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생리대: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무책임한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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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 생리대 사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안이한 대처로 여성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며칠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과학적 타당성”이 없다고 비난하던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유해물질 실험 결과와 생리대 제품명을 돌연 공개했다.
충격이게도 유해물질이 검출된 생리대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유명한’ 제품들이다. 그 제품들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한국 생리대 시장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비싼 가격과 해외 운송비를 감수하고 유기농 재료로 만든 해외 생리대 제품을 구매한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독성 생리대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황당한 책임 전가
생리대 안전성을 책임져야 할 식약처는 어설픈 꼼수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식약처는 여성환경연대 실험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하다가 여론의 거센 압력에 밀려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면서 “여성환경연대의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서 불신”이 생겼고, “소비자들의 지나친 우려”가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불신”을 자아낸 주범은 그동안 여성들의 건강과 안전을 나 몰라라한 식약처다.
식약처는 오랫동안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부정하며 안전성 강화 요구를 묵살해 왔다. 일회용 생리대에 접착제 등 합성화합물이 사용되는 만큼 다양한 유해 물질이 나올 가능성이 큰데도 식약처의 생리대 검사 항목은 20년 전에 정한 9개뿐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독성물질 중 상당수는 아예 검사 항목에도 없다. 오히려 식약처는 기업 활동 지원을 명분으로 안전성 심사 규정을 간소화해 왔다.
이런 식약처의 안이한 대처를 방패 삼아 최근에는 생리대 기업들이 적반하장식 반격에 나서고 있다.
‘릴리안’을 만드는 ‘깨끗한 나라’는 생리대 유해물질 실험 책임자인 교수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생리대 시장의 5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도 여성환경연대의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생리대 유해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정작 문제가 된 유해 물질이 자사 제품에 사용됐는지, 얼마나 검출되는지는 전혀 공개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파 언론도 가세하고 있다. 《주간 조선》은 “무분별한 정보”에 의존해 과민 반응을 보이는 여성들을 문제 삼았다. 또한 ‘유한킴벌리’ 임원이 여성환경연대 이사임을 지적하며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시장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분쟁에 평범한 여성들이 놀아난 것인 양 본질을 호도했다(《주간 조선》 2473호 ‘릴리안을 위한 변명’).
물론 시민단체 이사가 생리대 시장 1위 기업의 임원을 겸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많은 사람들이 식약처를 못 믿으면서도 여성환경연대의 폭로에도 일부 의구심을 느끼는 이유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실험 결과를 제보 받은 뒤 반 년이 지나도록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은 식약처가 진정한 문제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논란이 커지자 식약처는 생리대 896개 품목에 대한 ‘1차 전수조사’를 실시한 후 이달 말에 결과를 발표하겠다며 부랴부랴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식약처는 논란이 되는 생리대 유해 물질 104종 중 단 10종만 조사할 예정이다. 생리대 사용 피해에 대한 역학조사는 계획조차 없다. 식약처가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 중인 피해 사례 설문조사는 빈약하다 못해 한심하다. 피해 증상 결과 항목에는 ‘중대한 불구, 선천적 기형 초래, 생명의 위협, 사망’ 등을 점검하게 돼 있다.
식약처는 이런 제한적이고 형식적인 검사로 기업들의 짐을 덜어 주려 하는 듯하다.
그래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생리대 전수조사를 식약처에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민관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인 전수조사·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지당한 조처에 즉각 나서야 한다. 그뿐 아니라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독성 생리대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전폭 지원해야 한다.
안전 위협 컨트롤 타워
식약처는 식품·의약품·의약외품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제품을 폭넓게 다뤄 ‘국민 안전 컨트롤 타워’로 불린다. 하지만 식약처는 ‘멜라닌 분유’, ‘석면 베이비파우더’, ‘중금속 수산물’,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달걀’ 등 안전사고가 터질 때마다 무능한 대응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박근혜는 식약청을 식약처로 승격시키고 권한을 강화해 규제 완화 선도 부서로 만들었다. 식약처는 안전 규제 때문에 ‘불편’을 겪는 기업들의 고충 처리 업무에 주력해 왔다. 반면 안전 검사 예산은 계속 삭감됐고 안전 규제는 너덜너덜해졌다.
문재인은 집권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 했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말과 달리 독성 생리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입법 권한도 있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쉽게 생리대 유해물질 항목을 개정하고 안전 검사를 강화할 수 있다.
생리대는 여성이 보통 수십 년간 사용하는 생필품이다. 따라서 정부가 안전하고 질 좋은 생리대를 개발해 무상으로 보급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이윤 중심 체제에 도전하는 정치와 운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