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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복지:
복지국가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편집자] 무상복지와 재원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 사회와 복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한다.

① 무상복지가 경제 위기를 낳는다?
② 사회투자국가론과 제3의 길
③ 보편적 복지와 고전적 사회민주주의
④ 복지국가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⑤ 좌파적 대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노동력 재생산을 국가가 일부 담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제 안정화 기능이다.

노동력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의 전제 조건은 임금노동”(《공산당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유지하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러려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실업 기간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실업 수당 등을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 경기가 회복됐을 때 다시 착취할 수 있다.

7월 3일 전국교사대회 아래로부터 노동계급 운동이 복지국가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1906년 영국 자유당 정부가 학교 급식과 연금을 도입한 데에는 이런 인식이 작용했다. 1899~1902년 보어전쟁에서 영국은 최종 승리했지만 전쟁 과정에서 많은 청년이 참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과 영양 상태가 나빴다는 점이 드러났다. 영국 지배계급은 국제 무대에서 영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려면 체계적인 복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계속 유지되려면 생산에 알맞은 신체적·정신적·지적 능력과 규율을 갖춘 노동자가 계속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조차 보육비 지원 같은 저출산 관련 대책을 계속 내놓는 것이다. 실질적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 복지는 기층의 불만을 달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물가 인상이나 임금 삭감·해고 같은 공격이 노동자 계급 전체의 불안과 분노로 이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복지국가라고 부를 만큼 강력한 보편적 복지제도를 구축하려면 자본의 이윤 추구를 상당히 제약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세계적 경제 위기 상황이다. 자본가들에게는 양보의 여지가 매우 적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노무현 정부마저 탄핵으로 제거하려 한 전력이 있다. 이런 자들을 설득해서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백일몽에 가깝다. 지배계급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제할 방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운동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운동을 자신의 득표 전술로만 한정해 사용하려는 개혁주의 전략으로는 복지국가를 이루기는 힘들다.

물론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지 못한 나라보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비교적 더 견고한 복지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데는 제2차세계대전의 참화를 피해 갔다는 점, 장기호황이었다는 점과 함께 스웨덴 사민당의 장기집권도 한몫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호황이 계속되는 동안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집권하지 않은 선진국들에서도 복지가 확대됐다. 그리고 애초에 스웨덴 사민당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럽 최고 수준의 노동자 운동이 있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스웨덴 사민당을 비롯한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근본에서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고, 이에 따른 모순은 1970년대 후반 경제 위기를 겪으며 표출됐다.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형평성과 경제성장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복지를 축소하고 노동계급의 운동을 공격했다. 이를 정당화한 논리가 ‘제3의 길’이었다.

한편, 전국학생행진 같은 일부 좌파는 복지를 요구하면 지배계급의 술책에 휘둘리는 것이라고 보는데(〈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16호〉), 이는 일면적인 생각이다.

복지는 노동계급이 쟁취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은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운동

나라마다 복지 수준이 다른 것도 각국 자본주의가 처한 조건과 노동계급의 저항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복지 수준은 많은 유럽 나라들보다 낮다.

전국학생행진의 관점으로 보면 이를 설명할 수가 없다.

전국학생행진은 스웨덴 사례를 들며 “스웨덴에서 복지모델이 안착화되기 전까지 노동자 파업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1938년 … 살쯔요바덴 협약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마’되어 갔다” 하고 주장한다.

첫 문장은 옳다. 그리고 스웨덴 노동 운동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는 점은 스웨덴 사민당이 장기집권을 하고 강력한 복지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진정한 원동력이었다. 개혁주의자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둘째 문장은 틀렸다. 일단 사실과 다르다. 살쯔요바덴 협약 이후에도 스웨덴 노동자들은 강력한 투쟁을 벌였다.

1945년의 파업 물결은 스웨덴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 파업에 따른 노동손실일수가 1천만 일을 넘었고 이는 1933년의 갑절이었다. 이 파업 물결은 정부의 임금 통제 정책을 무너뜨렸다.

1960년대 말에도 광원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강력한 비공인 파업들이 벌어졌다. 이 여파로 공적연금의 최저선 보장이 강화됐고, 기업의 의사 결정에 노동자들의 참여를 증진시키는 노동법 개정이 있었다.

이런 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스웨덴 노동자들은 기존의 성과를 지키거나 확대할 수 있었다.

전국학생행진은 “사회적 타협을 위한 ‘물질적 토대’는 사라졌다” 하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만 물질적 토대에는 경제 상황(지배계급의 의지)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투쟁 수준과 조직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계급의 힘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지배자들이 양보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1930년대 프랑스 노동자들은 대공황 속에서도 값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좌파가 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끌어내야 할 진정한 교훈은 “복지라는 깔때기는 위험하다” 하며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며 노동계급의 분열을 막고 투쟁이 전진하도록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타협과 배신, 후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로서든 세력으로서든 개혁주의는 선전만으로 간단히 제쳐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시기에 복지 확충은 노동계급의 절실한 요구다. 복지 확충으로 생활비가 절감되는 것은 임금 인상의 효과를 낸다. 따라서 좌파는 복지 확충 운동과 임금 인상 운동을 무리하게 대립시킬 것이 아니라 두 운동이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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