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 합의 그 뒤:
“사회적 대화”로는 택시 노동자 조건을 개선할 수 없음이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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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한 개인택시 기사가 ‘타다’(차량 공유 서비스의 하나)에 반대해 분신했다.(그전에도 택시 기사 3명이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반대해 분신했다.)
비극적 죽음 앞에서 ‘타다’ 대표 이재웅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다. “택시 기사들이 죽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죽음을 정치화하고, 죽음을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재웅은 전에도 택시업계의 카카오 카풀 도입 반대를 두고 역사적으로 ‘러다이트’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이죽거렸다.(‘러다이트’ 운동이 19세기 초반 영국 노동자 운동의 급진화에 공헌한 바를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그러자 금융위원장 최종구가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택시업계를 편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공유 경제를 ‘혁신 경제’의 중요한 동력으로 여긴다. 최종구는 이재웅의 몰인정한 반응이 택시업계를 자극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 안타까운 분신은 3월 7일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사회적 타협 기구’)의 합의가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당시 정부·여당은 이 합의안을 한껏 추어올렸다. “이 타협으로 첨예한 갈등도 대화와 양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선례를 남겼다.”(국무총리 이낙연)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당시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
그러나 그 뒤 합의안은 이행되지 않았다. 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회는 택시 월급제 시행 등 관련 법안을 3월 내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합의안의 구체적 내용을 채울 ‘카풀 합의 이행 실무기구’는 구성 방식과 권한조차 정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타협 기구’ 구성을 주도한 민주당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는 합의안 발표 후 해산했다. 국회로 공이 넘어갔기 때문에 자신들은 할 일을 다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12월에 쓴 기사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민주당을 믿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택시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고자 허겁지겁 중재안을 내놨다. ‘완전월급제를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 ‘월 250만 원 이상은 될 거다’ 하고 바람을 잡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지급할지 같은 구체적 방안은 없다. 법안은 또 어느 하세월에 통과시키려나.
“그래서 민주당 중재안은 노동자들의 들끓는 분노에 직면해 일단 시간 벌기를 하겠다는 심산 같다. 노동자들의 염원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질질 시간을 끌다 용두사미로 만드는 것이 민주당의 주특기다. 그 주특기가 이제 많은 노동자들의 불신과 증오를 사고 있지만 말이다.” (‘택시 vs 카카오 갈등에 부쳐 ― 진정한 대립은 택시·카카오 자본가 대(對) 노동자’ https://ws.or.kr/article/21385)
“사회적 대화”와 계급 대립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했다고 우쭐했지만, 서로 다른 계급들의 이해관계 충돌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3월 7일 합의안을 하나씩 뜯어 보자.
▲ 제한적 카풀 허용(오전 7시∼9시, 오후 6시∼8시): 카카오를 제외한 카풀 사업 모빌리티(이동 수단) 자본가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카풀 시간을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택시 콜(스마트폰으로 택시 기사와 승객을 연결해 주는 ‘앱 택시’ 서비스)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빌리티 업체들이 영업 손실을 보게 생겼기 때문이다.
카풀은 모빌리티 자본가들이 포기하기 어려운 돈벌이 수단이다. 특히, 서울·경기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2000만 대가 넘는 한국의 자동차 중 40퍼센트가 서울·경기에 집중돼 있다. 게다가 2300만 명이 몰려 산다. 그래서 “서울·경기권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시장일 것이다.”(대형 증권사 간부의 말)
▲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 상반기 출시: 카카오모빌리티와 일부 택시업계가 손잡고 ‘웨이고 블루’를 출시했다. ‘웨이고 블루’는 기사들에게 월급제를 적용하는 조건으로 승차 거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택시다. 그러나 월급제 시행을 원치 않는 택시 자본가들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배차가 원활치 않다. 애초 연내 4000대 규모로 운영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재 운행 대수는 230여 대에 지나지 않는다.
▲ 초고령 운전자의 개인택시 감차: 과잉 공급된 택시 수를 줄여 영업 경쟁을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개인택시 기사들(자영업자)은 면허 가격 폭락에 대한 대책이 합의안에서 빠진 것에 불만이 크다. 면허 가격은 개인택시 기사들의 ‘퇴직금’ 같은 것이다. 서울시의 택시면허 가격이 2017년 9월 9100만 원에서 2019년 5월 28일 기준 6700만 원으로 폭락했다. 그래서 개인택시 기사들은 합의안에서 얻은 게 없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낸다.
▲ 법인택시 기사 월급제 시행: 택시 노동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반면, 택시 사용자들은 완강하게 반대한다. 그래서 합의안에도 ‘근로시간에 부합하는 월급제’라는 단서가 붙었다. 게다가 “적극적 협조”라고만 돼 있어 구속력이 없다. 그나마도 아직까지 구체적 내용은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다. 합의안이 나온 뒤 딱 한 번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위는 월급제 도입을 놓고 의견이 충돌하다 흐지부지된 상태다.
양대 노총 소속 택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택시 자본가들과 함께 카카오 카풀 도입 반대 집회를 열었다. 그 뒤 ‘사회적 타협 기구’에 참여해 월급제 시행 등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택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철저했다. 그들은 대자본인 카카오와 대립할 때도 택시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했다. ‘사회적 타협 기구’에서도 택시 자본가들의 주된 관심사는 월급제 시행을 막는 것이었다.
따라서 택시 노동조합(특히 민주노총 소속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지도부는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카카오와 택시 사측 모두에 맞서는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투쟁에서 택시 노동자들은 카카오 운전자들, 카카오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대리운전 노동자들, ‘타다’ 운전자들과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