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검은 금요일’ 시위:
낙태 처벌 반대해 대중 투쟁이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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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낙태 규제 강화에 맞서 폴란드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5만 5000명이 모여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집권당이자 우익 정당인 법과정의당(PiS) 당사로 행진했다. 그단스크, 크라쿠프, 포즈난 등 23개 도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이번 ‘검은 금요일’ 시위는 법과정의당 정부의 낙태 전면 금지법안을 좌절시킨 2016년 10월 3일의 10만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한국 언론은 이번 폴란드 시위를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폴란드의 대규모 낙태권 시위는 낙태 합법화를 바라는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이다.
폴란드의 우익 정부는 계속 기회를 엿보다가 올해 1월 낙태를 거의 모두 금지하는 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불치병이 있거나 다운증후군 등의 장애가 있는 태아의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현재 폴란드에서 허용되는 합법 낙태의 약 95퍼센트가 태아 이상 때문이다.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이미 매우 엄격한 낙태법을 더욱 옥죄려는 반동적인 시도에 분노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폴란드에서 그나마 허용되는 합법 낙태는 여성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협이 될 때, (강간이나 근친상간처럼) 불법적 행위로 인해 임신했을 때, 태아가 매우 심각하고 불가역적인 장애를 가진 경우뿐이다.
이 때문에 폴란드에서 이뤄지는 합법 낙태는 해마다 겨우 1000건에 불과하다(폴란드 인구는 약 3800만 명이다). 매년 8만~12만 건의 낙태 시술이 폴란드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추산된다.
낙태권 운동
폴란드의 낙태권 운동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낙태권 운동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폴란드의 혁명적 조직 ‘노동자민주주의’의 리더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는 이번 시위의 성공을 때를 놓치지 않고 시위를 조직할 수 있는 조직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고 지적한다. 신생 좌파 정당 라젬(‘함께’)이 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정부의 공격은, 저항을 이끌어 온 새 세대 여성 활동가들을 공격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젊은 여성들이 이번 시위에 대거 참가했다.
폴란드의 낙태권 운동은 2016년 대중적 시위로 승리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좌파들이 주도한 낙태권 운동은 여성이 요구하면 낙태를 허용하라고 촉구해 왔다. 2016년 대중 시위로 잠시 물러섰던 정부가 올해 초 새로운 공격을 내놓자 운동은 즉시 반격을 해 왔다.
정부가 법안을 추진한 1월부터 폴란드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1월 13일 좌파들이 주도한 첫 시위가 수천 명 규모로 일어났다. 17일에는 ‘폴란드 여성 파업’이 주최한 시위가 폴란드 전역에서 일어났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다시금 폴란드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3월 4일과 3월 8일에 각각 수천 명 규모의 집회가 벌어졌다.
가톨릭 주교들은 시위가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3월 14일에 의회에 “낙태 중단”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며칠 뒤 법과정의당이 법안을 꼭 의회 위원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며 의회 일정을 추진했다.
폴란드 낙태권 운동은 즉각 검은 금요일 시위를 호소했다. 그 이틀 전, 좌파 학생들이 바르샤바 대학 정문 밖에서 낙태권 시위를 벌였다. 학생 수백 명(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이 주교 본부 건물로 행진해 갔고 잠시 앞마당을 점거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3월 23일 검은 금요일 시위 전에 사이드스텝을 밟았다. 낙태중단법을 다루는 의회 절차가 시위 전날 연기됐다.
그럼에도 시위는 취소되지 않았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만약 정부가 후퇴하지 않았다면 시위대는 훨씬 더 분노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후퇴로 폴란드 대중은 2016년 10월 3일 시위에 이어 또 한 번의 승리를 맛봤다.
폴란드 정부는 핵심 지지자들과 사제의 신뢰를 유지하려고 해 왔지만 대중 시위가 훨씬 더 강력했다. 정부에 투표한 사람 중 36퍼센트도 검은 금요일 시위를 지지했다. 이 시위 사흘 뒤 ‘법과정의당’의 지지율은 12퍼센트 포인트 떨어져서 지난 선거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시위에는 많은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이 참가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부가 동원을 호소한 것은 아니었다. 낙태권 투쟁에 노동조합 활동가 참여를 강조해 온 제브로프스키는 아직 계급 투쟁 수준이 낮기에 노조 지도자들이 자신의 조합원들을 동원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대 노조인 연대노조는 정부를 지지하며, 가톨릭 교회와의 연계 때문에 낙태권 운동에 적대적이다(연대노조가 발행하는 주간지 1면에 낙태 반대 기사를 실었다). 다른 두 노조 연맹은 낙태권 쟁점을 다루는 것을 두려워한다. 일부 좌파는 노동자들이 임금이나 주택 같은 쟁점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억측하며 낙태권 시위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개별적일지라도, 많은 노조원들이 이번 시위에 참가했기에 노동계급의 열망과 동떨어진 노조 지도부나 일부 좌파의 태도는 바뀌어야만 한다.
이번 시위에서는 단지 낙태금지법 철회를 요구할 뿐 아니라 여성이 요청할 경우 낙태를 허용하라는 요구가 많이 나왔다. 시위 현장에 그런 요구가 담긴 배너가 많이 걸렸다. 시위대가 외친 슬로건 대부분이 여성의 낙태 선택권 또는 여성의 요청 시 낙태 허용 요구였다고 한다.
운동의 최선진 부위는 낙태 합법화를 성취할 때까지 운동을 지속하길 원한다. 자유주의적 야당은 현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면서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낙태가 노동계급의 쟁점임을 강조하는 좌파가 자유주의자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대중의 낙태 합법화 염원을 투쟁으로 잘 조직하는 것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