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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확충 없이 의대 정원 확대한다?

문재인 정부가 7월 23일 의대 정원 확충 방안을 발표한 뒤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의사 인력이 부족해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의료 공백이 있고, 감염병 대응이나 중증 외상 등 필수 의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필수·공공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여론도 많다. 그러나 정부 계획이 이런 염원을 적절하게 충족시킬 것인가?

경북대병원 음압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출처 경북대병원

정부 계획을 들여다 보면,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앞으로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3458명으로 늘린다고 한다. 매년 400명씩 추가로 배출되는 의사 중에 300명은 졸업 이후 한동안 지역 의사로 의무 복무하게 하고, 50명은 역학조사관이나 중증 외상 등 특수 분야 의사로 양성하겠다고 한다. 또, 향후 바이오-메디컬 분야를 이끌 ‘의과학자’ 50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정원이 40명 정도 되는 공공의대 신설 계획도 내놓았다. 이렇게 늘어나는 의대생들에게는 정부가 전액 장학금을 지원한다.

한국의 의사 수는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인구 1000명 당 활동의사 수를 보면, OECD 평균은 3.5명인데 한국은 2.3명이다(한의사 포함). 인구 10만 명 당 의대 졸업자 수도 OECD 평균은 13.1명인 데 반해 한국(7.6명)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서울의 의사 수는 OECD 평균 수준에 근접한다. 성형·피부 미용 등 사회적 필요에 비해 과잉된 분야도 상당할 것이다. 의사 수 부족뿐 아니라 지역간·분야간 불균형 문제도 제기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전체 의사 수가 적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은 첫째, 규모가 턱없이 적다. 10년 동안 지역 의사 3000명을 배출하는 것으로는 지역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예컨대 경북 지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1.38명인데 이를 한국 평균으로만 높이려고 해도 2600여 명이 필요하다. 전남 지역은 같은 기준으로 1300여 명이 필요하다. 산간 지역과 섬 등이 많아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의대 졸업 후 10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했는데, 대부분의 의사들은 대학 졸업 후 수련의(1년), 전공의(4년), 전임의(2~3년)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이런 교육 기간을 제외하면 ‘의대 졸업 후 10년’에서 실제 의무 복무 기간은 2~3년으로 너무 짧다. ‘지역 의사’라는 호칭이 민망할 정도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서도 은퇴 전까지 30~40년 더 일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지역 의사 대부분은 교육 기간을 마친 뒤 더 나은 수익과 경력, 조건 등을 찾아 대도시 병원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병원도 공공병원이 아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의사 수 자체가 부족한 일부 지역에서는 그나마 도움이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교육 기간에는 지역에 있다가 실력이 쌓이면 대도시로 떠나는 ‘지역 의사’라면, 지역 주민들의 의료 현실은 별반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다.

연간 300명씩 배출되는 인력이 모두 이런 식으로 이동한다면 결국 광역시나 도에 수십 명 수준의 인력이 늘어나는 것이 되므로 지역간 의료 서비스 불균등 해소에 거의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의사가 아닌 다른 의료 인력 증원 계획이 없다. 가령 인력 부족 때문에 날로 악화되는 간호사들의 살인적인 노동강도 문제가 정부 계획에는 빠져 있다.

둘째, 공공병원 확대 계획이 없다. 설사 역학조사관과 중증 외상 등 특수 분야 의사를 양성해도 이들이 제대로 일할 곳이 없다. 지금도 대부분의 중증외상센터나 감염병센터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인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이런 센터들에 충분한 지원을 하지도, 민간병원을 강제하지도 않는다. 또한 상당수가 민간병원에 맡겨져 있는 이런 센터들은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 민간병원 경영이나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경기도 수원 아주대 이국종 교수 사례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 분야로 진출한 의사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직접 공공병원을 짓고 중증외상센터나 감염병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30~4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확실한 신호가 없다면 추가로 배출되는 인력도 쓸모없게 되거나 다른 분야로 이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단 하나의 공공병원 신축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셋째, ‘의과학자 500명’ 양성 계획은 친기업 지원책이다. 보통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인력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바이오 산업을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만들겠다며 지원 정책을 펴 왔는데, 이를 위해 규제자유구역법 제정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왔다. 기업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킨 것이다.

‘의과학자’들은 이 바이오 산업(제약, 의료기기, 화장품 산업)에서 일하게 될 텐데 임상시험 등을 수행하거나 상품을 판매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해당 상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구실을 할 테니 기업 이윤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바이오 산업 제품 개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있으므로 결국 사람들을 기만하는 구실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신약이나 신의료기기의 임상시험에 관한 규제가 크게 완화된 상황에서 해당 기업에 소속된 의사가 임상시험을 하고 그 결과를 홍보하고 상품을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정부 재정으로 교육시킨 의사들을 기업주들에게만 좋은 일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의대 정원 확대 계획에서 이 부분에 가장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사보다 3년 먼저 의과학자가 배출되도록 한다는데 문재인 정부가 누구를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요컨대 정부의 의대 정원 확충 방안은 소리만 요란할 뿐, 감염병 대응이나 의료 공백 해소, 필수 의료 강화에 근본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재의 시장화된 의료 체계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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