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일자리 보호를 위해 국유기업화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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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이 글이 발표된 이후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각주를 첨가했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는 수익성 낮은 기업의 파산과 일자리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법정관리나 정부 지원으로 기업이 회생된다고 하더라도,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노동자들이 희생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시장 중심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래야만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정부는 공장 폐쇄·부도 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할 힘이 있다.
우리는 정부가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리려고 거액의 자금을 대고 한시적으로 국유화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 왔다. IMF 경제 공황이 닥친 1997년 1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정부가 지원한 공적자금 규모는 168조 7000억 원이나 된다. 2016년 현재 법정관리 기업만 1150개에 이르고, 그 뒤로도 신청이 급증했다.
이런 돈은 기업 살리기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구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 법정관리나 공적자금 투입은 매각을 전제로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는 이와 다르다. 위기의 기업을 정부가 인수하고 경영해서(영구 국유화) 고용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아니고서는 자동차·조선업 같은 기업에 거액의 자금을 댈 수 있는 주체는 없다. 사기업이 인수에 뛰어든다면, 여느 매각 과정에서 볼 수 있듯 노동자 희생이 전제될 것이다.
물론 국유기업이라고 노동자들을 쥐어짜지 않는 게 아니다. 공기업은 파산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데서는 사기업과 차이가 없다.
노동자 통제가 필요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2015년 그리스 노동운동은 은행 국유화와 더불어 노동자 통제를 요구했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 통제가 진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국유화 요구가 쓸모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당장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즉각적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안이다. 노동자들이 국유화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은 시장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고,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실제 국유화를 관철할 힘이다. 1930년대 미국 GM 노동자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유럽·미국의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와 부도에 직면해 공장을 점거했다.
이런 투쟁은 생산을 마비시켜 완강한 사용자 측에 타격을 가할 수 있고, 사용자들이 함부로 설비를 철수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연대의 초점을 형성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다.
GM에 책임을 묻는 효과적인 방법
국유화 요구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위기를 만든 기업주의 책임은 면피해 주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주되게 정부를 두드린다는 점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국유화 요구는 오히려 가장 분명하게 기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어떤 기업주가 공장을 폐쇄하거나 부도를 내면 정부가 부실 경영주와 채권단이 갖고 있는 지분을 무상으로 몰수해 소유권과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일자리 보호를 위한 국유화는 법정관리와 같은 한시적 국유화와 명백한 차이가 있다. 현행법은 기존 기업주에게 지분을 일부 보장하고, 심지어 법정관리 상태에서도 경영의 책임을 맡도록 보장한다. 2009년 쌍용차를 부도 낸 상하이차는 지분 매각 대금까지 챙겨갔고, 그 경영진들이 법정관리인이 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한국GM에서도 GM의 책임을 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가 군산 공장을 아무런 대가 없이 몰수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GM이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게 하자는 것은 그것을 실제 구현할 방법에서 난관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GM이 뻔뻔하게 그 책임을 부정할 것이므로 투쟁의 초점이 ‘제대로 된 실사’로 맞춰질 공산도 크다.
그런 점에서 GM 책임론을 강조하는 좌파 단체 변혁당이 국유화라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변혁당은 그동안 “노동자 민중 주도의 헌법 개정”을 주장하면서 “공공부문·기간산업 국유화”를 헌법에 명시하자고 주장해 왔는데, 막상 당면 노동자들의 절실한 투쟁 요구로서는 국유화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1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 요구를 쟁취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헌법 개정 등 좌파적 개혁주의 프로그램을 통한 길을 찾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의 투쟁이 결정적이다. 혁명적 좌파는 당장 눈앞에 국유화 요구를 성취할 점거 투쟁이 분출하지 않더라도, 참을성 있게 산업 현장에서 그런 투쟁을 이끌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주
- 이 글의 초판이 발표된 이후 변혁당은 3월 24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반포한 유인물에서는 한국GM을 “공기업화하여 공공적 생산과 통제로 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변혁당이 조금 늦게나마 ‘노동자 살리기 위한 한국GM 국유화’를 분명히 한 점을 환영한다.
그럼에도 변혁당의 견해에는 모호함이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수탈분을 환수하라”고 요구하면서도, 막상 공기업화를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국책은행이 보유한 지분에 근거해 공기업화하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자칫 GM 본사의 “수탈분”에 대한 ‘제대로 된 실사’로 투쟁의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고, 한국GM 지분을 산업은행이 유상으로 매입하라는 생각으로 빠질 수도 있을 듯하다. ‘제대로 된 실사’를 기다릴 게 아니라, ‘정부가 한국GM을 즉각 대가 없이 몰수해 일자리를 보호하라’고 요구하는 게 가장 분명하게 GM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이자,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도록 할 수 있는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