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휴업으로 강사료 증발:
정부는 방과후학교 강사 임금 보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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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멈추기 위해 우리도 잠시 멈춰요.”
요즘 서울 지하철 역사 곳곳에 붙어 있는 ‘잠시 멈춤’ 캠페인 포스터 문구다. 그러나 임금이나 소득 보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노동자들에게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요구다. 노동자에게 선택지는 무급으로 쉬거나,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콜센터 노동자들이 집단감염된 사례가 후자라면, 나와 같은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전자에 해당한다. 방과후학교 강사는 수업을 한 만큼 학부모로부터 강사료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이지만 정부는 우리를 개인사업자나 자영업자 취급한다.
그래서 코로나19 확산으로 2월 중순부터 남은 수업이 중단되고 3월 개학이 연기되자 약 12만 명으로 추산되는 방과후학교 강사들의 한 달치 강사료가 증발해 버렸다. 게다가 개학이 4월 6일로 재차 연기되면서 날벼락을 맞았다. 이대로라면 5월 중순에나 강사료가 지급될 것이다.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전년도 마지막 분기 방과후학교 수업일수가 짧은 경우도 있어 3개월 이상 무급으로 버텨야 할 강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강사들의 생계비는 강제로 ‘잠시 멈춤’을 당하고 있다. 월세며 휴대폰 요금, 카드 대금, 보험금, 학자금 대출 상환 등 각종 고지서들(즉, 기업들의 돈벌이)은 왜 ‘잠시 멈춤’ 하지 않는지, 납부 독촉 전화가 올 때마다 속만 타 들어간다. (이 독촉 전화를 하려고 또 얼마나 많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고 있을까?)
그래서 두 방과후학교 강사 노조(공공운수노조 전국방과후학교강사지부, 서비스연맹 전국방과후강사노조)는 휴업에 대한 강사료 보전 대책을 마련하고 추경 예산에 해당 재원을 반영하라고 교육부와 교육청에 요구해 왔다.
교육부는 개학을 추가 연기하면서 이번 추경에 편성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약 2500억 원을 코로나19 대응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서 방과후학교 강사 생계 대책은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추경에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일용직 등”에 지원하겠다며 ‘코로나19 지역고용대응 등 특별지원 사업’ 몫으로 2000억 원이 배정됐다. 월 최저임금으로 나눠 보면 약 11만 명에게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방과후학교 강사만 12만 명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배제되는 직종이나 개인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도대체 11조 원이 넘는 ‘수퍼 추경’은 다 어디에 쓰는 것인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월 9일 한국학원총연합회와는 간담회를 했으면서 두 방과후학교 강사 노조의 면담 요구에는 그저 ‘방과후돌봄 담당 연구관’을 보낸 것도 기가 찰 노릇이다. “사교육비를 경감”할 목적으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한다더니(교육부 ‘2020 방과후학교 운영 길라잡이’), 정작 그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외면하고 사교육업체들의 고충은 직접 나서서 들어준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들은 개학이 3월 23일로 연기됐을 때, 보충 강의 등을 통해서 방과후학교의 연간 총 수업시수를 보장하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어 이조차 개별 학교에서 잘 지켜질지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개학이 추가 연기되면서 보충 강의를 할 수 있는 기간이 부족해졌다. 정부 차원의 강사료 보전 대책이 마련되고 재원이 확보돼야 하는 이유다.
강사 책임이 아닌 휴강도 환불
지금과 같은 장기간 휴업은 전례 없는 규모의 일이지만, 사실 방과후학교 강사들에게는 휴업이 그리 낯설지 않다. 툭 하면 방과후학교 휴강을 하고서는 책임은 강사가 지게 한다. 학교 당국은 미리 납부된 수강료 중 휴강일 만큼을 빼고서 강사료를 지급하고서 수강생에게 환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2017년 포항 지진, 2018년 제주 식중독, 매년 찾아오는 태풍 등 각종 재난뿐 아니라 학교 건물 석면 제거 공사, 재량 휴업일, 체험학습, 운동회 등 학교의 여러 일정까지 휴강 사유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노조의 지속적인 요구 등을 반영해 경남교육청은 지난해부터 “강사 본인 귀책으로 인한 결강이 아닐 경우”, 대구·광주·전북교육청은 올해부터 천재지변이나 재난으로 인한 휴강일 경우 환불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방과후학교 길라잡이’에 신설했다. 전북교육청은 이번 2월 휴강에 대해 강사료의 70퍼센트를 교육청 지원금으로 보전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경남교육청은 막상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자 실제 방과후학교 수업을 시작하는 날짜에 맞춰 계약서를 변경하라고 학교들에 지시했다. 코로나19로 휴강한 기간을 계약 기간에서 제외해 신설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꼼수다. 심지어 “3월 한 달은 [강사료를 보전해 줘야 하는 ‘월별 계약’이 아닌] 시수별 계약을 적극 권장”한다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내렸다. (전북교육청도 금액이 훨씬 큰 3월 강사료까지 보전해 줄지 지켜볼 일이다.)
생계 보전 대책 마련하라
이처럼 방과후학교 강사는 실질적으로 학교에 종속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3월 16일 기준 서울지역에서 휴원한 학원과 교습소는 전체의 약 24퍼센트인데, 방과후학교 강사는 교육부의 결정에 따라 100퍼센트 강제 휴업 상태다. 하지만 학원 지원 대책만 있을 뿐 방과후학교 강사 생계 대책은 전무한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또한 방과후학교 강사는 학교가 제시하는 대로 강사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재계약에 대한 불안 때문에 강사료 인상 얘기는 꺼내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강사료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제자리걸음이거나 삭감됐다. 영업을 할지 말지, 상품이나 서비스를 얼마에 팔지 스스로 정하지도 못하는 자영업자라니!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학교와 그 뒤에 있는 교육청, 교육부, 궁극적으로 정부는 방과후학교 강사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서비스연맹 방과후강사노조는 9개월째 노조 설립필증도 못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방과후학교 강사들의 생계 보전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문제가 드러난 이때, 방과후학교 강사에 대한 학교, 교육청 등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안정적 고용 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학교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교육과 돌봄을 말할 수 없다. 8년째 방과후학교 강사로 일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아이들도 안다는 것이다.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