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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 방한 강연 취재기:
“비합리적 세계에 합리성을 강제하려면 자본주의를 밀쳐내야 합니다”

6월 21일, 데이비드 하비의 강연이 ‘자본주의의 위기와 일상의 변모’라는 제목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강연은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은 창비가 주최했다. 하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그의 저서 «자본의 한계»는 지리학적 통찰을 자본 축적과 접목한 고전이다. 그의 «자본론» 동영상 강의와 그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맑스 『자본』 강의»는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비의 강연이 시작될 즈음이 되자, 약 1백여 석의 좌석은 가득 찼고 대부분은 청년들이었다. 일부는 자리를 찾지 못해서 바닥에 앉기도 했다. 아주 제한적인 SNS 광고에도 불구하고 참가 신청을 했던 사람이 수용인원의 두 배에 달해서 주최측에서 참석을 제한해야만 했다고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더 큰 장소를 준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하비가 6월 2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작과비평 50주년 공개강연 ‘자본주의의 위기와 일상의 변모’에서 연설하고 있다. ⓒ창비

△하비를 찾은 청중은 강연을 듣기 위해서 바닥에 앉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비

한국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공공연한 반자본주의자의 강연을 들으러 수많은 청년들이 몰리는 것을 보며 오늘날 청년들이 급진화하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하비는 81살이라는 고령과 입국 후 연이은 학회와 간담회 등의 일정에도 불구하고, 일단 대중강연이 시작되자, 앞선 기자 간담회 때와는 다른 생기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하비의 강연

강연이 시작되자, 하비는 인사말을 전한 후 자신의 강연이 “비판적 반자본주의 관점”을 견지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최근 3년(2011~13년)간 사용한 시멘트가 미국이 20세기 내내(1900~1999년) 사용한 것보다 50퍼센트나 더 많다는 사실을 소개한 후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라고 물으며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답은 2007~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에 있었다. 미국 주택 거품이 꺼지고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되자 위기는 더 많은 나라로 확산됐다. 중국은 자국에서 경기가 후퇴하고 특히 실업이 느는 것을 막으려고 대규모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위기 대응은 다시 과잉생산으로 이어져 지금 또다른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중국 경기가 하강하면서, 중국에 원자재와 중간재를 공급했던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등이 함께 위기에 빨려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위기에 대한 땜질 처방으로 대대적 도시화가 추진됐지만 그것이 다시 위기를 불러오는 과정’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거듭돼 왔다고 하비는 지적했다. 19세기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파리 도시 개발을 추진했지만 다시금 위기가 도래해 파리 코뮌이 터진 것이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남부와 서부 권역을 연결하는 대대적 철도 사업과 교외 개발 사업을 벌였지만 1970년대에 결국 위기가 터진 것을 사례로 들었다. 이런 패턴을 하비는 마르크스의 “자본의 운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런 패턴이 매번 똑같이 반복되지 않고 갈수록 큰 규모로 재현된다고 지적했다. 19세기 파리 개발은 한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제2차세계대전 후 미국에서는 미국 전역을 포괄할 만큼 대륙적 규모가 필요했고, 지금 중국은 훨씬 더 큰 규모로, 다른 나라까지 끌어들이며 그런 도시 개발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강연 서두에 소개한 중국의 전무후무한 시멘트 소비량은 바로 그 결과였다.

이처럼 갈수록 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국경 밖으로 확대되는 것을 하비는 “공간적 조정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자본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일정 공간 안에서 흡수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잉자본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리적 확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만 자본주의에서는 무계획적으로 진행된다. 아무도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그 많은 시멘트를 동원해 도시를 지었지만, 정작 그 도시에 사람은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을 두고 마르크스는 ‘인간이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지만, 동시에 그 구조에 지배당하고 무력해진다’고 말했다며 하비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주류 비평가들은 이 말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인간적 경제결정론자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이 말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한다’는 아담 스미스의 말을 달리 표현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명석함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로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손이라는 것과 나아가 그 노동자들이 사회를 결정할 수 있는 지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는 점입니다.“

△대중 강연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연설 및 질문에 답하는 데이비드 하비. ⓒ창비

이후 하비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 변혁의 주체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가치의 생산(1권)과 가치의 실현(2권)을 구분한 것을 설명하며 가치가 실현되는 단계에서 벌어지는 약탈적 행위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비는 이를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고 부르고 그 중 많은 부분은 도시의 일상 생활 속에서 자행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비는 기존 좌파들이 가치 생산 과정에만 천착해서 노동계급만을 강조한 것을 비판하면서, 영세자영업자처럼 가치 실현 과정에서의 탈취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노동계급 못지 않게 사회 변화의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비는 자본주의는 늘 위기를 겪는 체제였고, 장차 지금보다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때가 되면 어디선가는 지금의 중국보다 10배나 더 많은 시멘트를 사용하려 들 것이라면서 그런 식의 성장은 결코 유지될 수 없고, 그것을 막으려면 반자본주의 운동이 필요하다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 날 하비가 답한 질문들 중 불평등의 책임이 지배계급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점이 특히 좋았다. ‘성장이 지체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빈곤층이지 않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난 30~40년 동안의 자본주의를 돌아보면, 성장이 많이 이뤄지든 그렇지 않든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누군가 ‘한국도 소비주의에 빠진 나라겠죠?’ 하는 취지로 질문하자, 그런 과잉소비 문제는 국가가 아니라 계급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즉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각국의 지배계급(대중교통 대신 개인 헬기로 이동하는 자들을 사례로 들었다)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명쾌했다.

이 밖에도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학자에게 답변을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미리 받은 질문지에 질문을 써서 냈고 스무 개는 족히 될 듯 보였다. 그런데 사회자는 질문 내용을 일부만, 그것도 다시 요약해서 소개했다. 실제로 하비가 답한 질문은 5개뿐이었던 만큼 차라리 플로어를 개방해서 진행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었을 것 같다.

전체 행사가 끝날 무렵, 하비는 오늘날처럼 체제의 비합리성이 극에 달한 시기도 드물다며 이런 비합리적 세계에 합리성을 강제하려면 자본주의를 밀쳐내야 하고 마르크스주의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역설했다.

오늘날의 극심한 불평등이 자본주의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점과 경제 위기 자체가 자본주의의 태생적 문제라는 설명은 국내 학자들한테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급진적 주장이었다. 사회 체제를 바꿔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반자본주의적 사회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비의 이런 급진적 주장들이 바로 오늘날 불평등에 분노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청년들을 이 자리로 불러 모았을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 강연을 찾은 사람들의 다수는 청년들이었다.(강연 시작 직전에 찍은 사진) ⓒ김종환

이윤율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측면에서는 이번 강연에서 아쉬운 부분이 여럿 있었다.

먼저 경제 위기에 대한 하비의 서술은 대체로 과소소비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어느 순간 자본이 과잉인 상태가 도래하고, 도시 개발 등으로 자본 과잉이 일부 해소하지만 결국 위기가 다시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자본이 과잉일지 아닐지 결정되는 데서 이윤율이 핵심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사이인데, 그 경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바로 이윤율이다. 그래서 이윤율이 낮으면 당장 수중에 자본과 (적자는 면할 수 있는) 투자 기회가 있더라도 자본가들은 생산에 나서지 않는다. 경쟁 자본보다 낮은 이윤율에 ‘섣불리’ 투자했다가 이윤율이 더 높은 투자 기회를 놓치면 향후 경쟁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택, 학교, 병원, 재생가능에너지 등에 수요가 넘쳐나는데도 주요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까닭이다. (관련 기사: ‘고장난 자본주의 ― ③ 과잉생산이나 과소소비가 위기의 원인인가?’)

그래서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재의 경제 위기를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하비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은 ‘도그마’라며 배격한다. 이런 이론적 차이를 간과해서 안되는 이유는, 과소소비론은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만 해결하면 자본주의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의 마이클 로버츠, 한국의 이정구 등은 하비의 이런 이론적 약점을 비판한 바 있다. 반면에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마르크스 자신이 얘기했듯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진정한 장애물은 자본 자체”라는 것을 보이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반자본주의적이다.

이 날 강연에서도 하비는 미국과 유럽에서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호황이 유지된 이유로 당시 수요와 공급 양쪽을 국가가 나서서 조절했던 것을 들었는데,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케인즈주의적 설명이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서 분석해 보면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호황이 유지된 이유는 전쟁 중의 막대한 자본 파괴와 냉전기 군비 경쟁이 유발한 의도치 않은 잉여가치 배출 효과에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관련 기사: ‘전후 장기호황이 소득 주도 성장 덕분이었는가?’)

하비가 가치 생산 과정과 가치 실현 과정을 대등하게 놓는 것도 이윤율을 등한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가치 실현 과정은 가치 생산 과정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지만(예컨대, 물건과 서비스는 생산되는 만큼만 판매될 수 있다), 가치 생산을 결정하는 데서는 가치 실현보다 이윤율이 더 결정적이다(자본가들은 팔릴 수 있어도 이윤율이 낮으면 생산하지 않는다).

더욱이, 기계 설비와 같은 생산재의 가치가 실현될지 여부는 전체 경제의 가치 생산 과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마치 오늘날 한국 조선업의 위기가 세계경제 위기로 인한 선박 수요 감소에서 비롯했듯이 말이다."

가치 실현 과정에서의 탈취를 축적 과정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고(故) 크리스 하먼이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2009)에서 지적했듯이 “탈취 행위 자체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거나 자본가계급 전체가 더 많은 잉여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 날 하비는 미국 항공사들이 파산 위기를 내세워 노동자들에게서 연금과 건강 보험 보장을 삭감한 것을 ‘탈취에 의한 축적’ 사례로 들었는데, 이것도 이론적으로는 엄밀하지 못한 것이다. 연금과 건강 보험은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일부이고, 그것을 앗아간 것은 가치 생산 과정에서 벌어진 착취로 봐야 한다.

과제

이런 경제 분석 상의 한계는 하비가 기존 좌파를 싸잡아 비판하며 제시하는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이 날 강연에서 하비는 가치의 생산과 실현 과정을 나누고는 가치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노동계급으로 보는 듯이 말했다. 이를 일관되게 밀어 불인다면 노동계급 개념은 매우 협소해 질 것이다. 예컨대, 가치 실현 과정에 기여하는 많은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누락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노동계급 규정이 자칫 협소해질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처럼 계급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집단을 한데 묶어서 ‘사회 변혁의 주체’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하비 자신이 강연 때 얘기했듯 영세자영업에서는 “많은 착취와 불법 노동이 자행”되고 그 때문에 그 안에서도 사장과 노동자 사이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상적으로 충돌한다.

이처럼 중간계급의 이해관계는 대자본과 충돌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과도 충돌하기 때문에 중간계급은 사회의 두 축인 노동계급과 지배계급 사이에서 동요하곤 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중간계급을 사회 변혁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노동계급의 독립적 운동이 강력할 필요가 있었다. 좌파들이 노동계급에 주목해 온 것을 하비가 문제 삼으며 제시한 근거는 이처럼 이론적·역사적으로 잘못됐다.

덧붙이자면, 하비가 암시하는 것과 달리 많은 좌파는 생산 과정에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지금도 세계적 수준에서는 파시즘에 맞서고 난민·이주민을 옹호하는 운동, 한국에서는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처럼 가치 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운동에도 수많은 국내외 좌파들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가 좌파 내 논쟁을 염두에 두고서 자신의 의견을 논쟁적으로 펼친 것은 큰 이론적 자극이 됐다. ⓒ창비

한편, 이번 강연에서 하비가 “오늘날의 관건은 정치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신이 만난 많은 청년들은 ‘비이데올로기적 문화적 무정부주의자’ 성향을 띠며 정치 조직을 만드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들에게 정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겠다는 맥락이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하비는 “포데모스와 시리자가 사회 운동을 대변하겠다며 등장했지만 지금 그들이 사회 운동과 맺고 있는 관계는 아주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는데, 핵심은 그 정당들이 운동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활력 및 사회 운동을 정치와 연결시켜 주는 제대로 된 정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가 “민주집중제나 레닌주의 조직은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간단히 기각하고 넘어간 것은 안타까웠다. 포데모스와 시리자가 지금 보이는 약점을 극복하려면 운동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태도 등 주요 쟁점에서 어느 정도 통일성을 추구하고, 그런 큰 틀의 통일성을 바탕으로 민주집중제를 구현하는 조직, 다시 말해 레닌주의 조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비는 여러 쟁점에서 자신의 의견을 논쟁적으로 드러냈고 하나같이 가벼운 쟁점들이 아니다. 이 글에서 나는 하비를 많이 반박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전적으로 하비가 주장을 예각화해서 펼친다는 장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고매한 학자’들께서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는 식으로 ‘좋은 말’만 늘어 놓았던가. 하비는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더욱이 세상이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는 청년들에게 ‘자본주의 이상의 급진적 대안을 추구하고, 운동에 참여하고, 정치 조직을 만들어라’는 그의 메시지는 청년들 사이에서 혁명적 좌파가 운신할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견으로 남은 쟁점들에서 우호적 논쟁과 운동 속 실천을 통해 입증받는 것은 혁명적 좌파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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