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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소원 공개변론:
낙태죄 폐지하고 낙태 권리 보장하라

5월 24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낙태한 여성과 낙태 시술을 도운 의료인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 위헌심판의 공개변론을 연다.

그리스도교 우파를 비롯한 낙태 반대 진영은 “태아의 생명권” 논리를 앞세워 낙태죄 폐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대학교수 96명이 낙태죄 폐지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헌재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수정란은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 생명체로 인식해야 한다”며 낙태죄 합헌 결정을 촉구했다.

낙태 반대론자들의 궤변

낙태 반대 진영은 낙태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살인이며, 낙태죄 폐지는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풍조를 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 명 서명을 조직한 천주교 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보다 인간 생명이 우선한다”고 못박았다.

이런 주장은 극히 여성 차별적이다. 여성은 임신하면 그냥 인큐베이터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낙태는 범죄가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다 ⓒ이미진

태아나 수정란에 인간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를 인간으로 여기고, 따라서 다른 인간과 똑같은 권리(생명권)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을 거듭하는 궤변에 불과하다. 태아는 모체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잠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수정된 순간부터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얘기는 터무니없다.

태아가 인간이 되는 과정이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순탄한 것도 아니다. 그 많은 유산 중에 ‘자연스러운’ 것과 자연스럽지 않은 즉, 외부의 영향으로 인한 경우를 확실하게 구별할 방법도 없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연’ 유산을 경험한 여성 중 일부가 생명 보호 의무에 소홀한 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비약도 가능하다.

출산과 낙태 모두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여성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오롯이 여성에게 선택권이 부여돼야 한다.

따라서 낙태 반대 진영이 현행 제도 아래서 불법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생명 경시” 운운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1년에 안전하지 않은 낙태가 2200만 건이 일어나고 매년 4만 7000명이 사망한다. 또한 낙태죄가 있어도 한국에서 연간 17만 건의 낙태가 일어난다. 이런 현실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를 위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짓밟는 것은 “생명 존중”이 아니라 제도적 폭력이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이 보잘것없는 상황에서 낙태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노동계급 여성을 더욱 옥죄는 것이다. 그래서 낙태는 계급적 쟁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지만 생색내기식 조처 이상은 내놓지 않았다. 한부모나 미혼모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호소하지만, 정작 한부모가족 지원금은 아주 찔끔 인상했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미혼모의 고통과 아픔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사회”라며 낙태죄 폐지를 촉구했다.

낙태 불법화로 노동계급 여성은 비싼 비용과 안전하지 않은 의료 시술도 감내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는 낙태 시술 후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일터에 나가야 한다. 반면 돈 많은 부자 여성들은 불법 낙태로 큰 고통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특권과 재력으로 안전한 시술을 받고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출산과 양육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양육 부담을 노동계급 가족과 여성에게 떠넘겨 왔다. 공공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책으로 낙태를 억압해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일랜드 낙태권 운동처럼 기층에서 대중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출처 Paula Geraghty

낙태권이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 국민 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모호한 답변과 낙태죄 폐지 유엔권고안 거부 입장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는 낙태죄 폐지에 열의가 없다. 여성가족부가 헌재에 낙태죄 반대 의견을 냈다지만, 더 힘있는 법무부는 낙태죄 유지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낙태죄 폐지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헌재 심판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낙태죄 조항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일부 헌재 재판관들이 사유와 기간 제한을 전제로 낙태 규제 완화 조처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돼야” 한다는 모호한 입장이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수층의 압력이 커지면 여기서 더 후퇴할 수 있다.

현재로선 헌재가 낙태죄를 폐지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헌재는 체제를 수호하는 매우 보수적인 국가기관이다. 박근혜 파면 등의 판결은 그렇게 하는 것이 체제 수호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에 여성의 승낙을 받아 낙태를 도운 의료인을 처벌하는 형법 270조 1항 위헌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전력이 있다.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없다면 지배자들은 순순히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이윤 체제를 위해 노동력 재생산을 통제하는 것은 자본가 계급에게 매우 중요하다. 여성의 몸과 삶은 체제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차별과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헌재나 문재인 정부에 기대지 말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대중적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낙태죄 폐지와 온전한 낙태권 보장은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지지는 대중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낙태권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은 매우 약하다. 진보진영 내에도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면서 낙태권을 얘기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일각에서 예방이 중요하다며 개인들의 피임 문제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진보진영에서는 태아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립하지 않는다며 둘의 조화를 주장하는 의견도 많다. 심지어 일부 좌파도 이런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논리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위험하다. 이런 절충적 입장은 ‘좋은 낙태’와 ‘나쁜 낙태’가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며 낙태 반대론자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 준다.

물론 진보단체들은 대체로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지만, 이런 절충주의 탓에 초기 낙태 허용이나 사회·경제적 사유 낙태 허용 등 제한적 낙태 규제 완화 방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안은 지금보다는 진보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유나 기간 제한을 두는 부분적 허용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방안은 낙태 처벌 여지를 열어 두고 여성의 낙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도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려면 낙태 반대 진영의 “태아 생명권”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확실하게 방어해야 한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임신 후기의 태아 사진과 동영상을 들이대며 낙태에 대한 죄의식을 부추기기도 한다. 낙태가 합법화된 미국·영국의 통계를 보면, 후기 낙태는 전체 낙태의 1~2퍼센트 수준으로 매우 적다. 대개 낙태는 임신 12주 내에 이뤄진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사람들이 후기 낙태에 대해 혼란스런 감정을 지닌 것을 이용해 낙태 전반을 공격하려 한다.

여성이 건강의 위험을 감수하고 후기 낙태를 결정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조건과 미래를 고려해 출산과 낙태를 결정한다. 낙태 불법화야말로 그런 상황에 있는 여성들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래와 더욱 위험한 상황이라는 강요된 선택으로 내몰 뿐이다.

따라서 여성이 원하면 사유와 기간에 상관 없이 모든 낙태가 보장돼야 한다. 낙태권이 실제로 보장되고 안전한 낙태가 가능하도록 낙태약과 낙태 수술은 병원에서 무료로 제공돼야 한다. 낙태 뒤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유급휴가도 보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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