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간 TV토론으로 본 민주노총 임원선거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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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임원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꼭 2주가 된 지난 11월 19일 TV토론이 열렸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가 선거의 단연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면서, 이를 기준으로 좌-중-우 구도가 자리잡았다. 2번 이호동 후보조가 투쟁 우선과 노정대화, 1번 김명환 후보조와 4번 조상수 후보조가 노사정위 아닌 새로운 틀로 사회적 대화 참여, 3번 윤해모 후보조가 노사정위 복귀 입장이다. 이날 TV 토론에서도 이 구도가 재확인됐다.
신8자회의 vs 사안별 노사정 대화
3번 윤해모 후보는 문재인 정부 등장으로 “시대가 바뀌었다”며 시종일관 “노사정위를 통한 노동현안 해결”을 주장했다. 투쟁보다 대화에 거의 전적으로 강조점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노사정위 대화로 해결 안 되면 이후에 투쟁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화에만 매달리다 투쟁의 타이밍을 놓치고 조합원들의 사기를 갉아먹은 뒤 투쟁을 시작하면, 스스로 불리한 처지로 몰아넣은 격이어서 좋은 결과를 거두기 힘들다. 그러고는 조합원들 탓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우리는 많이 보았다.
4번 조상수 후보와 1번 김명환 후보는 정책과 비전이 비슷하다는 반응이 많아서인지 서로 차이를 부각시키고자 애썼다. 특히, 조상수 후보 측이 토론 전략을 그렇게 짠 듯했다.
4번 조상수 후보는 최근 1번 김명환 후보 측이 제안한 ‘신8자회의’를 비판했다. ‘신8자회의’ 제안은 노사정위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를 8자(노동 대표 2인, 사측 대표 2인, 정부 대표 2인, 대통령, 국회 대표)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노총이 제안한 ‘8자회의’와 매우 흡사하다.
그렇게 되면 8자 중에 민주노총 몫은 1에 불과할 것이다. 조상수 후보는 이런 점은 비판하지 않았다.
조 후보는 “국회를 끌어들이면 논의를 어렵게 할 뿐”이라며 “노사정 대표자들의 책임 있는 논의”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사안별 노사정 대화”를 당장 추진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팀이 1번 김명환 후보조보다 사회적 대화 성사를 위한 더 빠르고 현실적인 길을 제시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전에 없던 방법이 아니다. 12년 전(2005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노사정위 복귀 반대가 중론인 상황에서 그것을 우회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가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비정규법안과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문제점은 노사정위의 경우와 하등 다를 바 없었다.
4번 조상수 후보가 사회적 대화의 조기 추진을 변별점으로 제시했다면, 1번 김명환 후보는 선거운동 초기보다는 투쟁을 좀 더 강조하는 인상이었다. 자신의 ‘신8자회의’ 제안이 너무 온건한 인상을 줘 중화가 필요하다고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최저임금 1만 원 조기 실현이나 노동법 전면개정 투쟁본부 설립 등을 제시했다. 또,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을 “꼼수”라고 비판했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김명환 후보의 이런 비판은 조상수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첫 과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끌어냈다고 자랑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환 후보는 윤해모 후보에게 사회연대임금 정책과 정규직 양보에 대해 물으면서, 4번 조상수 후보와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말을 슬쩍 흘리기도 했다. 윤해모 후보는 정규직 노동자와 정부와 재벌이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격차 해소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답변에서 예리한 시청자들은 조상수 후보가 추진한 ‘공공상생연대기금’을 떠올렸을 수 있다.
그러나 4번 조상수 후보와 1번 김명환 후보는 사회적 대화 문제에서 근본적으로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둘 다 사회적 대화 성사에 강조점이 있다. 그 방법의 차이는 부차적일 뿐이고 얼마든지 절충 가능하다. 또, 두 후보가 모두 사회적 대화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양보를 내놓을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4번 조상수 후보는 노동시간단축이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며 노사정의 책임과 역할 분담을 주장하고 있다. 1번 김명환 후보도 사회연대전략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진정한 변별점?
4번 조상수 후보가 1번 김명환 후보와의 차이를 부각시키고자 제기한 또 다른 쟁점은 정치세력화와 한반도 평화 문제였다.
조상수 후보 측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김명환 후보에 맞서 “사회세력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내부 갈등만 키우는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보다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김명환 후보 측도 조직 확대나 사회적 위상 강화를 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자체가 변별점이 되기는 어렵다. 남는 문제는 정치세력화 추진 자체일 것이다. ‘정치세력화 반대’라고 주장하면 대안이 없는 것으로 보일까 봐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쟁점은 노동조합 상층기구인 총연맹의 구실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사회세력화” 주장은 노동조합 자체가 정치적 세력으로 기능하게 만들자는 것으로, 민주노총이 투쟁을 이끌기보다는 전문 역량을 길러 정책 제안을 주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조상수 후보는 비정규직 조직화에서 민주노총의 과제는 “공중전”(사회정치 쟁점화)이라고 말해 이런 전망을 얼핏 드러냈다.
조상수 후보는 또한 북핵 문제를 김명환 후보와의 변별점으로 삼고자 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김명환 후보의 설명을 듣고는, “[북한의 핵 개발이]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짚고 넘어갔다.
그러나 북핵에 원칙적으로는 반대하면서도 북핵 반대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반도 평화운동 건설이 불가피함을 조상수 후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강력한 평화운동 건설에 이바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중간파 후보들 사이의 공방에 비해, 2번 이호동 후보는 좌파적 자세를 부각시키려 애썼다. 그는 또한 노사정위 복귀를 반대하면서 노정 대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쟁과 교섭의 관계, 교섭의 내용(정규직 양보론에 대한 우려) 등의 문제가 다뤄지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노정 대화냐 노사정 대화냐 하는 교섭 대상자 문제가 가장 크게 부각됐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비춰 민주노총에 요구되는 과제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에 관한 다른 후보들의 부족점을 날카롭게 제기하는 것이 후보간 견해 차이를 살펴보려는 조합원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자 조직의 성장으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에 따라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용기와 자신감이 더욱 없어져 가는 이때,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어쨌든 필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투쟁적·급진적 조합원들은 좌파적 노조 지도부의 좀 덜 구체적인 정치적 전망과 지향을 그들의 대중 투쟁으로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적 좌파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전망과 지향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