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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현정희 본부장 인터뷰:
“제주도민들에게 필요한 건 영리병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공병원입니다”

‘제주 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2월 21일 3차 제주 원정투쟁을 벌였다. 이날 100여 명의 조합원과 함께 참가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현정희 본부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미진

의료연대본부 소속 노동자들은 오래전부터 영리병원 도입에 맞서 싸워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리병원 도입이 왜 문제인가요?

영리병원이 들어오면 의료비가 폭등할 뿐 아니라 결국 건강보험 제도에 영향을 끼칩니다. 시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죠.

물론 지금도 한국의 병원들은 문제가 많습니다. 비급여도 많고 경제적 부담이 큰 문제는 여전히 있죠. 그럼에도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는 통제가 가능하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보험 적용도 많이 늘릴 수 있습니다. 공공병원은 민간병원보다 병원비가 더 적게 듭니다. 보험 적용이 되는 항목들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검사나 치료는 가격 차이가 크게 나요. 예를 들어 보험 적용이 안 되던 시절에 심장초음파 검사비는 4~5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어요.

한국에는 영리병원이 없기 때문에 만약 이번에 실제 문을 연다면 초유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정확히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죠. 다만 미국처럼 외국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의료체계는 안 그래도 상업화와 돈벌이에 내몰리고 있는데 주식회사 병원이 만들어지면 그 정도는 훨씬 심해지겠죠.

또 병원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애쓸 것이고 비정규직이 늘어날 겁니다. 혹은 인건비가 덜 드는 새로운 직종을 개발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이는 결국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 임금 감소로 이어질 겁니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성공적으로 문을 열면 앞으로 더 확산될 겁니다. 당장 지금 전국에 경제자유구역이 8개나 있는데요. 여긴 곧바로 영리병원이 생길 수 있어요. 이 경제자유구역에는 인구밀도가 높은 광역시도도 있어서 그 효과는 훨씬 크겠죠. 의료법 등이 있다지만 한국 법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걸 다 알잖아요. 최순실 게이트도 그렇고 사법농단도 그렇고요. 법원이 민중을 위한 판결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죠.

제주도 현지 분위기는 좀 어떤가요?

지난해 공론화 과정에서 제주도 측이 개발 논리와 이른바 ‘선택권’ 논리를 내세워 일부 도민들이 흔들린 적은 있어요. 제가 공론화 토론회에도 참가했었는데요. 실제로 어떤 분은 우리도 뇌졸중 같은 거 수술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며 녹지국제병원 찬성 입장을 밝히는 걸 봤어요. 그분은 이 병원이 어떤 병원인지 전혀 모르고 계셨던 거죠.

사실 제주도의 의료 현실은 열악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예요. 응급 상황이 생기면 최소한 30분 안에는 병원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그게 안 되는 곳이 많아요. 녹지국제병원이 제주대병원과 서귀포의료원에 응급 환자를 보낼 수 있도록 협약을 맺었다지만 누구나 알아요.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병원이 몇 개 안 되고 그조차 너무 열악해서 중환자 수술과 관리를 할 수 없어요. 오죽하면 제주도에서는 옛날부터 특진비, 선택진료비가 없었어요. 선택할 게 없었거든요. 또 한라병원은 민간병원인데도 정부에서 의사를 파견할 정도였어요.

이런 상황이라 제주도민들은 정말 제대로 된 병원을 원해왔어요. 제주도에서는 중병에 걸리면 그냥 죽어야 한다는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돌기도 했을 정도예요. 그런데 제주도가 새 병원을 짓는다면서 이게 영리병원이라는 사실은 숨긴 거예요. 심지어 공론조사 토론회 장소 안내지에도 영리병원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요. 그러니 찬성 의견이 그만큼이라도 나온 겁니다.

그런데 공론조사 과정에서 이 병원이 어떤 병원인지 알고, 또 도지사가 공론조사 결과를 맘대로 뒤집어 버렸으니 도민들이 어떻겠어요. 불만이 엄청 큰 거죠. 지금 제주도에 정말로 필요한 건 중증 환자를 위한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에요.

의료연대본부가 이번 녹지국제병원과 관련해서만 제주도에 네 차례 원정 투쟁을 왔는데요. 올 때마다 택시 기사님한테 물어봐요. 그러면 영리병원은 절대 안 된다는 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영리병원뿐만 아니라 강정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도 10년이 넘었고요. 제2공항 건설 반대 운동도 벌어지고 있어요.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을 투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원희룡에 대한 반감이 엄청 큽니다.

개원 전망이 불투명해 보입니다. 내국인 진료 문제가 쟁점인 듯한데요. 소송도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망이 어떤가요?

저는 왜 이 시점에 녹지국제병원 허가를 내줬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봐요. 법적 논란을 포함해 여러 가지 문제가 벌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죠. 심지어 녹지병원 측은 허가가 나기 전에 제주도 측에 병원 안 하겠다는 의사도 밝혔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측에도 병원을 인수하라고 하기도 했는데요. 사실 국토부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죠.

그런데도 원희룡 도지사는 허가를 내줬어요. 저는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한국의 보건의료산업 자본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봅니다. 2008년 이후 어느 정도는 버텨왔는데요. 이제 경제 성장이 크게 둔화되니까 병원자본이나 제약자본, 의료기기 자본 등의 이익을 위해 영리병원을 도입하는 겁니다.

영리병원 도입은 규제 샌드박스 같은 규제 완화 정책과 한 세트인데요. 사실 영리병원이 있을 때 원격 의료나 제약, 의료기기 규제 완화가 효과적이거든요. 문재인 정부가 연관돼 있다는 거죠.

문재인 정부는 이런 것도 다 일자리 정책이라고 하지만 영리병원은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이고요. 규제 완화로 늘어나는 일자리가 얼만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일자리가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이 뿌리는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요. 경제자유구역 도입한 게 김대중 정부고, 영리병원 허용한 게 노무현 정부거든요. 저는 문재인 정부가 이 뿌리를 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는 한 이대로 계속 갈 거라고 봅니다. 또 이런 사실을 자본이 잘 알고 활용하고 있다고 봐요.

앞으로 어떤 투쟁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일단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의도를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봐요. 영리병원을 원하는 세력이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을 들춰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우리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나서야 하겠지만 더 폭넓은 민중 연대가 필요해요. 촛불 같은 거대한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사실 이명박 때는 광우병 문제와 결합돼서, 박근혜 때는 촛불 투쟁과 결합돼서 영리병원을 막을 수 있었어요. 자본을 상대하려면 이번에도 우리 대오를 늘려가야 하죠. 촘촘하게 연대를 확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