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미화·경비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 르포: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 모두를 지켜 온 사람들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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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홍익대 미화 노동자 투쟁 연대 집회가 열렸다. 처음엔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던 대열은 집회가 진행될수록 점점 늘어났다.
연대 발언한 공공노조 서경지부 덕성여대 분회장이 소리쳤다.
걸쭉한 사투리로, 성신여대 분회장은 말했다.
이대 분회장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집회가 끝난 후 행진를 따라가서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홍익대 문헌관 1층 사무처까지 갔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벌써 열흘째 숙식하고 있었다.
우린 이길 거에요
농성장 로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깔판을 깔고 앉기는 했지만 하얗게 입김이 보였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연대하러 온 타학교 미화 노조의 분회장들이 자리에 앉아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질문 시간에, 한 남성이 손을 들었다. 그 남성은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더니
1월 11일 밤
밥을 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한 주간지에 기자로 취직했다고 말했다. 방금 총학생회장 인터뷰를 했다고 했다.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나자마자 이불을 깔고 잠이 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모든 일정이 끝난 사람들은 조용히 침낭 위에 앉았다. 깔판을 깔았지만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한 구석에서 경비 노동자 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밤 9시가 되었는데도 학교 교직원들은 퇴근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지금 홍익대에 있다고, 한 홍익대 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농성장이니 얼굴이라도 보자고 했더니, 그는 바로 농성장으로 왔다. 홍익대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노동자들은 반가워했다.

이 학생은 총학이 주최했던 간담회에 갔다왔다고 했다.
열 시가 지나자, 돌아갈 사람들은 다 돌아갔다. 로비는 아까보다 더 서늘해졌다. 하얗게 입깁이 나오는데, 로비에서 미술행동을 하는 만화가들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태일이〉를 그린 최호철 만화가와 〈내가 살던 용산 - 망루〉를 그린 김홍모 만화가였다. 연대하러 온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고 있었다. 둘 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로비에서, 나는 김홍모 만화가 앞에, 홍익대 분회장은 최호철 만화가 앞에 앉았다. 홍대생이냐고 물어서, 명지대생이라고 대답했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김홍모 만화가는
최호철 만화가가 입을 열었다.
1월 12일 아침
다음 날 아침 5시 30분이 되자,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밥 냄새가 났다. 일어나서 앉아 있자, 미화노동자 한 분이 얼른 와서 밥 먹으라고 손을 잡아끌었다.
오징어 국, 김치, 깻잎무침, 청경채 등이 앞에 놓여졌다.
설거지를 돕겠다고 하자, 미화노동자들은 날 눌러 앉히고는 다 조를 짜서 하고 있고, 당번이 있으니까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는 설거지 할 그릇을 들고 쌩하니 가 버렸다.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한마디 더 거들었다.

8시쯤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영화배우 김여진에 대해 칭찬을 하면서, 아무래도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이었던 게 틀림없다고 얘기하다가, 한 명이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아침 조회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발의해서 홍익대학교 재단이 소유한 모든 학교에 감사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미화 노동자 한 명이 귓속말을 했다.
내가 홍보전 할 리플릿을 챙기는 걸 보고, 한 조합원이 물었다.
홍보전은 추웠다. 학생들은 대부분은 리플릿을 받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람들은 콧물을 훌쩍이면서 리플릿을 나눠 줬다. 학생들이 번갈아가면서 무언가 발언을 했다. 이사장 나와라, 총장 나와라, 일하고 싶다, 3백 원이면 껌도 못 사요, 해고를 철회하고 일하게 해 주세요, 아주 간단한 문구들을 노동자들은 몸에 걸고 있었다.

홍보전이 끝나고 돌아가 보니 농성장엔 직원들이 그 사이에 더 출근해 있었다. 된장 냄새가 사무처 가득했다.
한 구석에선 어제 했던 드라마 얘기로 시끄러웠다. 드라마 얘기는 순식간에 번졌다.
이곳을 지킨다는 것
늘
한 미화 노동자가 홍익대 총학생회에 대해 툴툴거렸다.

학생들은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비정규직 여성들을 탄압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 연장선상에 놓여 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의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싸움에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했다. 마지막 단어만 두 번 따라해달라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말했지만 노동자들은 모든 구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외쳤다.
농성장 한쪽 벽엔 빽빽하게 후원받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돈뿐만 아니라, 밥, 귤, 컵라면, 라면 두 개, 반찬 한 가득. 단체도 있고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그냥 나누고 싶은 것들을 들고 달려왔다. 여기저기에 글씨들이 나붙어 있다.
홍익대 노동자들은 우리는 질 수가 없다고. 가장 밑바닥이라 이제는 올라갈 곳밖에 없다고 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심지어는 길바닥으로 그들을 몰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쫓겨났지만 입을 다물지 않았다. 더는 올라갈 곳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은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주 힘있게, 꼭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그렇다면 지금 그곳으로 달려가는 건, 바로 여기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