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난방공사 자회사 파업:
“맨홀 속에서 혼자 일하다 질식하고 다치면 구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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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 지역난방안전에서 노동자들이 11월 25일부터 전면 파업 중이다. 이 노동자들은 맨홀에 들어가 지역 난방에 쓰이는 열 수송관을 점검·진단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콜센터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지역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데도 용역회사 비정규직 처지였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이 노동자들을 용역회사에서 자회사 소속으로 이름만 바꿔 놓았을 뿐, 실제 정규직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사측은 자회사 전환이 처우 개선과 안전 점검 강화에 이롭다고 주장했다. 2018년 12월 백석역 부근에서 온수 배관이 터지는 사고가 터져 사상자가 발생하자 안전 점검 강화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자회사 전환은 처우 개선이나 안전을 강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전을 강화하려면 충분한 인력이 투입되고 노동자들에게 괜찮은 처우와 안전한 작업 환경이 제공돼야 하는데,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용역업체 시절과 다르지 않은 임금과 노동조건”이다.
자회사의 점검·진단/유지·보수 노동자들(5급)은 각각 248만 원, 216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야간 노동을 밥 먹듯 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고강도 업무를 하는 조건을 감안하면 열악한 처우다. 콜센터 노동자(3급)의 급여는 184만 원 정도로,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직무급제가 도입돼 노동자들의 숙련도나 경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진급은 더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일해 온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일 때보다 임금이 떨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임금 협상을 맺지 못해 2018년도 임금 수준에 멈춰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이를 감안해 7.4퍼센트 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측은 3.3퍼센트가 최대라며 버티고 있다.
이런 열악한 처우 때문에 자회사 전환 이후 퇴사자들이 부쩍 늘었다.
교통사고, 질식, 화상...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
인력 부족은 더 커졌다. 지역난방공사는 “24시간 지역난방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며 밤새 지역을 돌아다니며 맨홀을 점검하는 업무를 추가했다. 그런데 필요한 인력은 제대로 충원하지 않은 채 자회사 근무 체계를 8시간 주간 근무제에서 24시간 내내 업무를 하는 4조3교대로 전환했다.
그 결과는 야간 노동, 업무 강도 강화와 같은 조건의 악화였다. 노조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98퍼센트가 자회사 전환 이후 점검 길이, 점검 개소가 늘었다고 응답했고, 78.5퍼센트는 인력 충원도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이런 조건 악화로 수면장애와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도 크게 늘었다.
“신입 인력이 조금 늘었지만 업무는 훨씬 많아졌어요. 자회사 전환 후 사측은 우리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방두봉 공공운수노조 지역난방안전지부 지부장)
차도 위 맨홀을 열고 들어가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늘 마음을 졸인다. 코 앞까지 자동차 바퀴가 들이닥치는 경험도 한다.
강시구 지역난방안전지부 용인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맨홀 안에서 점검을 다 끝내고 외부로 나가려고 도로 쪽에 손을 집는 순간 자동차가 ‘끼익’ 하고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정말 머리 1미터 앞에 차가 와 있었어요. 제가 운전자에게 소리치자, 운전자도 신호수도 없이 고깔만 세워둬서 몰랐다는 거에요. 이런 일 때문에 저희가 (신호수를 둘 수 있게) 3인 1조 근무를 지속적으로 요구를 했는데 모회사에서는 무시하고 있어요.”
또한 하절기 맨홀 속은 40도가 넘는 폭염이다. 밀폐된 맨홀에서 질식하거나, 뜨거운 물과 열기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위험한 작업환경임에도 단독근무와 2인 1조 근무가 97퍼센트나 된다. 2인 1조의 경우도 한 명이 연차를 내면 혼자서 근무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람 목숨은 하나입니다. 두 개가 아니에요. 이렇게 작업하다가 한 순간에 비명횡사 하면 자회사나 본사나 누가 책임 지겠습니까. 이미 늦는 거에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강시구 용인분회장)
“우리의 노동이 국민의 안전”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문재인 정부의 자회사 전환 정책의 실상을 보여준다.
여전한 간접고용 구조로 인해 자회사에 비용절감 압박이 계속 가해진다. 방두봉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회사 낙찰률이 올해 81퍼센트였는데요. 모회사가 책정한 돈에서 이미 20퍼센트가 줄어서 자회사로 오는 것이죠. 여기에 과업달성률로 한 번 더 깎아요. 과업을 과하게 주기 때문에 달성률이 늘 미달될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이유로 또 대금이 20퍼센트가 차감돼요. 그러면 자회사는 돈이 없어서 처우개선이 어렵다며 책임회피를 하죠.”
또한 용역회사와 마찬가지로 모회사-자회사의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자회사 사측은 모회사가 100퍼센트 출자한 회사라 권한이 없다고 하고 모회사는 자회사에게 비용을 지불했으나 자회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노동자들은 개선은커녕 되려 후퇴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노동자들의 지적처럼 수면부족과 인력난, 저임금에 허덕인다면 안전 점검도 제대로 되기 어렵다. “우리의 노동이 국민의 안전”이라는 노동자들의 말은 완전히 옳다.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