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동자 파업의 승리:
‘을’들의 단결과 저항이 악랄한 ‘갑’을 무릎 꿇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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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의 수수료 인하와 패널티 제도에 맞서 일어선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이 16일만에 승리로 끝났다.
그동안 택배 노동자들은 ‘갑’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저임금과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속에 아파도 쉬지 못하며 일해 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노예 같은 삶을 거부하고 집단적 투쟁에 나선 것이다.
사태는 CJ대한통운이 두 달 전에 화물연대 광주지부 택배분회에게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어기면서 시작됐다. “택배기사 다 죽이는 CJ”라는 현수막을 차량에 부착했다는 이유로 CJ대한통운이 노동자들을 내쫓으면서 분노는 폭발했다.
5월 4일 인천에서 시작한 파업은 전국으로 빠르게 들불처럼 확산됐다. 특히 5월 6일에 화물연대 광주지부 택배분회가 파업에 동참하자 투쟁은 질적으로 발전했다.
화물연대로 잘 조직돼 있고 투쟁 경험이 많은 광주 택배 노동자들은 광주 물류센터 봉쇄 투쟁을 벌이며 투쟁의 선두로 나섰다. 그러자 사측은 “엄청난 규모의 손실”이라며 안절부절 못해 했다.
사측은 “소수의 인원만 남고, 다 복귀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5월 13일 여의도에서 열린 집중 집회는 그것을 정면 반박했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천여 명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높아졌다.
게다가 윤창중 사태에서도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더욱 높였다. 무엇보다 탐욕스럽고 악랄한 ‘갑’들에 대한 대중적 반감 속에 택배 파업은 ‘을들의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커다란 지지 여론 속에 정부와 사측은 함부로 탄압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 칼자루는 재벌과 특권층인 ‘갑’에게서 ‘단결된 을’에게 넘어왔다. CJ자본가들은 결국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단결한 을들의 힘
사측은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와 협상에 나서 주요 요구들을 수용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던 패널티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고, 4월부터 6월 사이에 노동자들의 수입이 감소할 경우에는 차액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
끔찍한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었던 편의점 택배 집화(물건을 모두 한 군데로 모으는 작업) 마감 시간도 개선하기로 했다. 파업 관련된 민·형사상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다. “응분의 대가”를 운운했던 CJ대한통운 대표이사 손관수의 코가 납작해진 것이다.
물론 핵심 요구중 하나였던 배송 수수료 인상을 받아내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이 사상 처음의 전국적 파업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택배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고분고분한 ‘갑의 노예’가 아니다. 단결해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이 높아진 것이야말로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성과다.
사측이 “외부 세력” 운운하며 화물연대와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를 분리시키려 했지만, 노동자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파업에 참여한 많은 노동자들이 화물연대에 가입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물류를 마비시킬 힘을 갖고 있고, 투쟁의 전통이 있는 화물연대로 뭉칠 때 악랄한 갑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런 노동자들 앞에서 CJ의 악질적인 무노조 경영은 빛이 바래졌다.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과 그 성과는 ‘을’들이 단결해서 투쟁하면 갑의 횡포를 막고 무릎꿇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노동자 ‘을’ 들은 단지 힘없고 말 못하는 약자가 아니라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 줬다.
의미있는 성과를 쟁취한 택배 노동자 파업은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14일 새벽 3시에는 대리기사 노동자들이 ‘갑의 횡포’에 맞서 강남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고조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노동자 을들의 단결과 반란’은 더욱 더 확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