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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에게 비수 꽂은 문재인

대선 정국에 동성애 쟁점이 돌연 뜨거운 감자가 됐다. 4월 25일 JTBC 대선후보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가 우익들을 결집시킬 쟁점의 하나로 동성애 문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홍준표는 “군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킨다”,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 따위의 거짓말과 혐오 발언을 쏟아 내며 문재인에게 동성애를 반대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이후 선거운동에서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가 아니고 엄벌을 해야 한다”는 말도 지껄였다. 문재인은 홍준표의 추궁에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확인해 줘, 성소수자들의 지탄과 항의를 받았다.

홍준표의 발언은 오래 전부터 우익 기독교 세력이 퍼뜨려 온 전형적인 거짓말이다. 홍준표가 떠받드는 미국은 2011년 동성애자의 군 복무를 제한하는 정책을 폐지했고, 2016년에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가 육군 장관이 됐다. 프랑스, 독일, 덴마크, 이스라엘, 대만 등지에서도 별도의 제한 없이 동성애자들이 군인이 된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는 이렇게 지적했다. “HIV 감염은 성정체성과 관계없이 HIV 감염인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할 때 전파된다.”(강조는 인용자)

물론 홍준표에게 이런 엄연한 사실이란 하등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미수에 그쳤지만 강간 공모 사실을 자서전에 그리운 후일담처럼 써놓은 데서 알 수 있듯 홍준표의 의식이 워낙 저열한 데다, 동성애를 이슈로 들고 나와 핵심 지지 기반을 다지고 핵심 우파들을 결집시키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동성애 혐오를 자신의 표지로 삼는 기독교 우익은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주요한 한 축이었고, 이들 일부가 자유한국당과 ‘공동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있다. 홍준표는 선거 기간에 주요 기독교 우익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며 “[분열된] 보수 우파 결집”을 강조해 왔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공개 석상에서의 이런 혐오 발언은 성소수자를 더 고립시키고 혐오와 차별을 부추긴다. 혐오 발언의 해악 때문에 유럽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이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이자 ‘인권 변호사’를 자처하는 문재인이 홍준표의 혐오 발언을 반박하기는커녕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거듭 말해 배신감을 안겨 줬다. 문재인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말투와 표정은 이것이 그의 평소 가치관임을 느끼게 했다. 항의가 빗발치자 문재인은 몇 번이나 입장 표명을 미루다가 4월 27일 자신의 발언이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 반대”한 것이었고, “성소수자들에 아픔을 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다”고 했다. 또한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의 해명은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군대 내 동성애 허용이 동성간 성희롱과 성추행의 빌미”라는 것은 성폭력의 원인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이성 간 일어나는 성희롱‍·‍성추행은 이성애 때문인 것인가? 핵심은 상호 합의 여부, 즉 성적 자기결정 존재 여부이지, 성적 지향이 아니다. 문재인의 주장은 군대의 상명하복 식 위계와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이라는 점을 흐린다.

문재인의 “군 내 동성애 반대”는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한 옹호로도 읽힌다. 문재인은 군형법 92조 6항 폐지 요구나 최근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육군에서 군형법 92조를 근거로 구속된 A대위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동성애자였고 합의 하에 동성간 성관계를 했을 뿐이다. 군형법에서 금지하는 ‘영내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도 아니었다.

이성애자들에게는 합법인 결혼이 동성애자들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것도 명백한 차별이다. 문재인은 동성혼 반대에 단호하다.

립서비스

이런 차별적인 법‍·‍제도 개선을 반대하면서 “차별에는 반대한다”니 모순이다. 군형법 92조로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는 동성애자 군인들이 있다. 그리고 “현행 법 체계”를 이유로 혼인 신고서가 계속 거부되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같은 커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차별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차별에는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선 후보들이 동성애 혐오 경쟁하는 꼴 보자고 촛불 든 게 아니다

문재인이 우익 기독교 행사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염려 말라”며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를 외면하는 것도 그의 “차별 반대” 발언이 정치공학적 표 계산 속에서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얄팍한 책략임을 보여 준다.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자신의 공약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명백한 후퇴다.

문재인 개인뿐 아니라 민주당 자체가 그동안 차별 문제에서 일관되지 않고 우파의 압력 앞에 취약했다. 2013년 민주당 의원 김한길과 최원식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가 우파들의 반발에 스스로 철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2014년 우파들이 극렬히 반대하자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했다.

민주당은 그 당의 일부 진보파 지지자를 의식해 때때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거나 ‘차별 반대’ 등을 말하지만 이는 립서비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과 같은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서 우파들과 결국에 협력할 태세가 돼 있고 이때 걸림돌이 되는 쟁점들은 손쉽게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민주당의 기반과도 관계가 있다. 민주당은 기반이 자본가 계급이기 때문에, 비록 그 계급의 제2 선호 정당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착취를 지상과제로 여긴다. 자본가 계급은 효과적인 착취를 위해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고 차별한다. 특히, 성소수자 차별은 소위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노동력 재생산을 떠맡길 수 있는 형태의 가족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상 말이다.

이런 점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맞선 투쟁에서도 민주당으로부터, 또 자본가들로부터 독립적인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중요하다.

박근혜 퇴진 촛불운동의 일부였던 성소수자들은 ‘촛불 대선에 동성애 혐오가 웬말이냐’며 정당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동성애 혐오 경쟁을 하는 꼴을 보려고 우리가 촛불을 든 것은 아니다. 문재인은 “군 내 동성애 반대” 발언 철회하고, “차별 반대” 말대로 성소수자 차별하는 군형법 92조 6항 폐지를 포함한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메이저 후보 5인 중 JTBC 대선 토론에서 성소수자를 방어하겠다고 밝힌 유일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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