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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라두식 사퇴와 부패 논란:
삼성 예외주의 내세워 노동조합 민주주의 유린 정당화할 수 없다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라두식 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통합지회장의 부패 정황이 담긴 사측 문건과 진술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 측이 사주한 정보경찰과 라두식 전 지회장이 비공개 ‘핫라인’(비선)을 만들어 접촉을 해 왔고, 그 결과 사측이 원하는 협상안을 노조에 관철할 수 있었으며, 라두식 전 지회장이 정보경찰을 통해 수십만 원씩 수차례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는 7월 9일 관련 건에 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 3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통합운영위원회가 라두식 지회장과 간부 2명의 사퇴를 받아들이고, 금속노조에 진상조사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앞으로 진상조사위원회는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 전반, 즉 2013~2014년 블라인드 교섭 과정, 2015~2018년 직고용 발표까지 ‘핫라인’ 가동 과정, 노조 간부에게 제공된 금품과 향응접대 행위 등을 조사하게 된다.

논란이 불거지고 조합원들 사이에 불만이 제기되자, 라두식 전 지회장은 지난달 22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2015년부터 정보경찰과 접촉해 온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정보경찰을 만나 교섭 일정과 방식을 조율했을 뿐, 교섭 내용을 사전 조율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설사 협상안을 사전 조율하거나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물론 이에 대한 진위 여부가 철저히 밝혀져야 하고 합당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 정보경찰을 통해 사측과 비밀리에 만나 온 것은 결코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수년간 이어져 왔다니 더 그렇다.

사측이 정보경찰을 브로커로 내세워 노조 간부를 접촉한 것은 목적이 뻔하다. 그를 회유해서 사측의 입맛에 맞게 협상을 조율하고 투쟁을 자제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은 노조 간부가 사측과 개별 접촉하거나 비밀교섭 하는 것을 금기시해 왔다. 협상을 할 때도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나가고, 녹화·녹음 등을 포함해 기록으로 남기고, 조합원들에게 그 내용을 상세히 보고·공유하는 것이 기본이었다.(물론 이런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근래에는 종종 있었지만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삼성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 특별한 예외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라두식 전 지회장도 “집단교섭의 안착화(가 필요하고) 삼성이 직접교섭을 거부하는 상황”이었다며 불가피성을 말했다.

그러나 교섭이 꽉 막혀 있다거나 원청이 나서지 않는다는 등의 ‘사정’은 다른 사업장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일부 노조 간부들이 그릇된 예외주의를 내세워 사측과 개별·비밀 접촉을 한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것이 사측에 대한 경계와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동요와 후퇴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훼손은 현장 조합원들의 분열과 지도부 불신을 불러 투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조건준은 이 기회 틈탄 복권 시도 중단해야 한다

라두식 전 지회장은 사측-정보경찰-자신으로 연결되는 ‘핫라인’을 “지회의 요구를 삼성에 전달하는 교섭 전술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런 어쭙잖은 변명은 지난해 노조 와해 공작의 책임자인 삼성 고위 임원을 구원하는 탄원서를 써서 금속노조로부터 면직 징계를 받은 조건준을 두둔하던 사람들에게서도 나왔었다. 당시 금속노조 경기지부 간부들은 조건준의 탄원서가 삼성전자서비스 직고용 합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교섭 전술’이었다고 말했다. 조건준은 2014년에도 이런 이유를 대며 사측과 1대 1 블라인드(밀실) 교섭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현장 조합원들을 무시하는 태도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대는 구실과 달리, 협상의 성패는 협상장 밖의 세력관계, 즉 노동자 투쟁의 힘과 단결에 달려 있다. 개별·비밀 접촉은 금지돼야 하고 협상의 절차와 과정, 내용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노동자들이 민주적 토론을 통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단결을 강화하고 투쟁의 힘을 끌어올리는 데 매우 중요한 기초다.

한편, 조건준은 지난해 금속노조의 징계(노조 간부 면직)가 과도하다며 금속노조를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노조 탄압에 앞장선 삼성 전무를 살리자고 탄원서 써 주며 ‘무노조 경영’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배신해 놓고 뻔뻔하게 징계에 불복한 것이다. (비록 금속노조 징계 사유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삼성 측으로부터 대가성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다행히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조건준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정했다. 그런데 조건준은 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더욱이 그는 얼마 전까지 금속노조의 징계를 무시하고 금속노조 경기지부 사무실에 나가고 회의에 참석도 했다고 한다. 노동자들 스스로의 투쟁보다 협상장 안에서의 중재와 타협의 기술을 우선시하는 그의 노골적인 관료주의 때문인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듯하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집행 간부들은 조건준의 실체를 보아넘기지 말아야 하고, 노조의 규율을 콩가루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