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분담금 인상 반대:
미군이 아니라 코로나 대응 공공의료를 지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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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주한미군 지원금) 협상이 진행 중이다.
애초 트럼프 정부는 지금보다 5배 수준인 50억 달러(약 6조 원)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다가, 최근 조금 낮췄다. 그래도 ‘대폭 인상’이라는 것은 변함없다.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 중 일부를 한국 측이 부담하는 것인데, 최근 미국은 미군 순환 배치와 연합 훈련 비용 등 한반도 바깥에서의 미군 작전 비용까지 한국더러 지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관철시키려 전방위적 압박을 펴 왔다. 심지어 얼마 전 주한미군사령부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4월 1일부터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에게 무급휴직을 시행하겠다고 통보했다.
방위비분담금은 지급 첫해인 1991년 1073억 원에서 지난 30년 동안 매년 인상을 거듭해, 지난해 이미 1조 원을 넘어섰다.
이제는 한반도 바깥에서 미군이 벌이는 작전 비용까지 내라고 하니 부당하기 짝이 없다.
애초에 미군이 한반도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태평양 너머에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미국을 지원해 줄 현지의 동맹과 군사기지망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 한국 등과 동맹을 맺고 이 나라들에 군대를 주둔시킴으로써 패권을 유지해 왔다.
특히 오늘날 주한미군은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선 군대이자, 주일미군과 더불어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사는 평범한 한국인들에게는 안전과 안녕을 위협하는 요소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들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을 더한층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로 내몰아 왔다. 단적으로 미국의 성주 사드 배치는 중국의 반발을 불렀고, 미·중 미사일 경쟁을 부추겨 왔다. 이런 일에 왜 한국이 막대한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가.
방위비분담금에 포함되지 않지만 그간 한국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주한미군을 지원해 온 비용도 상당하다. 가령 그간 한국 정부는 동아시아 최대 미군기지라는 평택미군기지를 조성하고 기지를 이전하는 데 필요한 비용 대부분을 지불했는데, 그 비용이 무려 18조 원에 이른다.
한국은 지난 10년(2006~2018년)간 미국산 무기를 35조 8345억 원어치를 구입해(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표), 세계에서 미국산 무기를 많이 구매하기로 손에 꼽히는 국가다.
국방비 증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얼마 전 국방장관 정경두는 “[올해]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예년보다는 높은 수준의 증가율을 생각하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고 말했다. 지난해 인상률인 8.2퍼센트보다 더 높은 증가율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2019년 물가상승률은 0.4퍼센트다.)
정부는 다만 5배 인상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고 보고,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나친’ 인상을 수용하는 꼴을 보이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정부는 지나친 인상폭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타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가령 국방장관 정경두는 얼마 전 미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와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올해 국방 예산으로 약 430억 달러(50여조 원)를 편성했음을 언급했다. 국방비에 막대한 돈을 투여해 한국이 미국의 패권 부담을 일부 나눠 지고 있음을 부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사태는 정부가 대중의 안전과 건강 따위를 얼마나 부차화해 왔는지를 참담하게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주로 기업주들의 이윤 손실을 걱정하며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할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수천 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실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대기하고 그중 일부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정부는 음압병실 마련하는 데는 고작 300억 원만을 배정했다.
방위비분담금 증액은 대중의 안전과 복지 증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세금을 미국 군대를 지원하는 데 쓰는 것이다. 정부는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부추길 미국의 패권 전략이 아니라 공공의료 확충 등에 돈을 써야 한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을 내는 것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와 관련 있다.
냉전 해체 즈음에 세계에서 미국 경제가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은 크게 줄어, 미국은 독일·일본 같은 경쟁국들이 미국 경제를 빠르게 뒤쫓는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다른 경쟁국을 압도했지만, 미국 지배자들은 패권 유지에 드는 비용을 점차 부담스러워했다.
1980년대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이른바 쌍둥이 적자(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다른 동맹국들에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분담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미국은 한국에도 방위비분담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오늘날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쇠퇴 문제가 더 악화된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딜레마는 전보다 더 깊어졌다. 미국에 유럽, 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서 동시에 자국의 패권을 유지·관리하는 일은 갈수록 힘에 부치는 일이 되고 있다.
최근 뮌헨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이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이란 핵 합의, 미국의 시리아 철군 재검토 문제로 불협화음을 낸 일도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를 반영하는 일이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동맹국들에 돈, 군사력 모두에서 더 기여도를 높여 현 제국주의 질서를 뒷받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