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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복지:
보편적 복지와 고전적 사회민주주의

[편집자] 무상복지와 재원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 사회와 복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한다.

① 무상복지가 경제 위기를 낳는다?
② 사회투자국가론과 제3의 길
③ 보편적 복지와 고전적 사회민주주의
④ 복지국가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⑤ 좌파적 대안

 

보편적 복지란 한 나라의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복지제도를 뜻한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나라를 복지국가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예를 들자면 가난한 사람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기초생활보호제도는 선별적 복지에 해당하고, 무상의료 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는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보편적 복지의 장점은 분명하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가 권리’라는 인식을 높여 노동자들이 복지를 요구하며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보수당 정부의 복지 삭감에 맞서 싸우는 영국 노동자들 그러나 무상의료(NHS) 공격을 기획하고 시작한 것은 노동당 정부다.

또 압도 다수가 노동계급인 사회에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복지는 노동계급 전체에게 두루 이익이 된다. 선별적 복지는 노동계급 내에 소득 수준에 따른 구분을 만들어 불필요한 분열과 반목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대체로 보편적 복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국가의 보편적 복지 제공은 시장 개입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가 무상의료를 제공하려면 당연히 제약회사와 병원의 이윤 추구를 규제해야 한다. 정부가 보장성을 높이려고 아무리 세금을 많이 거둬도 제약회사와 병원이 요금을 올려버리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료, 교육, 주택 등 필수재 영역에서 국가가 보편적인 혜택을 제공한다면 그만큼 시장은 축소될 것이다.

물론 이런 국가 개입이 결과적으로 언제나 자본가들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약 20년 동안 유럽 복지국가들은 국가 개입을 강화했는데, 이는 개별 자본가들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비용 - 위생, 음식, 교육, 주거 등)을 절약해 주는 효과를 냈다. 오늘날 복지국가론자들이 말하는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은 이런 상황을 일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어떻게 자본가들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건강하기를 바라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다른 이들 ― 경쟁관계에 있는 자본가들이나 노동자들 ― 이 치르기를 바란다.

따라서 단지 자본가들을 설득해 보편적 복지를 시행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몽상이다. 이윤 중 일부가 아니라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이들은 한사코 책임을 회피할 것이다.

유럽 복지국가들이 형성되던 무렵에는 이런 압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계급투쟁이 있었다. 그런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총파업 등을 통해 체제에 도전했고, 지배자들은 혁명을 피하기 위해 복지국가라는 개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개혁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이라는 핵심 동력을 빠뜨린 채, 고전적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각종 계급 간 동맹·타협을 통해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란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을 전후로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적 전망 ― 즉 기존 국가를 타도하고 완전히 새로운 노동자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 을 폐기한 노동자 정당들의 이념과 정치적 실천을 뜻한다.

‘고전적’이라고 단서를 단 까닭은 현대의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부분 ‘제3의 길’ 등으로 후퇴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시장 개입

이들의 주장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는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그렇게 돼 왔다.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최병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보편적 복지국가’를 통해 높은 수준의 복지서비스가 제공된다면, 그 사회는 … 자본주의적 강제 구조가 ‘절반 이상은’ 해소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노동자들은 의회, 혹은 정부 기구를 장악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고 셋째, 자신들의 정당을 통해 그 과제를 이룰 수 있다.

“보통선거권의 쟁취로 특징되는 민주화 국면이 열리면서 …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정치의 우선성’을 주목했기에, 의회주의, 개혁주의, 정치적 계급 동맹론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먼저 지난 수십 년 동안 선진국에서조차 부는 더욱 소수에게 집중됐다. “자본주의적 강제 구조” 즉,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착취는 근본에서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조건에서 착취당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이 국가의 성격을 바꾸지도 못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경찰, 군대, 사법부, 중앙은행 등)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 좌파의 이론가였던 랠프 밀리반드는 1972년에 쓴 영국노동당사에서 노동당 정부가 자본을 통제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친자본가적 정책을 추진하라는 압력에 자신을 취약하게 만들어 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늘 국가와 계급 사이에서 갈등했다.

한편에서 그들의 목표는 국민 경제 성장 등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잘 살아남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려 했다.

국가와 계급

호황기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장기 호황기에는 이 두 가지 목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고 복지가 확대됐다.

사실 이 당시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복지가 확대됐다. 세계적 규모의 호황은 노동자 투쟁에 밀린 자본가들이 당근을 내놓을 수 있게 해 줬다.

경기가 후퇴하자 이 아슬아슬한 균형이 무너졌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은 노동계급에게 복지를 제공하기보다 국가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이는 임금상승 억제, 재정 긴축, 생산성(착취율) 향상 등을 뜻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이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것은 이런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걸었던 길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호황은커녕 경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압력에 휘둘리는 민주당과 연합해서 복지국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몽상에 가깝다. 사실 이런 전략을 추진하려다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예전에 추진한 정책을 따라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일부는 벌써부터 ‘제3의 길’ 수준의 복지 정책으로 후퇴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처럼 타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지금처럼 아래로부터 투쟁보다 계급 타협에 치중한다면 운동을 전진시키는 구실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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