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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레닌주의⑤: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오늘날 의의

노동자연대는 5월 16일부터 6월 13일까지 ‘21세기 레닌주의’ 연속 공개 토론회를 진행했다(자세히 보기). 레닌주의에 대한 오해가 세간에 상식처럼 퍼져 있는 가운데, ‘21세기 레닌주의’에서는 레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지를 토론한다.

이 글은 그 다섯 번째 주제인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오늘날 의의’에서 발제자 이수현 씨의 발제문이다. 이수현은 《레닌 평전 2~4》(토니 클리프, 책갈피)의 역자이다.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갈등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출처 미 해군

레닌의 제국주의 분석은 주로 1916년 봄에 쓴 유명한 소책자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 요약돼 있다.

이 책의 첫째 목적은 제1차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전쟁, 즉 “영토 합병과 약탈과 노략질을 위한 전쟁”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둘째 목적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국주의’라고 부른 현 단계의 세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가 “쇠퇴하고” 있고 “기생적”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직전의 “최고” 또는 “최후” 발전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 했다.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은 두 가지 특징이 더 있었지만, “차르 정권의 검열” 때문에 그 소책자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그 특징은 첫째,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 개혁주의 진영과 혁명적 진영으로 분열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고 둘째,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반제국주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민족 해방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레닌의 이론

레닌은 제국주의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제국주의의 첫째 특징은 생산의 집중과 독점기업들의 발전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근본 법칙이라고 여긴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실현된 결과이다.

둘째 특징은 은행의 구실이 질적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은행은 “소극적 중개자에서 강력한 독점기업으로 성장”해 “거의 모든 화폐자본과 대부분의 생산수단과 원료 자원을 지배”하게 됐다. 은행의 규모와 힘이 이렇게 커지면서 “은행이 통제하고 산업자본가들이 이용하는 자본”, 즉 ‘금융자본’도 성장했다.

셋째 특징은 자본수출의 증대다. “자유경쟁이 지배적이던 낡은 자본주의의 전형적 특징은 상품수출이었다. 독점기업들이 지배하는 최근 단계 자본주의의 전형적 특징은 자본수출이다.” “자본수출의 필요성은 몇몇 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성숙했고’ 자본이 ‘수익성 있는 투자’ 분야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넷째 특징은 “독점자본가의 연합체들[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 등]” 사이에 세계 시장을 분할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다섯째 특징은 자본수출의 성장과 자본가 연합체들 간의 세계 시장 분할이 열강 간의 세계 영토 분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1914년까지 ‘거대’ 제국주의 열강 6개국(영국·러시아·프랑스·독일·미국·일본)이 사실상 세계 전체를 분할했다.

더욱이, 이런 분할은 “힘에 비례해서” 이뤄졌으므로 매우 불균등했고, 경제 발전에 기계적으로 비례하지 않았다. 그래서 1914년에 영국과 프랑스 같은 옛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최대의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었지만, 신흥 강대국 독일은 생산력 발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았는데도 식민지는 거의 없었다.

바로 이런 불균등 발전이 제1차세계대전의 배경이 됐다. 전 세계가 이미 분할됐으므로 거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를 확대하는 방법은 다른 경쟁자들을 희생시키는 것밖에는 없었고, 이것은 전쟁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제1차세계대전은 우연한 사건도 아니었고 시대착오적 귀족들의 “어리석은” 실수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단계에 이른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였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그 뒤의 평화는 잠시 숨 돌릴 틈에 불과할 것이고 그 휴식 시간이 끝날 때쯤 경제력과 군사력의 새로운 분포를 바탕으로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레닌은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서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였던 카우츠키의 제국주의 개념을 비판했다. 카우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단계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도 아니며 (일부)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일 뿐이다. 둘째,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장 강력한 카르텔과 국가들이 전쟁과 군비경쟁을 포기하는 국제협정을 체결해서 “초제국주의”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늘날 통찰력 있는 자본가들은 모두 자기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할 것이다. 만국의 자본가여, 단결하라!”

레닌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자본주의에서 세력권과 식민지 등을 분할하는 근거는 오직 그 분할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경제력·군사력뿐이다. … 이 나라들의 힘은 균등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 10~20년이 지난 뒤에도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상대적 힘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 카우츠키의 공상 속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라는 현실에서는 ‘제국주의 간’ 동맹이나 ‘초제국주의’ 동맹은 그 형태가 어떻든 … 전쟁과 전쟁 사이의 일시적 ‘휴전’에 불과하다.”(제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옳았음을 야만적으로 입증했다.)

레닌의 이론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기회주의‘(개혁주의)가 득세한 것과 제국주의 사이에는 물질적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레닌은 19세기 중후반 영국이 산업과 식민지를 독점한 것과 영국 노동운동에서 개혁주의가 득세한 것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봤다. “독점은 초과이윤을 발생시킨다. 즉, 전 세계에서 자본가들이 얻는 ‘정상적’ 이윤보다 높은 잉여 이윤을 발생시킨다. 자본가들은 이런 초과이윤의 일부를 사용해서 자국 노동자들을 매수할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에는 영국에만 적용되던 것이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러나 노동계급 전체가 아니라 상층부의 소수에게만 적용된다. 이런 식으로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와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객관적으로 부르주아지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자들로 묘사했다(이른바 노동‘귀족’론).

레닌 이론의 또 다른 핵심 특징은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므로 그런 투쟁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때까지 제2인터내셔널이나 사회주의 운동 전체의 견해와 크게 다른 점이었다. 그 전에는 사회주의 운동이 식민지의 민족 해방 운동을 중요한 전략적 의의가 있는 운동으로 여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레닌과 함께, 특히 코민테른 창립과 함께 바뀌었다.

그래서 코민테른 2차 세계 대회에서는 ‘민족·식민지 문제’가 핵심 주제가 됐다.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선진 자본주의 나라와 러시아의 노동계급,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피억압 민중 사이의 혁명적 동맹을 제안했다.

1920년 9월 코민테른이 바쿠에서 개최한 제1차 동방민족대회의 구호는 “만국의 노동자와 피억압 민족이여 단결하라!”였다.(물론 레닌은 “후진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해방 운동을 공산주의로 색칠하려는 시도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100년간의 변화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이 오늘날에도 타당하고 적절한지를 평가할 때 부딪히는 문제 하나는, 레닌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나 ‘최종’ 단계이며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곧 전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닌의 분석이 어리석었다거나 논박당했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제국주의 전쟁은 ‘내전’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1916년 아일랜드에서 그랬고 나중에는 러시아와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그랬다. 또, 전쟁은 실제로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혁명적 물결을 불러일으켰고, 이 혁명들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국제 혁명이 패배했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는 레닌의 이론적 분석이 오늘날에도 적절한지를 평가할 때는 지난 100년 동안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 사후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 사건들(대략)

  • 소련의 출현과 성장
  • 1929년의 경제 붕괴와 1930년대 대불황
  • 파시즘과 나치즘의 발흥
  • 제2차세계대전
  • 전후 미국이 세계경제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국가로 등장한 것
  • 양극적 냉전 체제
  •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 호황인 전후 장기 호황
  • 중국·베트남·쿠바 등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 열강이 식민지 직접 지배를 포기하고 철수한 것
  • 석유가 제국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상품이 된 것
  • 1970년대 초에 전후 장기 호황이 끝나고 다시 나타난 경제 위기
  • 신자유주의의 득세
  • ‘세계화’의 확산 또는 심화
  •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
  • 신흥공업국들, 특히 중국의 성장
  •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들
  • 2007~2008년의 금융시장 폭락과 대불황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는 이런 사건 목록을 볼 때, 레닌의 분석만으로도 오늘날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은 분명히 어리석을 것이다. 여기서 지난 100여 년간의 변화를 광범하게 분석한 뛰어난 저작 둘을 추천하고 싶다.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책갈피, 2009)과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책갈피, 2011).

아무튼 세계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감안하면, 오히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레닌의 분석 중에서 매우 많은 부분이 지금도 분명히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생산의 집중과 거대 독점기업들의 성장은 계속됐고, 이 거대 기업들이 계속해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둘째, 2008년 금융시장 폭락에서 드러났듯이 금융자본과 은행들이 계속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고, 자본수출의 중요성도 여전하다. 또, 오늘날의 세계는 여전히 한 줌의 주요 제국주의 열강과 다수의 가난한 피억압 약소국들로 나뉘어 있다. 요컨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은 분명히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레닌의 이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절한지와 상당히 관련 있는, 마르크스주의 안팎에서 벌어진 네 가지 논쟁을 살펴보겠다. 첫째는 레닌의 개혁주의 이론이고, 둘째는 종속이론 문제이며, 셋째는 세계화 개념이고, 넷째는 단극적 제국주의 질서 개념이다. 물론 각각이 방대한 주제들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

개혁주의 문제

레닌의 개혁주의·기회주의 이론은 여러모로 그의 이론 전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제국주의 국가의 부르주아지가 ‘초과이윤’으로 노동계급의 한 계층, 즉 노동계급 운동의 다양한 대표자 등을 ‘매수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개혁주의의 경제적·사회적 기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심각한 결함이 있다. 첫째, 그것은 결코 역사적으로 확증되지 않았다. 개혁주의는 스웨덴이나 그리스처럼 주요 제국주의 열강이 아닌 나라들을 포함해 20세기 내내 이런저런 형태로 유럽 노동운동 전체에서 지배적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배적이다.

또, 개혁주의는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많은 나라의 노동계급 운동에서도, 특히 노동조합운동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했다. 그런 사례는 칠레와 브라질부터 남아공과 인도, 한국까지 다양하다. 분명히 개혁주의는 단지 노동계급의 소수 상층을 매수하는 것보다 더 깊은 뿌리가 있다.

둘째, ‘매수’라는 개념은 아무리 은유적으로 이해하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사용자들과 부르주아 국가는 승진 기회 등을 제공해서 개별 노동자나 노조 지도자 등을 매수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만, 그것은 노동계급 전체, 심지어 노동계급의 어느 한 집단 전체를 ‘매수’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사실 노동자들이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노동조합과 정치투쟁을 통해서였다. 물론 경제가 호황이거나 사업이 번창할 때 자본가들은 개인적으로든 계급으로서든 기꺼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뇌물 수수’라 할 수 없다.

셋째, 러시아 혁명 자체와 1919~1920년에 유럽을 휩쓴 혁명적 물결과 그 밖의 많은 경우에서 경제투쟁뿐 아니라 정치의식의 측면에서도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투쟁적이었던 노동자들은 바로 금속 노동자들처럼 임금 수준이 비교적 높은 숙련 노동자들이었다.

레닌의 개혁주의 이론을 처음으로 이렇게 비판한 것은 토니 클리프가 1957년에 쓴 “개혁주의의 경제적 뿌리”라는 글에서였다(《마르크스21》 15호, 책갈피, 2016). 이 글에서 클리프는 제국주의와 개혁주의의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제국주의 덕분에 누리게 된) 자본주의의 번영이 어떻게 영국과 유럽 각국 노동계급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동계급의 소수 상층이 아니라 계급 전체의 생활수준이 상승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클리프의 분석은 개혁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발전이었다. 특히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분명히 드러난 노동조합 관료 집단의 구실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개혁주의의 득세를 자본주의의 번영기와 관련시키는 것에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왜냐하면 1930년대 같은 불황기에도 개혁주의가 약해진다는 분명한 증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오히려 노동계급의 개혁주의 의식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레닌의 개혁주의 이론의 또 다른 측면은 시간의 검증을 통과했다. 그것은 레닌이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일컬어 노동계급 운동 안에 있는 “부르주아지의 대리인들”이라고 했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부르주아적 노동자 정당”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이 말이 옳다는 것은 여러 수준에서 거듭거듭 입증됐다.

첫째,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노동계급 안에서 항상 ‘국익’이나 ‘이윤의 필요성’ 따위를 주장하면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둘째, 그들은 기꺼이 자본주의를 관리하려 하고, 자본주의의 논리가 요구할 때는 거의 언제나 임금이나 복지 삭감 등을 노동계급에게 강요하는 동시에 사회적·경제적으로 부르주아지 편에 가담한다.

셋째, 제1차세계대전 때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모든 주요국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거의 언제나 제국주의 전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제국주의 동맹을 확고하게 지지했다.

넷째, 자본주의의 운명이 위기에 처한 혁명적 격변의 순간에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흔히 노동계급이나 혁명가들에 대항해서 국가와 자본가들, 심지어 노골적인 반혁명 세력과도 협력했다.(독일 사민당 지도자들이 원조 파시스트인 자유군단과 협력해서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한 것은 고전적 사례지만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 레닌이 옳았음을 지적할 때 또한 강조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레닌이 개혁주의 지도자들이나 ‘부르주아적 노동자 정당’을 공공연한 자본의 대표자나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보수당이나 기독교민주당 따위)과 그냥 동일시하는 초좌파주의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개혁주의자들에게 환상을 품고 그들을 따르는 노동자들을 설득하려면 우파에 대항해서 개혁주의자들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레닌은 항상 강조했다.

종속 논쟁

레닌은 자본수출 때문에 식민지 나라들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수출은 자본을 수입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 속도를 크게 높인다. 그러므로 자본수출은 자본을 수출하는 나라의 발전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더욱 확대하고 심화한다.”

그러나 크리스 하먼이 말했듯이 “민족 해방 운동의 많은 투사들이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식민지에서] 자본주의가 이렇다 할 산업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27~1928년에 코민테른은 스탈린의 영향을 받아서 레닌의 견해를 버리고,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산업화를 체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후진국의 이른바 ‘진보적 민족 부르주아지’와 동맹 맺기를, 심지어 그들에게 종속되는 것조차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이런 코민테른의 견해와 다양한 급진적 민족주의 경제 이론들이 수렴된 결과로 이른바 ‘종속이론’이 생겨났다. 종속이론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 대다수 국제 좌파의 경제적 합의 비슷한 것이 됐고,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 대다수 좌파들의 이론적 공통분모 같은 것이었다.

종속이론의 핵심 주장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즉 ‘중심부’가 ‘주변부’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방해하면서 빈곤하게 만들고 있으므로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국제 자본주의 체제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언뜻 혁명적 주장처럼 들렸다.

그러나 종속이론은 역사적으로 틀렸음이 입증됐다. 한편으로,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를 변형해서 국제 자본주의와 단절한 채 국가 계획으로 독립적 발전을 추구한 나라들(쿠바·북한·베트남 등)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홍콩·싱가포르·남한·대만(‘아시아의 호랑이들’) 같은 나라들은 실제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또, 어떤 나라들은 확실히 만만찮은 경제 성장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브라질·멕시코·인도·터키, 특히 중국).

더욱이, 그런 나라들은 세계시장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에 스스로 침투해서 발전을 달성했다. 이런 사실들은 종속이론이 정립되고 있던 1950~1970년대에 종속이론을 결정적으로 논박했다.

세계화 논쟁

그런데 이런 말을 할 때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우파들도 똑같은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화 덕분에 세계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고 이제는 기아와 빈곤이 없는 더 평등한 세계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런 주장도 진실이 아니다.

첫째, 경제 발전은 사실 매우 불균등했고 비교적 소수의 나라들에 집중됐으며 전 세계의 많은 지역, 특히 아프리카는 이 과정에서 뒤처지고 사실상 배제됐다.

둘째, 발전은 신흥공업국들 안에서든 세계 규모에서든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수반했다. 그래서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하위 인구 50퍼센트의 재산과 맞먹는 부를 소유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셋째, 경제 발전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서 국제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증대했다.

마지막으로, 레닌은 일본의 사례를 보고 식민지에서 자본주의가 성장하면 신흥 자본주의 열강이 등장할 수 있고 따라서 새로운 제국주의 간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제국주의에 관한 최근의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진다.

초제국주의인가 제국주의 간 경쟁인가?

냉전 기간에 대다수 좌파들은 소련이 사회주의나 모종의 노동자 국가이므로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제국주의를 단극적인 것으로 봤다. 하먼이 지적했듯이 “대다수 좌파들은 제국주의 개념을 조용히 바꿔서, 서방의 자본가 계급들이 제3세계를 착취하는 것만으로 이해하고, 레닌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했던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전쟁 경향을 무시하고 사실상 체제 전체를 카우츠키가 예측한 초제국주의의 변형쯤으로 이해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자, 좌파들 사이에서 이런 이데올로기적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초제국주의에 관한 오래된 논쟁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2000년에 하트와 네그리는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국제적 통합이 고도로 발전해서, 국민국가의 구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더라도 극도로 축소됐다고 《제국》에서 주장했다. 즉, 국민국가는 이제 “다국적기업들이 움직이는 상품·화폐·주민의 이동을 기록하는 단순한 도구”쯤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대다수 다국적기업들은 세계를 무대로 영업하면서도 특정 국가에 본사가 있다는 점에서 제국 이론은 실증적으로 틀렸다. 마이크로소프트·지엠(GM)은 미국에 본사가 있고, 비피(BP)·로열더치셸은 영국에 본사가 있으며, 토요타·소니는 일본에 본사가 있고, 폭스바겐·베엠베(BMW)는 독일에, 삼성·현대는 한국에 본사가 있다.

더 이론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하트와 네그리는 레닌이 강조한 추세, 즉 독점자본과 국가가 융합하는 국가자본주의화 경향을 무시하거나 묵살한다는 점에서 틀렸다.

둘째, 이런 잘못된 이론을 바탕으로 하트와 네그리는 국민국가의 구실, 따라서 전쟁의 구실을 축소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 간 충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정치적 예측을 발전시켰다. 그래서 네그리는 “문명국끼리 전쟁을 벌일 수 없게 된 것이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조셉 추나라가 지적했듯이 “《제국》이라는 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2001년 9·11사건이 터졌고 제국주의 전쟁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됐다.”

좌파들 사이에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 개념보다 널리 퍼져 있는 견해는 제국주의 권력이 실재하지만 거의 오로지 미국에만 집중돼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이 최고의 유일한 패권 국가이며 미국의 우산 아래 모든 잠재적 제국주의 경쟁자들(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은 보호받는 동시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 즉 미국의 군비 지출과 군사적 능력이 과거든 현재든 잠재적 경쟁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럴듯해 보인다.

또,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1970년대의 경제 위기를 사실상 해결해서 미국은 전례 없이 강해졌고 잠재적 경쟁자들의 행동을 구조적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제국주의 간 경쟁에 관한 고전적 제국주의 이론은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프랑스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것 같은 갈등과 전술적 이견은 있겠지만, “단일한 제국 국가”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캘리니코스는 1973년에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가 이윤율 저하 경향에 뿌리를 두고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미국의 지위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취약하고, 앞으로는 미국의 패권에 대한 경제적 도전이 늘어날 것이고, 그래서 결국 정치적·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고전적’ 제국주의 이론은 여전히 오늘날의 세계를 분석하는 데 적어도 유의미한 출발점 구실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역사가 이 문제에서 결정적 심판을 내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증거는 초제국주의론자들이 아니라 레닌주의자들에게 유리해 보인다.

첫째, 2007~2008년의 금융시장 폭락과 뒤이은 대불황, 그리고 극도로 느린 경기회복은 신자유주의가 국제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들이나 그 문제들의 핵심에 놓여 있는 이윤율 위기를 결코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줬다.

둘째, 미국이 장기적·상대적으로 쇠퇴하는 추세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경제력의 상대적 약세를 막강한 군사력으로 보완하려던 미국의 전략은 다양한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의 무기고가 다른 모든 국가들을 압도하지만 실제로 그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능력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한 지 각각 18년과 16년이 지났건만, 미국은 여전히 이 나라들에서 군사적 수렁에 빠져 있고 사실상 패배하고 있다. 미국이 부딪힌 문제의 뿌리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즉,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은 현지의 완강한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많은 미군의 희생을 무릅쓸 정치적 의지가 없는 문제[이른바 ‘베트남 증후군’]를 극복하지 못했다.

셋째, 미국이 중동과 그 밖의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약해진 결과 중 하나는 아류 제국주의 강국들이 등장해서 행동 반경을 상당히 넓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류 제국주의 강국이란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보다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으로 약하지만, 그래도 자본축적의 독자적 중심이 확립되고 지역에서 나름대로 패권을 휘두르고 싶어 하는 국가들이다.

중동에서는 터키·사우디아라비아·이란, 남아시아에서는 인도가 그런 국가들이다. 이 중에서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할 만한 국가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도 그저 자기 마음대로 그들을 굴복시킬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다양한 충돌 가능성, 사실은 지역적 전쟁 가능성이 있는 불안정한 상황이 조성된다.

넷째, 미국의 중요한 장기적 경쟁자인 러시아와 중국 문제가 있다. 만약 냉전을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충돌(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등)로 본다면, 그것은 재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근저의 진정한 이해관계 충돌을 가리는 망토 같은 것으로 본다면(18세기와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충돌이나 20세기 상반기 영국과 독일의 충돌이 물질적 이해관계의 충돌이었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의미에서) 시간이 흐른다면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도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실제로 소련이 붕괴한 뒤 미국은 나토를 이용해 자신의 패권을 동쪽으로 확대할 수 있었지만, 이윽고 푸틴은 조지아에서, 더 중요하게는 우크라이나에서 모두 미국에 반격을 가했다.

장기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중국의 부상이다. 현재의 경제 성장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은 20~30년 후 세계 최대의 경제인 미국과 대등해지거나 미국을 앞지를 것이고, 이것은 세계의 지정학적·군사적 세력 균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레닌이 제국주의의 필연적 특징이라고 강조한 세계 ‘재분할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시작됐다.

물론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 경제가 흔들리거나 심지어 붕괴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세계의 불안정성은 더 심해지기만 할 것이다. 특히 중국 경제가 붕괴한다면, 그 원인이자 결과인 또 다른 세계적 경기후퇴와 동시에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지금 미국과 중국 경제가 상호 의존하는 공생 관계에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 특히 그 이론에서 도출한 반제국주의 정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절하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오늘날의 반反제국주의

오늘날 혁명가와 사회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하는 태도가 절대로 필요하다. 이 점을 잘 보여 주는 것은 전에 좌파나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이슬람 원리주의와 테러리즘의 위협을 핑계로 반제국주의 정치를 포기한 사람들의 유감스러운 궤적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거나 특히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포장된 제국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에 전반적으로 순응하는 쪽으로 선을 넘어가는 것이고, 그 선은 한 번 넘어가면 후퇴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오늘날 세계에는 ‘지역적’ 충돌도 매우 많다. 그런 곳에서는 세계 제국주의를 이해하고 레닌주의 정치를 적용하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태도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 문제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근본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좌파든 아니든 모두 이 문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다가 미국과 소련 제국주의의 점령지가 돼 분단을 강요당하고 냉전의 주역들이 벌인 열전의 현장이 돼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미·중·일·러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다.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는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과 반제국주의 정치가 현실 분석과 행동 지침의 출발점으로서 더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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