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와 대만 상공에서 가중되는 미 · 중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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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동아시아에서 상징적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5일 중국 해군은 남중국해 공해상에서 미 해군의 수중 드론을 나포했고,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황해 북쪽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대규모 실탄 훈련을 벌였다. 트럼프도 “중국이 훔친 드론, 갖게 놔 두라”며 으르렁거리며 맞대응했다.
18일에는 핵미사일이 탑재 가능한 중국 전략폭격기 훙-6K가 세 번째로 대만 상공을 비행했고, 이에 미국은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 출격, 일본 자위대는 F-15 출격으로 대응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때문에 미국이 패권적 대외 정책에서 후퇴할 것이라던 일각의 전망이 무색하게도, 열강의 전투기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불안한 지역인 대만 상공에서 조우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전부터 호전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마이클 플린은 북한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세속 동맹”이라 칭하며 대북 강경책을 공언했다. 22일 플린은 한국 외교 대표단을 만나 사드 배치의 중요성을 거듭 역설하기도 했다. 또, 국무부 부장관으로 거론되는 리처드 하스는 지난 12일 ‘세계 질서 2.0’이라는 글에서 “국가의 주권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며 “[대북] 선제 타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가 지미 카터 이래 37년의 관행을 깨고 타이완 총통 차이잉원과 전화 통화를 한 것도 이 맥락의 연장선이었다.(▶관련 기사)통화 직후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역사적 전화 통화는 대(對) 중국 정책 전환을 염두에 두고 몇 달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트럼프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역 등에서 [미국에 유리한] 협약을 맺지 않는 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레이건 이래 공화당 우파 일각도 1979년 민주당 카터 정부가 대소련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이유로 중국과 손잡으며 대만과 단교한 것을 “냉전 동맹에 대한 배신”이라 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관련 기사)
대선 기간부터 트럼프는 특히 중국을 염두에 둔 강경 기조를 공공연히 내세웠다.
트럼프는 레이건의 슬로건 “힘을 통한 평화”를 내걸며 해군력 강화, 첨단 MD 구축, 군비 증강을 위한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조항 철폐 등을 공약했다.
이는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계 패권을 수호하겠다는 미국 지배자들의 강력한 의지(구체적 방식에서 이견은 있을지라도)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그간 경제적으로 부상했을 뿐 아니라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때부터 분명히 드러난 것이었다.
미국 대외 정책의 거두 헨리 키신저가 트럼프 당선이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은 트럼프의 최근 행보가 단지 트럼프 개인의 돌출적 선택만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나 상황이 미국 지배자들이 원하는 대로 전개될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미국 지배자들이 초조함을 느끼는 이유인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 능력 약화 자체가 트럼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엄청난 기회”?
미국은 2008년 대불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런 상황에서 경제를 위기에서 회복하고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처지다.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에 불안정성의 안개가 짙게 낀 것은,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상당히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무산 공언이 논란을 낳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TPP를 추진할 때는, 아시아 시장을 미국 기업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척해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목적과, 중국이 경제적·지정학적으로 부상하면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목적 모두를 노린 것이었다. 그래서 트럼프가 TTP를 무산시키면 지정학적으로 후퇴할 뿐 아니라 미국 기업들도 손해를 볼 수 있어 미국 지배자 다수가 난색을 표한 것이다.
△ 강경한 대중국 정책을 공언해 온 트럼프.
그러나 트럼프가 TPP 무산을 주장한다고 신자유주의 전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자유무역을 맹비난하면서 당선했지만, 반면 신자유주의의 다른 핵심 요소들인 법인세 감면, 금융·노동시장 규제 완화 등은 당선 직후부터 적극 지지했다. 이 때문에 미국 금융가 등 지배자 일부는 ‘트럼프노믹스’로 미국 경제가 회복할 것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그러나 국채 가격 하락, 금리 인상, 달러화 강세 등이 성장세를 둔화해 더한층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도 만만찮다.
그리고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 정책을 총괄할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고 위원장으로 대 중국 강경론자 피터 나바로를 내정하는 등, (TPP 없이도)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견제해 미국의 우위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런 압박으로 미중 간의 경제적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다.
갈마드는 갈등
이런 경제적 갈등이 지정학적 갈등과 점차 갈마들며 파장을 낳을 것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그 불길한 전조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일각에서 말하듯 미중 갈등이 즉각 전면적 충돌로 비화할 것이라고 보는 것도 과장이다. 현재로서 미국의 패권은 지역 차원에서 도전 받는 정도고, 제1 교역 상대국인 중국에 대한 근본적 공격을 감행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위안화 하락세를 저지하고자 자본 유출 막기에 급급한 중국 역시 미국의 패권에 근본적 도전장을 내밀 처지는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앞으로 다가올 시기를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이 이끄는 “열강이 경합하는 시대”라 규정했다. 경합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 같은 동맹국과 부담을 나눠지려 들 것이고, 그 때문에 한반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다. 분명, 한국의 좌파들이 제국주의 체제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선 저항의 전략을 세워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