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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해협 파병 결정 안 됐다”?:
문재인 정부의 전쟁 거짓말이 시작되다

대통령 문재인은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관한 질문을 받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면서 “국민 안전”, “원유 수급”, “한미 동맹”, “이란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한겨레〉 등은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파병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당장 결정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파병에 관해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반드시 같을 수 없다”는 외교부 장관 강경화의 발언도 정부가 파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근거로 사용된다.

그러나 정부의 말에 공연스레 기대를 걸고 정치적으로 무장해제돼서는 안 된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반미면 좀 어떻냐”고 말한 노무현은 다음 해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이라크 파병 결정을 발표했다. 미국이 추가 파병을 요청했을 때에도 노무현 정부는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겠다”며 연막을 쳤지만, 불과 한 달 후에 파병을 결정했다. 심지어 파병을 결정해 놓고서는 발표 전날 시민 단체들을 만나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파병을 결정한 후에도 “비전투병만 파병”한다는 둥 대중을 기만하려 했다.

문재인 정부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하는 동안에도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꾸준히 구체화돼 왔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에 파병 준비를 마쳤다. 해군은 아덴만에 파견되는 청해부대의 대잠 무기를 보강했다. 명백히 이란을 겨냥한 무기다. 청해부대 대원들은 작전 지역이 변경될 수 있다는 공지를 받았다.

미국도 계속 한국에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1월 14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호르무즈해협 안정 기여’를 요구했다. 사실상 파병을 요구한 것이다. 외교부 장관 강경화는 이 회담이 (파병을 논의·결정하기 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진전시키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단지 미국의 압력에 밀려서 파병을 준비하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현 제국주의 질서 내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 파병을 추진하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 그간 한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파병 요청에 번번이 응했던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일본이 이미 중동으로 병력을 보낸 터라 문재인 정부도 이에 뒤쳐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언론들은 1월 9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비공개 기자 간담회를 열어 호르무즈해협 ‘독자 파병’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파병 반대 여론과 총선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내부적으로 파병을 결정하고도 이를 공표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도 대중적 반대를 거스르며 이라크 파병을 추진하다 위기에 빠진 바 있다. 게다가 미국은 그때보다 중동에서 더 곤경에 처해 있다.

리얼미터의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파병 반대 여론이 우세하게 나왔다(반대 48퍼센트, 찬성 40퍼센트). 파병 반대 운동이 효과적으로 건설된다면 파병 반대 여론은 더 커질 잠재력이 있고 총선을 앞둔 정부와 여당에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파병 반대 운동을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독자 파병안’은 꼼수

정부는 미국 주도 함대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파병하는 ‘독자 파병안’을 흘리고 있다. 국내 파병 반대 여론과 이란과의 관계를 의식해서인 듯하다. 문재인이 최근 (호르무즈해협 안보에 대한) “국제적 기여”보다는 “국민 안전”을 더 중요하게 고려하겠다는 것도 미국과 이란 갈등에서 미국 편은 안 들 테니 우리 국민을 보호할 군대는 보내자는 메시지일 수 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파병된 한국군이 정말로 미군에 독자적으로 활동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청해부대 군함 한 척이 정보 공유 등 미국과의 공조 없이 그곳에서 제대로 군사 활동을 펼칠 수 있을까? 바다 위에 내내 떠 있을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정박할 항구와 보급 기지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려면 미국과 그 중동 동맹국의 공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독자적’으로 파병된 한국군이 벌이는 군사 활동도 이란을 겨냥할 것이다.

‘독자 파병안’은 미국 편을 든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파병 형식이 무엇이든지 간에 미국의 중동 패권 유지를 위한 전쟁 노력을 지원하려는 시도에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국민 안전’을 위해 파병한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위기의 주범은 미국이다. 미국의 위협과 압박을 지원하는 것은 중동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더 깊숙이 휘말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미국이 이란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면, 자신감이 커진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한 호전적인 정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 또한 더 악화될 수 있다.

1월 8일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 이후 중동 상황이 안정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과 이란이 당장의 전면전을 피한 것은 맞지만, 전쟁 위험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1월 8일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은 결국 솔레이마니 살해, 이란에 대한 제재와 위협을 정당화하고 “최대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위기를 낳은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사태가 꾸준히 악화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점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부터 트럼프는 말로는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군사력을 증파하고 이란에 대한 위협 수위를 높여 왔다.

지금부터 착실하게 미국의 이란 전쟁 위협과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