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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케이블 설치 노동자들:
“슈퍼 전파자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회사에서 마스크가 지급되지 않으니, 공적 마스크 2개로 일주일을 버텨야 합니다. 평일 근무 시간에는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 주말에 줄을 서 겨우 구입합니다. 마스크가 부족하니 어떤 때는 면 마스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지부 이승환 지부장의 말이다.

케이블 업체인 티브로드는 지역에 따라 마스크가 지급되는 곳도 있고, 전혀 지급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루에 하나씩 지급되던 곳도 공적 마스크를 이유로 이틀에 한 번 지급으로 축소됐다.

이세윤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지부 정책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작업 특성상 먼지 구덩이에 들어가서 일하는 등 마스크가 바로 망가지고 오염되는 경우가 많은데 마스크가 너무 부족합니다.”

인터넷·케이블 AS기사는 하루에 8~10곳, 많게는 15곳 정도를 방문해 20~30분씩 머물며 작업한다. 방문한 곳에서 확진자를 만날 수도 있고, 자가격리자를 만날 수도 있다. 고객이 기침이라도 하면 등에 식은 땀이 나지만 마스크는 며칠 동안 재활용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작업을 끝낸 후 손을 소독하는 게 전부다.

3월 18일 대구에서 자가격리자의 집을 방문한 노동자가 입에 피를 물고 쓰러져 있는 고객을 발견한 일도 있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이 만나야 할 고객이 얼마나 위독한 상태인지를 알 수 없었다.

티브로드 노동자 박호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 전 동료가 인터넷 설치를 하러 갔는데 알고 봤더니 구로 콜센터 노동자가 자가격리된 집이었고, 재택근무를 위해 인터넷을 설치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LG헬로비전 조합원 중에는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고객이 확진자였다는 연락이 와 격리된 경우도 있었다.

대구 LG유플러스 설치 기사인 권호 씨는 가족이 걱정이다.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옮길까 봐 퇴근하면 옷을 다 갈아 입고, 가족과 다른 방에 지내면서 ‘자가격리’ 합니다.”

이승환 LG헬로비전지부장도 같은 상황을 전했다. “가족에게 옮길까 봐 겁이 납니다. 몸에 약간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집에 들어가지 않는 조합원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슈퍼 전파자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우리가 감염되고 증상이 늦게 나타나면 만나는 고객들에게 코로나를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희망연대노조는 현장직군 노동자에게 보건용 마스크를 하루 3~4개 이상 지급할 것과 작업용 장갑 지급, 확진자가 발생한 건물에의 투입 중단 등을 요구했다.

LG헬로비전 이승환 지부장은 코로나19 사태에도 평상시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본사에서 가이드라인이 내려왔다고 하지만, 정작 하청업체에서는 본사에서 오는 지원이 없다고 합니다. 본사는 하청이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반면, 코로나 상황에서도 영업 실적 압박은 여전합니다. 본사는 하청업체에 D등급을 세 번 받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압박하고, 하청업체는 실적이 낮은 노동자를 징계하겠다고 압박합니다. 그러니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일해야 합니다.”

이세윤 티브로드지부 정책부장은 사측과 정부의 안이한 대처를 비판하며 분노했다.

“회사 매뉴얼은 긴급한 일이 아니면 미루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안 되고 TV가 안 되는 고객들은 급합니다. 그래서 일을 미루라는 건 전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스크가 충분히 공급되는 것입니다.

“회사에는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으니, 식약청이나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해 봤습니다. 우리 같은 노동자가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으니 마스크라도 지급할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특혜’라서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자체는 답도 없습니다.”

최근 LG유플러스 북대구센터는 열이 38도까지 올라간 노동자에게만 검사 후 자가격리 조처하고 다른 노동자들은 계속 일하게 했다. SK브로드밴드는 대구에 코로나19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대구 지역에 인력이 부족하자 다른 지역 인원을 대구로 투입하려고 했다.

노동자들은 안전보다 이윤에만 신경 쓰는 회사에 분노했다. “우리 중 누군가 코로나에 걸려 센터 전체로 확산돼야만 회사가 변하려나요.”

2월 25일 희망연대노조는 대구 지역이라도 작업을 연기하고 필수·긴급 업무만 진행할 것, 근무 인원을 최소화할 것, 비근무자는 자택 대기하도록 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전국적으로는 대면 접촉 최소화, 마스크·손세정제·일회용 장갑 등 위생용품 지급 확대, 고객의 자가격리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조처 등을 요구했다.

이런 조처는 즉각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