왔다.
심지어 일본 경제 호황이 절정에 도달했던 1980년대 말에도 제조업 이윤율은 1965~1970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일본 경제는 주로 미국 시장에 자동차와 기타 공산품을 수출하면서 성장했다. 따라서 일본 지배계급은 엔-달러 환율을 낮게 유지하려고 이자율도 낮은 수준에 고정시켰다.
낮은 이자율로 투기를 노린 대출이 급증해 거품이 발생했지만, 이것이 이윤율 하락을 상쇄할 수는 없었다.
이 문제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던 일본 은행, 기업, 지방 정부 들이 은폐한 대규모 부채 문제로 나타났다.
최근 영국의 고든 브라운 정부가 영국은행을 구제한 것처럼, 일본 중앙정부가 나서서 부채를 인수했다. 그 결과 일본 국가 채무 규모는 GDP의 갑절이 넘는다.
저항 약하면 “잃어버린 10년” 될 수도
또, 일본 지배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양적 완화”와 유사한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불황으로 디플레가 발생했다.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보통 일본인들은 경제 회복에 필요한 만큼 소비할 수 없었다.
실질 이자율은 마이너스였다. 따라서 원래 채무보다 적은 액수의 돈을 상환하면 됐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조처조차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일본 정책 입안자의 불황 대책은 주류 경제학의 파산을 보여 줬다.
일본이 호황일 때 일본 경제 관료들은 천재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거품이 꺼진 후에는 바보 취급받았다.
당시 일본에서 실패한 정책들이 오늘날 주요 선진국에서 경제 위기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990년대 일본의 실업률이 6퍼센트 이하였다고 지적하며, 당시 상황이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 전 40년 동안 일본의 평균 실업률이 1~2퍼센트였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
일본 지배계급은 불황에 대응해 전후 호황에서 형성된 종신 고용 체제와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 체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선진국 중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변했다. 오늘날, 일본인의 15.3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한때 일본에서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현상이다.
또,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임시계약직으로 한 달 수입이 5백 파운드(약 1백20만 원)가 채 되지 않는다.
전후 호황의 유산으로 아직 상당한 사회안전망이 존재했고 수출을 통해 최악의 문제를 피할 수 있었건만, 이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이미 신자유주의의 가혹한 공격을 경험한 사회들은 심각한 전 세계경제 위기로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1990년대 일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만약 우리가 강력한 노동계급 저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10년, 혹은 그 이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제미 앨린슨
출처 영국반자본주의주간지 〈소셜리스트워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