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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처벌 강화 시도 철회하고 낙태를 합법화하라

박근혜 정부가 낙태 처벌을 강화하려 한다.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 14조 1항을 위반하는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포함시키고, 시술한 의사는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을 정지(현행은 1개월)할 수 있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입법예고 기간인 11월 2일까지 개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낙태 시술을 전면 중단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것은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 시술비가 열 곱절까지 치솟았던 악몽을 떠오르게 한다. 낙태 단속은 치솟은 낙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청소년·빈곤층·노동계급 여성들을 특히 궁지로 내몰았다.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돼 낙태 처벌이 실제로 강화된다면, 또다시 낙태 시술이 위축돼 비용이 치솟고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들과 청소년은 제때 안전한 시술을 받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일부 여성은 절망에 빠져 위험한 자가 낙태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이는 ‘생명 존중’을 명분으로 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보여 준다. 특히,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병사’라고 우기고, 세월호 침몰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 이 정부는 ‘생명 존중’ 운운할 자격이 없다.

한국 정부는 예전에는 출산율을 억제하려고 낙태를 묵인·권장했다가, 이제는 ‘저출산’이 문제라며 낙태 처벌을 강화하려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국가는 여성의 몸을 자본주의 경제 성장(즉, 자본 축적) 논리에 종속시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인한다.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

그러나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임신은 여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출산은 여성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남편도, 의사도, 국가도 아닌 여성이 결정할 문제다. 여성에게 낙태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여성이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공문구가 될 것이다. 낙태 권리는 여성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원치 않는 출산의 두려움 없이 성을 즐기는 데도 중요하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여성들이 피임도 안 하고 무책임하게 낙태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피임이 낙태보다 더 간단하며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더 낫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완전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임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경우든 여성의 낙태 선택권은 보장돼야 한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말은 궤변이다. 태아는 모체에 의존하지 않으면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여성 신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에 따르는 부담과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도 여성이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보다 여성의 선택권이 우선이어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가 살아 숨쉬는 인간인 여성의 삶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인큐베이터’로만 본다는 뜻이고, 이는 본질적으로 여성차별적 주장일 뿐이다.

낙태죄 폐지와 낙태 전면 합법화

최근 정부의 낙태 처벌 강화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에서는 처벌 강화 법안 철회뿐 아니라 (반갑게도) 기존의 낙태죄도 폐지하라는 주장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내 자궁은 나의 것”, “수정란〈여성=인간”라는 구호를 외치며 ‘생명권’ 논리를 거부하고 낙태죄 폐지를 선명하게 주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은 2010년 낙태 단속이 강화됐을 때, 항의하는 단체 다수가 ‘단속·처벌 반대’에 초점을 맞추며 낙태죄 폐지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각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실로 진일보한 것이다.

낙태죄가 남아 있는 한, 낙태하는 여성들은 계속 비난받을 것이며, 정부가 단속·처벌을 시도할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다. 일부 여성들이 기소돼 처벌받는 일도 계속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요청에 의한 낙태를 전면 합법화해야 한다. 이때, 여성은 임신 주수나 낙태 사유의 제한 없이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태 허용 문제를 임신 주수나 사유 충족 여부로 접근하면, 낙태 제약의 수준이 핵심 쟁점이 되고 그 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의사나 정부 관료가 되므로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라는 점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낙태 합법화는 어떤 여성이든 비용 걱정 없이 안전하게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1973년 낙태 합법화 뒤에도 많은 경우 정부 지원금이 제공되지 않아 돈을 마련하기 힘든 청소년이나 빈곤층 여성들이 마취제 없이 수술을 하거나 성매매로 내몰리는 일이 벌어졌다. 따라서 안전한 낙태 시술이 보장되려면 낙태 수술에 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돼야 한다. 이런 조건이 보장돼야만 진정한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돼 119개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먹는 낙태약도 도입해 여성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낙태 알약 복용은 임신 7주 전에는 수술보다 안전하며 프랑스에서는 임신 7주 내에 시행되는 낙태의 56퍼센트가 이 방법으로 이뤄진다.

낙태는 계급 문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낙태가 남성 탓이라고도 주장한다(그래서 ‘섹스 파업’을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물론 여성의 피임 요구를 거부하거나 임신·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남성들은 문제다. 또, ‘왜 여자만 처벌받아야 하느냐’는 항변도 정당하다. 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이유가 단지 남성의 일방적 강요 때문이 아닌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이런 주장은 마치 여성은 성관계나 피임 문제에서 수동적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기 쉽다는 난점도 있다.

따라서 핵심은, 어떤 이유에서든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을 때 안전하게 중단할 수 있도록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책임한 일부 남성들 때문에 여성의 삶이 망가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과녁을 낙태를 불법화한 국가에 맞춰야 한다.

낙태를 남 대 여의 구도로 보면, 본질적으로 낙태가 계급 문제라는 점을 간과할 수 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낙태 불법화로 고통을 받은 것은 주로 노동계급과 빈곤층 여성이었다. 부유한 여성들은 비싼 돈을 들여 안전한 시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에게는 그런 대안이 없었기에 위험천만한 뒷골목 낙태로 내몰렸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낙태를 불법화하거나, 합법화 이후에도 낙태권을 제약하는 공격을 호시탐탐 시도하는 이유는 지배계급이 보수적 가족 가치관을 유포하며 노동력 재생산을 지배하려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경제 위기 때는 긴축 정책에 따른 복지 축소의 일환으로 빈곤층 낙태 지원비가 삭감되기도 한다.

이처럼 낙태는 단지 여성의 쟁점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동계급의 문제이므로, 노동조합이 낙태권 옹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낙태권 운동들은 노동조합 조직이 대거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세워진 노동자 국가는 세계 최초로 여성의 요구에 따른 낙태를 합법화했고(비록 10여 년 뒤 스탈린 반혁명으로 역전됐지만), 영국에서도 1970년대 영국 정부의 낙태권 제약에 맞서 영국노총(TUC)이 이끈 8만 명 규모의 대중 시위가 벌어져 정부의 공격을 좌절시켰다. 최근 벌어진 폴란드의 낙태권 운동에서도 노동조합의 공식적 지지와 참가 독려가 중요했다.

폴란드 낙태권 운동의 경험에서 배우기

최근 한국의 낙태권 운동 참가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참가한 것은 이 운동이 폴란드의 낙태권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폴란드의 사례는 여러 모로 한국의 낙태권 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낙태가 불법인 폴란드의 상황은 낙태가 합법화된 서구의 여러 나라들보다 한국의 상황과 더 유사하다.(물론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들에서도 낙태권 제약 시도가 종종 벌어져 낙태권 운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폴란드는 가톨릭 교회가 공식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난 20년 동안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낙태는 살인”이라는 관념을 주입해 온 매우 보수적인 나라다. 폴란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단체인 ‘노동자민주주의’ 활동가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에 따르면, 그동안 폴란드에서는 교회와 우파의 공세로 낙태권 요구 운동이 수세에 몰려 있었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비관이 많았다.

그러나 이토록 보수적인 가톨릭 나라에서 무려 10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낙태권 운동이 터져나와 마침내 가톨릭계 정당인 집권당의 반동적 시도가 좌절됐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폴란드 대중의 자신감은 더 커졌다. 이제 시위대의 주장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자유주의적 야당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여성의 요구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라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낙태가 불법화된 한국에서도 폴란드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또한 한국의 여성운동이 우파의 공세적 태도에 위축돼, 생명권 논리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며 낙태 합법화 요구에 소극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도 보여 준다.

10월에 열린 폴란드의 대규모 낙태권 시위는 그곳 노동자민주주의 활동가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 몇 달간 폴란드에서 벌어진 시위의 연장선 상에 있다.” 낙태권 시위에서는 많은 여성단체들과 함께 좌파 정당 라젬(“함께”라는 뜻)이 능동적 구실을 했고,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라젬은 다음 선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거리에서 많은 활동을 벌이는 데 더 주력해 왔다. 전국노동조합동맹(OPZZ)와 교사노조인 ZNP(폴란드 최대 단일노조)가 낙태권 시위 지지를 표방하고, 조합원들의 시위 참가를 독려한 것은 매우 중요했다. 이것은 10월 시위에서뿐 아니라 향후 폴란드 낙태권 운동의 전망에 더욱 중요한데, 노동조합이 낙태권 운동에 대거 동참할 때 낙태 합법화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폴란드의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인 ‘노동자민주주의’는 거리 대중 행동의 중요성과 노동조합의 조직적 동참을 강조하는 구실을 했다. 가령 교사노조의 노동조건 방어 집회에서 낙태권 시위를 헤드라인으로 하는 신문을 통해 노동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한국의 낙태권 운동에서도 장차 아래로부터 대중 행동과 노동조합의 동참이 운동을 실질적으로 전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개정 증보판] 낙태, 여성이 선택할 권리

정진희, 최미진 지음, 노동자연대, 52쪽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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