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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복지:
무상복지가 경제 위기를 낳는다?

[편집자] 무상복지와 재원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박근혜는 한국형 복지를 내세우고 이명박은 ‘복지 포퓰리즘’을 비난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무상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일관된 좌파적 관점이 필요한 때다.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 사회와 복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한다.

“복지에 돈을 써 버리면 투자할 돈이 부족해져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결국 사람들은 더 힘들고 고통받게 된다.”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리 중 하나다.

얼마 전 고경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매경이코노미〉에 기고한 글에서 “70년대 이후 영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나타난 복지국가의 위기와 최근 남부유럽의 국가부도 사태 역시 복지재정 부담으로 인한 재정적자가 국가채무를 증가시켜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리고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연결됐다”고 주장했다.

경제위기 시기에 복지를 늘리려면 노동자들의 삶보다 기업 이윤(성장)을 우선시하는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동아일보〉도 최근까지 열한 차례에 걸쳐 ‘복지강국이 앓고 있다’를 연재했다. 복지에 돈을 퍼 준 나라들은 위기에 빠졌고(그리스, 스페인, 아르헨티나, 일본, 이탈리아 등), 유명한 복지국가들은 복지 축소로 방향을 틀었으며(영국,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복지를 마구 퍼주다가 줄이려니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더라는(프랑스 등) 게 요지다.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런 주장들은 실제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첫째, 1970년대 이전에 복지국가들에서 복지 지출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미국을 제외하면 국가 소비는 1955~1969년 사이에 모든 OECD 국가에서 실질치로 매년 3.9퍼센트씩 상승했다. 이때, 국민총생산은 5.7퍼센트씩 상승했다.”(이안 고프, ‘선진자본주의에 있어서의 국가지출’) 즉, 복지 등에 대한 국가 지출이 늘어나는 동안 오히려 경제는 더욱 빠르게 성장했던 것이다.

둘째, ‘보편적 복지’는 호황이라는 조건에서는 오히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됐다. 영국에서 무상의료가 도입될 때 거대 섬유 기업 코톨즈의 사장은 “영국 역사상 가장 탁월한 고수익 장기 투자”라고 예견했고 이는 적중했다. 영국의 전체 의료비 지출은 당시 미국보다 적었지만 노동자들의 건강수준은 영국이 훨씬 앞섰다.

전후 호황기에 주요 선진국 정부들이 앞다퉈 보편적 복지 제도를 도입한 것은 단지 노동자들의 요구만 반영한 것이 아니라 양질의 노동력에 대한 자본가들의 필요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를 낳는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이윤율이 떨어지고 전후 장기 호황이 끝났다. 성장이 정체하는데 복지 지출이 예전처럼(혹은 고령화 등 때문에 더 빨리) 늘어난다면 그만큼 이윤은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기업들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고 복지 지출을 줄이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새로운 투자가 충분한 이윤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사라진 자본가들은 그 돈을 ‘생산적인’ 부문에 다시 투자하기를 꺼렸다. 대신 부동산이나 금융 투기에 돈을 쏟아부었고 지난 40년 동안 그런 거품이 꺼질 때마다 경제 위기가 반복됐다. 위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늘날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한국 진보진영 안에는 그리스 등 지난해 남부 유럽 나라들이 경제 위기에 빠진 것이 복지 때문이라는 보수파들의 논리를 일부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큰 문제다.

“[그리스는] 연금의 경우 너무 일찍 돈을 주고, 실업급여의 경우 너무 오래 돈을 준다. 그래서 ‘복지병’이 생길 수 있다는 보수파의 비판은 상당한 논거가 있다.”(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복지 수준이 가장 낮습니다. 임금도 가장 낮습니다. 그러나 물가는 다른 유로존 국가와 비슷합니다. 그리스가 문제가 된 것은 경제 위기로 최근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인데, 그중 상당 부분, 약 6백억 유로가 은행과 기업 지원금으로 사용됐습니다.

“부채를 급격히 늘린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국제 시장이 그리스 국채에 부과하는 이자율을 크게 높인 것입니다. 그리스 경제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세계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진 것에 국제 자본가와 투기꾼들이 대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국채 이자율이 크게 뛴 것은 2009년 두바이 사태 이후였던 것이 이 점을 증명합니다.”(니코스 루도스, 〈레프트21〉 37호)

넷째, 일단 경제 위기가 시작돼도 복지에 사용할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재벌·부자 들에게 선물한 무려 1백조 원에 이르는 감세 혜택과 4대강 삽질에 퍼붓는 돈을 보라.

놀랍게도 지난해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가 발표한 ‘세계무기거래보고서’를 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재래식 무기 국제 거래는 22퍼센트나 늘었다. 노동자들의 건강, 노후, 양육보다 무기가 더 중요하다는 자본가들의 정신 나간 우선순위를 보여 준다.

요컨대 복지 확대가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다거나 경제 위기를 낳는다는 얘기들은 모두 불평등한 구조를 수호하려는 기득권자들의 거짓말일 뿐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무상복지 요구에서 한 걸음도 후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