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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상한제 시행 유예:
노동자·서민의 주거권보다 투기꾼들을 더 중시한 결정

지난 8월 국토교통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이하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약속했었다. 분양가 상한제는 2007년 도입됐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폐지된 정책이다. 애초 국토부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완화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고, 값싸고 질 좋은 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이 정책을 부활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10월 1일 정부는 원래 10월로 예정됐던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내년 4월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내년 4월까지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간 곳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게 되면서, 재개발·재건축 61개 단지 6만여 가구는 6개월 이내 분양하면 분양가 상한제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게 된다.

이 외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조건이 당초보다 완화됐다. 또, 정부는 이른바 ‘핀셋 규제’를 한다면서 규제 지역을 ‘동’ 단위로 지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핀셋 규제’가 마치 투기가 심각한 지역들을 집중 타격하는 정책인양 듣기 좋게 포장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규제 지역을 축소하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에 턱없이 부족한 정책에 그칠 것이다.

정부 친화적인 〈한겨레〉 신문이나 일부 여당 의원조차도 “분양가 상한제가 출발도 하기 전에 뒷걸음질부터 했다”고 비판했을 정도이다.

투기 규제의 시급성

국토부장관 김현미는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후퇴가 아니다”라며 뻔뻔한 변명을 하고 있다. 부동산 과열이 우려될 때 정부가 개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 계획이 발표됐을 때부터 보수 언론은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공급이 위축돼 집값이 오히려 오를 것이라는 ‘공급 위축론’을 폈다. 분양가에 상한이 생기면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중단돼 주택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2007년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자 얼마 후 서울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영향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공급 위축론 측에서 드는 사례가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경실련 발표를 보면, 분양가 상한제 폐지로 인한 서울 집값 상승 효과는 자그마치 2억 원가량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오르자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놨다. 그러다 지난해 이맘때쯤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대출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9·13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더불어, ‘미니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 집값을 잡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투기꾼들을 위한 작은 선물에 가까운 정책이었다. 당시 본지는 이런 대책이 투자처를 찾아다니는 넘쳐 나는 유동성을 막기에도, 그리고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한 주거 대안을 내놓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동산 인상이 주춤해진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각국 정부들이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주택난 해결은 언제쯤? 서울 잠실 부동산 중개업소에 인근 지역 아파트·오피스텔 시세가 적혀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역대 정권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승진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결국 서울 부동산 시장의 활기는 9·13 대책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서울 집값은 13주 연속 상승했다. 아파트 거래 건수도 강남3구 중심으로 지난해 수준을 회복했고, 서울과 전국의 집값 상승률 격차는 역대 최고로 벌어졌다(약 15.8퍼센트포인트). 경실련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역대 정권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집값은 정권 초기에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바 있는데, 다시 그 수치가 회복된 것을 보면 최근의 부동산 시장의 추이는 매우 불안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최근 경기 악화와 연결돼 있다. 경기 회복을 위해 금융당국이 기준 금리를 인하하는 등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들을 다시 시행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경향이다.) 또,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하자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부동산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늘고 있다. 그래서 9·13 부동산 대책 등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기여한 미약한 효과조차 흔적도 없이 증발한 듯하다.

정부가 10월부터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런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민의 불만 고조 등을 마냥 무시하기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분양가 상한제 후퇴에서 보듯이, 정부는 또다시 자산 소유자들의 압력에 밀려 정책을 심각하게 후퇴시켰고, ‘문제가 커지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는 태도로 노동자·서민의 고통을 뒷전으로 치부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주거 안정을 위한 대안

분양가가 높아지면 기존 집값도 함께 높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결국 내 집을 마련하려는 노동자·서민이 전반적으로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실수요’와 ‘공급 위축’을 걱정한다면 정부는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노동자·서민에게 값싸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이 대규모로 제공돼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에 타협하면서, 턱없이 부족한 규제로 생색내기 하는 것으로 서민들이 겪는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부동산 문제, 더 나아가 도시의 구조적 환경 전반을 좌우하는 것은 자본가 계급이다. 따라서 주택 문제도 계급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투쟁해야 한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편안한 보금자리가 돼야 할 ‘집’이라는 공간을 상품으로 변형시킨 체제, 그 상품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야만 하는 체제 말이다.

엥겔스가 말했듯이, 부르주아들의 전유물과 투기용 자산으로 전락해 있는 집들을 몰수해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 필요한 노동자·서민·빈민에게 나눠 줄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주택문제는 손쉽게 해결될 것이다. 분양가의 상한이 어떻고 재개발 이익이 어떻고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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