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세계경제 분석: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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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은행 구제는 세계경제 위기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정부들의 긴축 계획이 체제를 안정화시킬 수 없는 이유를 말한다.
세계 경제·금융 위기가 이제 4년째 접어든다. 아일랜드 경제의 절망적 상태와 그로 말미암아 드러난 유로존의 긴장들은 위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최근에 일어난 예상치 못한 중요한 사태 전개에는 다음 세 가지 요소가 얽혀 있다. 세계경제의 불균형, 계속되는 은행 위기, 긴축정책의 영향이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심각한 불균형은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불균형이다. 중국과 독일은 최대 공산품 수출국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는 대개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일 수밖에 없다.
그 반대편에는 미국, 영국, 유로존의 더 허약한 나라들이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재화와 서비스 수입이 수출보다 많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려고 채권국에서 돈을 빌리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경제가 지탱된 것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재화와 자본이 유입된 덕분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점차 갈등에 휩싸였다. 미국이 수출을 늘리려고 달러화 평가절하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중국은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유럽에서는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갈등이 주로 유로존 회원국 사이의 갈등이다. 불균형의 정도도 훨씬 더 심각한데 이는 유럽연합 경제의 발전소인 독일이 훨씬 더 작거나 취약한 국가들, 특히 그리스·포르투갈·남아일랜드·스페인과 갈등을 겪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1999년 유로화를 출범시킨 유럽경제통화동맹의 프로젝트에는, 주로 프랑스 쪽의 기획이긴 하지만, 실제로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유럽연합이 미국의 대항마 구실을 하도록 하고, 둘째는 독일의 경제력을 통제하고 그 힘을 유럽 공동의 목표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경제통화동맹은 내부 결함 때문에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유로화 사용국 사이의 상당한 경제적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으며, 지난 십여 년간 그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졌다.
독일 기업들은 자국 노동자를 희생시켜 경쟁력을 재편·제고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내내 실질임금이 정체됐기 때문에,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에도 독일은 세계 수출에서 9~10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할 수 있었다.
나머지 유로존 국가들에서는 실질임금이 상승했다. 이 때문에 나머지 유럽 회원국들은 독일보다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자국의 통화 가치를 낮출 수 없었다.
한 국가 안에서는 지역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다. 정부의 세입과 세출은 대개 부유한 지역에서 가난한 지역으로 자원을 이전한다. 그러나 유럽경제통화동맹은 통화동맹에 지나지 않고, 게다가 독일의 고집 때문에 회원국은 금융 위기에 빠진다 해도 구제금융을 받을 수 없었다.
유로화가 출범하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이런 문제는 금융 시장에서 잊혀졌다. 유로존의 취약한 회원국들은 독일의 차입 금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렇게 신용을 쉽사리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와 남부 유럽에서는 자산 투자와 소비 지출이 급증했다. 그 뒤 2007~2008년에 호황이 불황으로 치닫자 각국 정부들은 대불황이 1930년대 규모의 불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차입과 지출을 크게 늘렸다.
위험스러운
공공·민간 부채의 증가가 특히 위험스러웠던 것은 2008년 가을에 1914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금융 위기를 촉발한 은행 위기가 함께 닥쳤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유럽의 은행들은 미국과 유럽 지역들에서 일어난 주택 시장의 거대한 투기 거품을 부풀리려고 대규모로 차입을 했다.
미국을 제외하면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 아일랜드였다. 자산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국민소득의 약 5분의 1을 차지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은행들이 미국의 신용파생상품을 사들이고 남부 유럽 정부들에 대출하는 데 열을 올렸다.
2008년 가을에 시작된 정부 구제금융의 의도는 이 은행들을 살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IMF가 최근에 발표한 금융안정성보고서는 2007~2010년 은행 손실이 2조 2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처음의 추정치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여전히 어마어마한 규모다.
보고서는 버블 기간에 은행 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서 향후 2년간 4조 달러 이상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고도 지적한다.
최근의 유로존 위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은행들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4월과 5월에는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그리스 국채의 금리가 상승했다. 그리스가 채무 불이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유로존은 부분적으로 “전염”이 두려워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말해, 신뢰의 위기가 그리스에서부터 번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에 너무 많이 대출했기 때문에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5월에 유럽연합이 4천4백억 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융자제도를 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실상 두 번째 은행 구제금융이었다. 메르켈이 사르코지와 버락 오바마의 압력에 못 이겨 마지못해 동의하기는 했지만, 당시 독일 정부는 회원국 정부의 과다 지출과 차입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유럽연합 조약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었다.
독일의 강경한 태도는 국내의 정치적 압력도 있었지만, 동시에 독일 수출이 크게 회복된 것에서 비롯한 자신감도 있었다. 특히 고급 공산품의 수요가 중국에서 상당히 증가하고 있었다. 독일과 또 다른 유로존 선두 국가인 프랑스의 격차도 커지는 상황이다.
독일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유로존 내부 갈등이 커진다. 그리고 조약을 개정해서 대부자도 미래 구제금융의 비용 일부를 책임져야 한다고 메르켈이 경고하자 시장은 경악했다.
당장의 희생자는 아일랜드였다. 2008년 10월 아일랜드 정부는 자국 은행 부채의 대부분을 지급 보증하기로 했다. 이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논평한 대로 “금융 시장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와 은행을 하나의 통일체로 변화시킨 조처”였다.
그러나 아일랜드 은행들이 파산지경에 몰려 유럽중앙은행의 대출로 연명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지난 몇 주 동안 상황이 분명해지자, 아일랜드에서는 기업 예금이 급격히 이탈하기 시작하고 국채 금리가 치솟아 정부가 채권을 발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주 말 아일랜드 정부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뻔뻔하게 말한 “IMF, 유럽중앙은행, 유럽집행위원회 삼두 체제가 그리스를 보호령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 조건”을 수용했다.
곤경
그러나 이런 조처가 “전염”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자산 시장 거품의 희생자이자 그리스나 아일랜드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더 큰 스페인이 금융 시장에서 불신을 받는다면 유로존은 정말이지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것이다.
셋째 불안정 요소는 유럽을 휩쓴 긴축정책이다. 이 조처는 원리상 공공 지출을 감축시켜 정부 부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긴축으로 상황이 더 악화되는 조짐만 보일 뿐이다.
그리스 정부는 얼마 전 공공 재정을 더욱 감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재정 적자가 유럽연합과 IMF의 “구제” 조건인 국민소득의 8퍼센트 수준을 웃돌아 9.4퍼센트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치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목표치를 웃돈 이유는 경제가 예상보다 4.2퍼센트나 더 위축됐기 때문이다. 긴축정책은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를 감소시켜 경제 총생산량을 줄이고 정부 차입의 부담을 더 늘린다.
심각한 경기 침체와 혹독한 삭감에도 불구하고 IMF의 아일랜드 보고서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아일랜드의 높은 물가·임금 수준을 벗어나기 위한 처방으로 앞으로 수년간 수출 증가를 위한 ‘국내의 평가절하’[임금 삭감 같은 내핍] 시기가 필요하다.”
긴축의 폐해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랍시고 신자유주의 컨센서스가 유력하게 제시하는 것은 그저 더 많은 긴축뿐이다. 더 나은 미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분쇄할 사회·정치적인 대규모 투쟁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