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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예비경선:
샌더스 열풍으로 드러난 열망이 전진하려면?

미국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선두 가도를 달리고 있다.

샌더스는 2월 23일 네바다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46.8퍼센트를 득표해 권력층 선호 후보 조 바이든(20.2퍼센트로 2위)을 두 배 이상 격차로 따돌렸다. 샌더스가 2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프라이머리(개방경선)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3월 3일 ‘수퍼 화요일’(16개 지역 동시 예비경선)에도 대의원이 가장 많은 거대 지역구 캘리포니아주·텍사스주를 석권하리라는 예상이 많다.

현재 샌더스는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민주·공화 양당 후보를 통틀어 지지가 가장 높다. 일각에서는 샌더스의 승리 가능성이 2016년 민주당 예비경선 때보다 더 높을 거라고 점친다.

샌더스 열풍의 여러 측면을 모두 봐야 한다. 2월 22일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연설하는 샌더스 ⓒ출처 버니 샌더스

민주당 권력층은 샌더스를 저지하려 애쓰지만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조 바이든, 피트 부티지지 등 친기업 후보들은 샌더스와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거대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도 수십억 달러를 선거 광고에 쏟아붓고도 아직 샌더스에 필적하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민주당 지도부는 샌더스를 비난하면 역풍을 맞을까 두렵고, 샌더스 비난을 삼가면 샌더스에 패배할 것이 두려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하고 지적했다.

미국 정보기관 일부도 샌더스 부상을 우려하는 듯하다. 이들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샌더스의 당선을 돕고 있다’는 소식을 흘렸다. 주류 언론들은 이를 일제히 보도했다.(이는 트럼프 공격에 썼던 수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는 푸틴의 간섭 때문이 아니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반감에서 일부 덕을 봐 승리했다. 관련 기사 ‘어쩌다 트럼프 따위가 백악관 주인이 됐나’)

트럼프의 전횡을 되돌리고 복지를 늘리겠다는 공약이 샌더스의 인기에 한몫했다.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 대학생 학자금 대출 전액 탕감, ‘그린 뉴딜’로 친환경 일자리 창출 등. 야만적 이주민 강제 추방으로 악명 높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해체하겠다는 샌더스의 공약도 진보적 대중 사이에 공감대가 크다.

2월 24일 샌더스는 3세 이하 영아가 있는 가구에 일률적 소득 지원, 어린이집 교사 확충 및 고용 안정 등을 골자로 한 보편적 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샌더스는 자신의 복지 공약을 실행할 재정을 부자 증세(부유세 도입)로 충당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미국에서는 상위 0.1퍼센트의 부가 하위 90퍼센트의 부를 모두 합친 것과 엇비슷하다. 따라서 “억만장자는 사라져야 한다” 하고 공공연히 말하는 샌더스의 선전(善戰)은 미국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이 자라는 징후다.

염원

하지만 이것이 그림의 전부는 아니다. 샌더스는 최근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과 인터뷰하며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이 “의료를 사회화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의료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미국에서 서민들이 염원하는 의료 공공성 강화는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샌더스는 자신의 핵심 슬로건인 “정치 혁명”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정치 혁명’이라는 말을 과장하지 말길 바란다. … 트럼프를 저지하려면 이제까지 투표에 참가하지 않던 유권자들이 정치적 과정[투표]에 참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샌더스가 자신의 “정치 혁명”의 수단을 밝힌 유일한 사례인데, 이는 샌더스 지지자들이 “정치 혁명”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에서 노동자 투쟁 지원, 기업 비리 규탄, 트럼프의 이주민 탄압 반대, 여성·성소수자 권리 후퇴 반대 등 캠페인을 적극 벌이는 것을 온전히 담지 않는다.

‘좋은’ 정치인의 선거 승리가 진정한 변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가를 이용해 “기존 체제를 온전히 유지”한 채 개혁을 하려면 기존 체제의 운영자들, 즉 대자본과 긴밀히 얽힌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의 ‘타협’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체제가 가하는 이런 압력에 근본에서 맞서려면 노동 대중의 집단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더스 열풍으로 사회주의가 부상하기를 바라는 좌파들이 유념할 부분이다.

좌파들은 샌더스의 선전이 대중에 불어넣는 자신감·영감·급진화에 주목하면서도, 광범한 변화 염원이 대중행동으로도 표출되고 민주당 바깥에서 그런 대중운동의 구심이 생겨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샌더스가 표상하는 도전이 진정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

한국 언론들은 샌더스가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필자가 지난 기사를 개정·증보하며 밝혔듯, 샌더스가 추구하는 대외 정책은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일단, 문제의 발언 직전에 샌더스는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서야 할 경우가 있다고 보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물론 있다. … 미국의 군대는 세계 최강이다.” 이어서 샌더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과 미국의 동맹들이 위협받을 때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및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다.” 샌더스는 뒤이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도발”에 맞서는 것이 그 사례라고 했는데,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증대하는 것을 우려하는 한반도 사람들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부분이다.

샌더스는 미국의 “팽창주의적 과거”를 문제 삼지만, 나토·유엔 등의 형식을 빈 다자주의적 개입과 미국의 군사력 투사의 대표적 명분인 ‘인도주의적 개입’을 줄곧 지지해 왔다.

샌더스는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던 1999년 당시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가 나토의 이름으로 세르비아를 폭격하는 것을 지지했다. 당시 샌더스는 이렇게 연설했다. “인종 청소, 대량 학살·강간을 자행한 전범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셰비치가 … 평화협정을 어긴 이래, 나는 나토의 폭격을 지지해 왔다. 세르비아 군대를 코소보에서 철수시키기 위해 미국은 [독일, 유엔 등 동맹과 함께]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후 샌더스는 세르비아 폭격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대가 자신의 의원 사무실을 점거하자 경찰을 불러 이들을 체포하게 했다!

샌더스는 상원의원이 된 후에도 그런 입장을 고수했다. 2011년 리비아에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맞선 대중 항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나토의 이름으로 특수부대를 리비아에 파병했다. ‘리비아의 인도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미국 제국주의의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샌더스는 “국제사회의 결의에 따른” 이 파병도 지지했다.

적대적

이런 관점에서 샌더스는 김정은 등 “[미국에] 적대적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트럼프가 준비 없이 김정은을 만나 그럴싸한 사진을 찍을 기회로만 삼았을 뿐 필요한 외교적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강조는 인용자) 라고 덧붙인 것이다. 이 때 “필요한 외교적 노력”이란 대화와 대북 제재를 “병행”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제재 병행’은 미국의 역대 대북 정책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 최고지도자와 회담 의사를 밝히는 것도 트럼프 이전에 (민주당 빌 클린턴을 포함해) 역대 여러 대통령이 한 바였다. 그러나 북·미 대화는 거의 언제나 미국 측의 새로운 꼬투리 잡기, 약속 불이행 등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거듭 뒤틀려 왔다.(관련 글 ‘사반세기의 북핵 문제: 제국주의 체제의 압력이 빚어낸 괴물’) 샌더스의 “병행”은 트럼프 이전 미국 행정부들의 대북 정책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북·미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대북 압박에 있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상대로 한) 제국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고유의 전략에 기초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샌더스가 제시한 “필요한 외교적 노력”에서 기존 미국 제국주의 전략과 두드러지게 다른 함의를 찾기 힘든 것도 이 점과 연관 있다.

샌더스는 현존 제국주의 질서를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 듯하다(이는 국가를 이용해 개혁을 선사하겠다는 샌더스의 전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샌더스의 관점에는 샌더스 지지자들도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일례로 ‘강탈 국가’ 이스라엘을 큰 틀에서 옹호하며 중동 평화를 이루겠다는 샌더스의 구상이 현실적인지를 두고 샌더스 지지자들 안에서는 적잖은 논쟁이 있다. 샌더스가 자신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반대하는 BDS 운동(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투자회수·제재를 요구하는 운동)을 반대하면서도 자기 지지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더 근본적으로, 항구적 평화는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은 물론이거니와 평화협정이나 국제기구 중재 등으로도 이룰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국가 간 갈등(제국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윤 획득을 위한 경쟁적 축적이라는 체제 자체의 논리 때문이지 단지 “국제 사회 협력에 애쓰는 지도자”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샌더스는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꼽은 미국 사회당 창립자 유진 뎁스와도 차이가 있다. 뎁스는 제1차세계대전에 반대하며 미국 지배자들을 “자기들의 특권과 부를 위해 서로 싸우면서도 스스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고 노동자들이 서로를 죽이게끔 하]는 현대판 영주들”이라고 규탄한 급진적 반제국주의자였다.

진정으로 제국주의 갈등을 종식하려면 노동자 대중의 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 운동이 필요하다.

미국과 전 세계 좌파들은 샌더스 열풍에 기대하면서도, 전 세계 노동계급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칠 대외 정책에 관해 샌더스가 보이는 문제도 고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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