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동법 개악 반대 운동:
1백만 명이 넘는 노동자·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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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올랑드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으로 집회·시위의 권리가 상당히 제약돼 있는 상황에서도, 노동법 개악에 맞선 투쟁이 파업을 동반한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했다. 시작은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은 고용과 관련된 법 개악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고 스스로 미래의 노동자로 느꼈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본질적으로 노동계급의 운동이다. 이는 오늘날 유행하는 담론, 즉 노동계급의 저항 능력 쇠퇴(또는 상실) 담론이 왜 어불성설인지를 분명히 보여 줬다.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 데이브 수얼이 파리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한다.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에 맞선 저항이 3월 31일에 절정에 이르렀다.[관련 기사 : 〈노동자 연대〉 170호 ‘프랑스: 대학생들 노동법 개악 맞서 투쟁하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2백50곳 이상의 도시에서 일어난 시위에 1백20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파리에서는 수십만 명이 행진에 참가했다. 시위에 나선 대학생 아이샤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미래가 걸린 일입니다. 저들은 우리가 더 낮은 임금을 받고 더 오래 일하길 원해요. 저들이 새 [노동]법을 통과시키면 우리와 전쟁을 벌이자는 겁니다. 그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할 거예요."
식당 노동자 조르주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법의 가장 큰 단점은 노동자 해고를 더 쉽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미래는 이미 불안해요. 해고를 당하면 미래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사용자들이 마음대로 우리를 잘라 버릴 수 있게 되길 원치 않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장대비 속에서도 행진하며 혁명의 노래, 레지스탕스의 노래를 불렀다. 시위대는 연호했다. "사용자를 위한 법은 No! 혁명은 Yes!"
여러 도시에서 시위대 규모는 수십만을 헤아렸다. 시위 조직자들은 툴루즈에서 10만 명 이상이 행진했다고 밝혔다. 대학생 피에르 시아바헬라는 마르세이유 시위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 말했다.
항구 도시 르아브르 항만노동조합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여 도시를 마비시키고 행진하면서는 경찰 저지선을 밀어내 버렸다. CGT 활동가 가엘 파스키에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전했다. "[파업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이 운동을 추동한 동력이었다.
명문
앙리 제4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파리 중심가와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명문고인 루이르그랑 고등학교가 동맹휴업을 거부하자, 다른 학교 학생들이 루이르그랑 고등학교 앞에서 피켓팅을 벌였다. 고등학생 라파엘은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에 탄원서를 올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진정 중요한 일은 거리로 나오는 것이죠."
소르본대학교 톨비악 캠퍼스는 운동이 특히 강력한 곳이었다. 1천 명 이상이 이곳에서 열린 시위 전야제에 참가했다. 이곳 학생들은 인근 기차역 오스테를리츠역의 노동조합 지부와 짝을 이뤄 운동을 건설해 왔다.
톨비악 캠퍼스 학생 마리앙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봤다. "이런 빗속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나왔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해요. 우리는 노동법 개악을 철회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정부를 원한다는 것이죠. 현 정부는 사회주의 정부임을 자처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민중 편에 선 진정한 사회주의 정부를 원합니다."
이미 정부는 노동법 개악에서 여러 차례 후퇴했다. 그리고 시위 전날인 30일, 올랑드는 12월부터 추진하던 반동적 개헌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대 다수는 우위를 확실히 점하려면 운동 수위를 총파업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타이어 제조 노동자 브루노는 〈소셜리스트 워커〉에 이렇게 말했다. "노동법 개악이 통과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게 놔둘 수 없어요. 그러니 끝까지 싸울 겁니다. 파업과 시위를 더 많이 벌여야 합니다. 우리는 정부를 꺾을 것이고, 필요하면 대통령도 끌어내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