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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개정증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
주류 정치인들을 누르고 샌더스가 떠오를까?

2월 5일에 이 기사를 펴낸 후, 미국의 대외 정책에 관한 샌더스의 입장을 보여 주는 여러 정보들이 외신에 공개됐다. 이를 보고 〈조선일보〉 등은 샌더스의 대외 정책 기조가 미국 기성 권력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의 대권에 도전하는 진보 후보로서 문제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정 전 기사는 샌더스의 정치에 관한 평가가 불균형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최신 정보들을 반영해 기사를 개정·증보했다.

샌더스 열풍은 미국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을 가리키지만, 샌더스의 명암을 함께 봐야 한다 ⓒ출처 Gage Skidmore

미국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정치 혁명” 슬로건을 내건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월 3일 아이오와주(州)와 11일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프라이머리(개방경선)* 모두에서 샌더스는 최다 득표했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와 주류 언론들이 전폭 지원한 조셉 바이든은 각 4위·5위로 참패했다.

샌더스는 두 곳 모두에서 바이든의 갑절가량 득표했고, 예비경선 전까지 ‘샌더스 대항마’로 알려졌던 엘리자베스 워런보다 훨씬 많이 득표했다. 선거를 감독한 민주당전국위원회(DNC)가 구설수를 무릅쓰면서까지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결과 발표를 미룬 것에 대해 주류 후보 참패의 후과를 어떻게든 축소하려는 몸부림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이 제기됐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인 1999년 코소보 폭격 지지에 앞장섰고,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 최근에도 바이든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면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더한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바이든 지지는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보다 높다. 그가 미국 권력층의 이익 수호에 앞장서 온 정치 이력 때문일 것이다. 그런 권력층 대변자 면모 때문에, “본선 경쟁력” 운운하는 언론의 찬사가 무색하게도 바이든은 참패했다.

샌더스 다음으로 많이 득표한 피터 부티지지는 인디애나주 소도시 시장 출신으로, 커밍아웃한 젊은 동성애자이다. 트럼프 정부의 성소수자 천대에 진력이 난 사람들 중 일부가 부티지지에 투표한 듯하다.(부티지지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샌더스보다 약 3000표 이상 적게 얻었는데도 민주당의 비민주적 경선 규칙 때문에 대의원을 더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부티지지는 유명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컴퍼니 출신이고, 대기업들과 유착한 철저한 신자유주의자다. 부티지지는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에 반대하고 대북 압박을 통한 ‘북한의 선 비핵화’를 지지하는 등 공약에서도 기성 후보들과 다를 바 없다.

‘진보적 자유주의자’ 워런도 마찬가지다. 워런은 샌더스의 ‘메디케어 포 올’, 대학생 등록금 부채 전액 탕감 등의 공약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약에서 후퇴했다.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워런은 1995년까지만 해도 공화당원이었다.

버니 샌더스의 선전은 미국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을 흘낏 보여 준다. 샌더스의 출마 선언 24시간 만에 100만 명이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한 일, 고액 기부자 한 명 없이 순전히 소액 후원금만으로 2019년 4사분기에 선거비용 모금 신기록을 경신한 일 등은 그 열기를 잘 보여 준다.

특히 청년들과 차별받는 인종 집단 사이에서 샌더스 지지가 높다. 미국 전국 대학생을 상대로 한 1월 26일 여론조사에서 샌더스는 43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2위인 엘리자베스 워런(21퍼센트)의 갑절 이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2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도 샌더스는 사상 최초로 열린 무슬림 당원 모임에서 96퍼센트, 중남미계가 다수인 당원 모임에서 94퍼센트 지지를 얻었다.

샌더스 선거 운동이 주력하는 공약은 전국민 단일건강보험, 연방 최저시급 2배 인상, ‘그린 뉴딜’로 기후 재앙에 적극 대처하기, 사회 양극화 해소 등 미국에 사는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을 반영한 것들이다.(미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소득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이는 미국 대중의 정치 의제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일례로,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 입구 조사에서 참가자 57퍼센트가 “민간 의료보험을 전국민 단일건강보험으로 대체하기”를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꼽았고, 뒤이어 22퍼센트가 기후재앙 대응(‘그린 뉴딜’)을, 17퍼센트가 소득 불평등 문제를 꼽았다(〈로이터〉). 모두 샌더스의 주력 공약들과 연관 있다.

샌더스의 노동자 투쟁 지지 행보도 관심을 끌었다. 샌더스는 지난해 미국 GM 노동자 파업교사 파업 집회들에 참가해 파업 지지 연설을 했다.

열망

기성 정치권과 언론들은 샌더스를 맹공격해 왔다. 그들은 샌더스의 행보와 그를 향한 대중의 지지를 철저히 외면했고, 모욕적인 인신공격을 거듭했다.

그중 가장 비열한 것은 샌더스가 유대인 혐오자라는 비난이다. 2019년 12월 미국 보수 주간지 〈워싱턴 이그재미너〉는 샌더스 선거운동이 “사상 최고로 유대인 혐오적”이라고 비난했는데, 샌더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비판했다는 게 이유였다. 가족들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희생된 유대계 정치인에 대한 이 터무니없는 비방을 기성 언론들은 그대로 받아썼다.

이런 거짓 비방에는 샌더스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실 샌더스의 ‘정치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대중 행동으로 국가를 타도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국가 기구를 활용해 개혁을 달성하는 것(사회민주주의)인데도 말이다.

특히, 대외 정책에 관한 샌더스의 공약은 여러모로 우려스러운데, 세계 최대 제국주의 국가의 대권에 도전하는 진보 후보로서 문제가 상당하다. 이는 샌더스가 미국 국가를 대하는 관점과 연관 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그러나 이조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민주당 권력층은 대중의 염원을 전혀 대변하지 않는다. 이번에 참패한 바이든은 그 대표적 사례다.

‘뼛속까지 자본가 정당’ 민주당은 앞으로도 계속 샌더스 열풍을 공격하고 더 친기업적인 후보를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샌더스의 선거 도전은 많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2016년 예비경선 때도 초반에는 샌더스 열풍이 엄청났지만, 경선이 계속되면서 민주당 주류가 겹겹이 쌓은 높은 견제의 벽에 직면해 끝내 클린턴에 패하고 말았다.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샌더스 열풍은 미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 염원이 광범함을 보여 준다. 이런 열망이 노동자 대중의 행동으로도 표출될 때 미국에서도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트럼프에 맞서 좌파적 대안 쪽으로 견인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집할 구심이 창출되기를 바란다.


‘트럼프 빼고 누구든’(차악론) 괜찮을까?

한편, 2월 5일 열린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의 귀환” 운운하며 97.1퍼센트를 득표했다. 현직 대통령의 재선 출마라는 점을 감안해도 두드러진 몰표였다.

트럼프는 자신이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힘을 찬미하며 미국의 희망찬 앞날을 선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노동계급의 적이자 호전적 제국주의자이다. 트럼프가 말하는 “희망찬 앞날”에는 노동자 등 서민층은 없다. 트럼프의 부상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반동적인 부위를 고무한다.

이런 트럼프에 진력이 난 사람들의 일부는(심지어 좌파 일부도) 트럼프에 맞서 중도 표심을 잡을 “본선 경쟁력” 있는 민주당 후보라면 누구든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차악론).

그러나 정치적으로 버니 샌더스와 친한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미국에는 좌파 정당이 없다. 민주당은 기껏해야 중도 정당이거나, [공화당처럼] 보수 정당일 뿐이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미국 자본가 계급에 기반한 정당으로, 이제껏 노동자를 공격하고, 인종차별을 용인하고 부추겼으며, 제국주의적 호전성을 발휘해 왔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그 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주도한 것도 민주당 정부였다.

트럼프는 그런 기성 양당 정치에 대한 반감에서 일부 덕을 봐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관련 기사: ‘어쩌다 트럼프 따위가 백악관 주인이 됐나’)

그뿐 아니라 민주당 차악론은 대중의 변화 염원과 운동을 민주당에 종속시켜 그 염원과 운동을 좌절시킬 것이다. 이런 일은 민주당이 19세기 노예 소유주 정당에서 20세기 자본가 계급 정당으로 변신한 이래 거듭됐다.

포섭

민주당은 1960년대에 분출한 시민 평등권 운동을 기성 체제 내로 꾸준히 포섭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동지였던 제시 잭슨은 1984년·1988년 두 차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낙마 후 보수 후보 월터 먼데일을 지지하고 변화 염원을 투표소 안으로 주저앉혔다. 그 결과 공화당 전쟁광이자 원조 신자유주의자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 1세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2003년 공화당 대통령 조지 부시 2세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반전운동이 등장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반전 후보를 자처한 하워드 딘이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 도전하고, 권력층 후보 존 케리조차 전쟁에 반대한다면 민주당에 투표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전운동이 민주당의 투표 부대 노릇을 할 것이 확실시되자 민주당은 자신들이 부시보다 미국 제국주의를 더 잘 대변할 것이라고 나섰다. 결국 반전 운동은 분열했고, 부시가 낙승해 재선했다.

한 지배계급 정당(공화당)이 싫다고 다른 지배계급 정당(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우려스럽게도 샌더스는 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직후 “누가 승리하든 트럼프에 맞서 [민주]당이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샌더스는 2016년 예비경선 때도 경선 패배 후 트럼프에 맞서기 위해 주류 후보 클린턴을 지지하자고 호소했지만, 이는 트럼프를 막지도 못했고 수많은 진보 염원 대중의 사기를 꺾었을 뿐이었다.

대중의 변화 염원의 구심이 될 진정한 대안은 차악론이 아니라 독립적 진보 정치에서 나올 것이다.(관련 기사: ‘미국 민주당이 진보진영이 참조할 모델인가’) 그런 점에서 20세기 초 유진 뎁스의 사례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뎁스는 전투적·급진적 전쟁 반대 운동과 노동운동으로부터 등장해 독자적 후보로서 강력한 선거적·정치적 도전을 하고 미국 사회당을 창당했다.

트럼프와 그가 대변하는 사회에 진정으로 맞서려면 아래로부터의 도전이 필요하다. 샌더스 열풍으로 대중운동이 고무되고, 결국 민주당 바깥에서 아래로부터 대중 행동의 구심이 생겨날 때 그런 도전은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샌더스의 대외 정책과 미국 제국주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외 정책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노동계급에 핵심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 정치를 주름잡는 양대 친자본·친제국주의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외 정책이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그 점에서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자신이 ‘반전(反戰) 후보’임을 밝히기 위해 무소속 상원의원이던 2002년 당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표를 던졌음을 거듭 부각했고, 과거의 제국주의 침략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또 샌더스는 자신의 비전은 “팽창주의”가 아니라 “함께하는 번영과 안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좌우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샌더스의 대외 정책은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트럼프조차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샌더스의 입장을 상세히 살펴보면 지배자들과의 차이보다는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샌더스는 “전 세계 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해 미국이 “국제사회의 지도자”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국제사회의 지도자”는 미국 지배자들이 자신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즐겨 사용한 표현이다.

샌더스는 “새로운 권위주의의 축” 중국의 부상을 미국의 최우선 외교적 역점사항으로 꼽고,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명분으로 중국에 무역 압박을 가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는 미국 지배자들의 생각(소위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중동 정책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인 이스라엘에 대한 샌더스의 입장도 문제적이다. 샌더스는 “이스라엘이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단서를 붙이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며, 비록 조건부이지만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에 한동안 계속 둘 수 있다(트럼프가 이전했다)고 본다. 샌더스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천대에 반대하는 BDS 운동(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B)· 투자회수(D)·제재(S)를 요구하는 운동)도 반대한다.

이는 큰 틀에서 ‘강탈 국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는 단서와 무관하게, 샌더스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동맹국들을 지원해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킨다는 미국 지배자들의 기존 노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관련해 본지 웹사이트에 실린 ‘이스라엘, 제국주의, 팔레스타인 항쟁’을 보시오.)

선제 공격

샌더스는 이란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대응해 두 나라를 선제 공격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선 매우 우려스런 주장이다.

이처럼 북핵과 대북 제재에 대한 샌더스의 입장에도 문제는 있다. 샌더스는 북한이 핵 능력을 줄였다는 “검증”을 거치며 대북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지배자들이 거듭 내세웠던 “선 검증 가능한 핵 폐기 후 제재 완화” 방식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북핵 문제의 진정한 원인인 미국의 대북 압박·제재를 (상당 기간) 유지한다는 점 때문에 지난 사반세기 동안 문제 해결에 실패해 온 방안이다. 역사 속에서 거듭 봐 왔듯,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꿔 왔고, 그 때문에 긴장이 완화되는 듯하다가도 다시 고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그 와중에도 계속된 제재 때문에 북한 민중은 끔찍한 궁핍을 겪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샌더스는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 파트너인 남한 정부와 협의”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을 위해 사용하는 지금 상황을 의식한 것이다. 따라서 현 맥락에서 중요한 부분은 샌더스가 “지금 당장은” 주한미군 주둔을 유지하겠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서 두드러진 진보적 함의를 찾기란 힘들다.

샌더스의 대외 정책이 미국 지배자들이 제2차세계대전 이래 취해 왔던 전통적 제국주의 전술과 겹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유럽 동맹국들과의 공조 강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를 위한 개입 군사 지지,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 지지 등.

특히 마지막 입장은 샌더스가 “군사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 것을 무색케 한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오랫동안 내세운 명분이다.

이런 점들은 샌더스가 제1차세계대전에 반대해 비타협적 반전 운동을 건설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대선에 옥중 출마한 뎁스와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계급투쟁에서 자본가 계급을 대변하는 [사실상 하나의 정당인] 민주공화당”이라고 묶어 부르며 독립적 입장을 견지했던 뎁스와 달리, 샌더스가 제국주의 정당인 민주당에 속해 그 주류가 가하는 압박에 타협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샌더스의 대외 정책은 민주당에 갓 입당했던 4년 전보다 나빠진 요소가 많이 늘었다.(특히 중국 문제에서 그렇다.)

국가를 이용해 개혁하기?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의 실제 내용이 자본주의 국가 기구를 이용해 현 체제 안에서 개혁을 실현하는 것을 핵심 (사실상 유일한) 목표로 한다(주류 사민주의)는 문제가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개혁을 성공시킬 주체인 국가가 강력해지는 것이 중요해진다. 국가가 강력해져야 개혁의 동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존재하는 국가는 자본주의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져 발전했고 이 체제를 지배하는 자본가 계급과 긴밀히 연결돼 그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도록 설계돼 있다.(작고한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이를 ‘구조적 상호 의존’으로 설명했다. 이에 관해서는 본지 118호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보시오.)

그리고 미국 국가가 강력해지는 것은(“국제사회의 지도자”)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지배력이 공고해지는 것(제국주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샌더스가 결과적으로 미국 제국주의가 고수해 온 논리를 따르게 되는 까닭이다.

샌더스가 비판하는 “권위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그들의 각축인 제국주의 체제에 진정으로 맞서려면 세계 노동자 대중의 국제적 운동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미국 권력층은 샌더스를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 봤듯 샌더스의 입장이 미국 자본주의에 수용 불가능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일례로 샌더스의 핵심 공약인 전국민 단일건강보험은 한국을 비롯해 수십 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수십 년 동안 시행된 정책이지만, 미국 지배자들은 이를 한사코 거부해 왔다) 샌더스 부상에 깔린 미국 노동자 대중의 기성 체제 거부 정서와 진보적 변화 염원을 우려해서다. 그들은 개혁 요구 자체보다 그 요구가 제기된 맥락(계급의식·세력관계)이 훨씬 중요함을 아는 것이다.

미국과 전 세계의 좌파들은 샌더스 열풍 덕에 극도로 친자본주의·친제국주의적인 미국 공식 정치의 장에 ‘사회주의’가 입성했다는 긍정적 면모만이 아니라 이 같은 정치적 문제점도 함께 유념해야 한다. 둘 모두를 면밀히 살필 때 샌더스 열풍이 가리키는 진보적 변화 염원을 흠뻑 환영하면서도, 샌더스의 정치적 문제까지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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