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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노동조건 반대, 8일째 파업중인 한국오라클 IT 노동자들

오늘(5월 23일)로 8일차에 접어든 한국오라클 파업이 IT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세상에 알리며 이목을 끌고 있다. 노동자들은 애초 사흘로 예정했던 파업을 무기한으로 변경하며 투지를 드러내고 있다.

오늘 열린 집중 집회에서는 노조가 준비한 조끼 400벌이 모두 소진됐다. 긴 휴일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노동자들의 표정이 밝았다.

파업은 노동자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파업으로 자신들의 힘을 느끼면서 서로간의 연대 의식도 높아졌다. 5월 23일 한국오라클 앞 집회 ⓒ안형우

오라클은 대표적 글로벌 IT 기업으로, 〈포브스〉가 뽑은 소프트웨어 분야 세계 2위 기업이다. 매출은 40조 원에 달하고, 한국오라클의 매출도 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는 10년간 동결된 임금 인상, 장시간·무급 노동 해결,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성과급 체계 변경, 고용 불안 해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10년째 제자리인 임금

“오라클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의 설렘과 떨림을 잊지 못한다”는 한 노동자의 말처럼 오라클은 IT 노동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조건은 기대와 사뭇 달랐다. 10년간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최근 사측은 고객사가 크게 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이상으로 영업직 노동자들을 늘렸다. 그러면서 개별 노동자들의 영업 목표치는 높게 유지시켰다. 많은 노동자들이 성과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실상 임금을 삭감당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성과급을 단 1퍼센트밖에 받지 못한 노동자도 있었다. 성과급 비중이 50퍼센트기 때문에 사실상 임금이 반토막난 것이다.

무급 초장시간 노동에 대한 고발은 충격적이다. 한 기술직 노동자(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젝트에 할당돼서 파견을 가면 95시간에서 110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사측은 모자란 인력을 제때 채워 주지 않았다. “엔지니어가 한 명 퇴사하면 다음 엔지니어가 입사할 때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9개월씩 걸린다.”

‘고급 고객 서비스’ 부서 엔지니어가 하루를 일하면 사측은 고객사로부터 100만 원 이상 받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더라도 수당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엔지니어들은 정해진 시간 이상 초과 수당을 신청할 수 없다. 심지어 영업직이나 영업팀 소속 엔지니어들은 야근수당을 신청하지 못한다.

높아지는 결속력

파업은 노동자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칸막이 돼 일하며 서로 쪼개져 지내던 노동자들은 단결해 싸우면서 서로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한 영업직 노동자는 “사실 현장 엔지니어 근무조건이 저 정도로 열악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한 기술직 노동자는 영업직이 사측의 일방적 성과 목표 조정 제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털어 놨다.

다른 노동자의 이야기는 시사적이다.

[동료들과 함께 투쟁하며]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좁은 시선으로 살았는지 알게 됐다. 외국계 기업이니 개인주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 파업으로 여러 부서들과 함께 섞여 서로의 애환을 나누다 보니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자세히 알게 됐다. [그동안의 모습은] 개인주의[였다기] 보다는 살기 위해 발버둥친 것이었다.”

애초 사흘로 예정한 파업이 무기한으로 변경되면서 노동자들의 결의도 높아지고 있다.

파업 참가율은 여전히 높다. 무급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엔지니어들은 90퍼센트 이상 파업에 참가해 “똘똘 뭉쳐 있다”고 한다.

“3일 동안 집회 참석했는데 내가 아는 팀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신입이지만 우리 팀 전체가 파업해서 같이 나왔다”, “출장을 취소하고 파업에 참가중이다”, “모든 팀원들이 계약을 멈추고 안 하고 있다” 하는 얘기들이 많았다.

노조 가입도 늘고 있다. 공중파 등 여러 언론에는 꿈의 직장인 줄 알았던 외국계 IT 기업의 노동 조건이 “악몽”이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투쟁에 나선 결과다.

파업 효과와 IT 노동자들의 힘

한 노동자는 “파업이 길어지면 승리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오라클은 삼성 같은 대기업이나 농협 같은 금융권, 공공기관 등에 전산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부문 점유율이 60퍼센트에 이른다.

이런 곳의 상주 엔지니어들이 철수한 상태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사회 인프라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그러면 오라클 자신은 물론 다른 기업들의 수익 창출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설치 엔지니어들이 작업을 멈추면서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파업을 지속한다면 사측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고, 노동자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노동자들이 똘똘 뭉쳐 파업을 지속한다면 사측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안형우

노동자들은 파업에 열의가 높은 만큼, 파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훌륭한 의견들도 내놓고 있다.

“매일 파업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회사 앞에서 집회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면 사측을 더욱 압박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강화할수 있고 사측의 분열 시도에도 대응하기 좋을 것이다.

다른 IT 노동자들에게 주는 영감

어떤 노동자는 “구로디지털단지 같은 곳에 가서 파업을 알리자”고 했다. 이는 다른 IT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도 좋은 효과를 낼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결성된 한국마이크로소프트노동조합의 곽창용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라클 파업 전까지만 해도 파업이라는 건 굉장히 멀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사람들이 ‘우리도 파업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말한다.”

한국오라클 노동자들은 다른 IT 노동자들에게 갈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파업이 승리한다면 다른 IT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나설 수 있다. 최근 16일간의 단호한 투쟁으로 승리를 거둔 탠디 노동자들이 다른 수제화 제조 노동자들을 고무하고 있듯이 말이다.

“나는 힘이 없지만 우리는 이제 힘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처음 투쟁에 나선 한국오라클 IT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승리하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