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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회사에서 간판만 바꿔 단 자회사 방안의 실체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한 방안으로 추진한(실상은 평생 비정규직인) 자회사 정책은 시작부터 상당한 비판과 반발을 샀다. 특히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톨게이트 노동자 1600명의 대량 해고 사태와 노동자들의 저항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이미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 사이에도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는 자회사가 기존의 민간 용역회사 때와는 달리 고용이 안정적이고 처우가 개선된 양질의 일자리가 되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용역회사에서 공공기관이 출자한 인력회사로 간판만 바꿔 단 것과 다를 바가 없다.

10월 30일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투쟁 승리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2년 넘게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며 투쟁하는 가스비정규직 노동자들 ⓒ양효영

여전히 불안한 고용

고용에서 어느 정도의 안정성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커다란 맹점이 있다. 적잖은 자회사들이 모회사의 사정 변경(예산 감소나 미확보, 정부 정책의 변화 등)으로 계약 해지가 가능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때 자회사가 가장 쉬운 표적이 됐던 문제가 고스란히 반복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지금 도로공사가 요금 수납원들을 한사코 자회사로 몰아넣는 것도 장차 수납 업무를 없애는 데 직접고용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쟁의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게 한 자회사들도 있다.

경쟁채용도 고용불안을 낳는 요인이다. 최근 인천공항 사측은 이미 자회사에 채용된 노동자들에게 “임시로 고용된 것이며 모두 경쟁채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다시 채용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처우 개선 제약 조건

임금과 처우는 노동부가 발표한 전환자 전체의 평균 인상율(16.3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설 자회사의 경우 용역회사 때보다 관리비와 이윤 비중이 증가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인건비로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이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모회사인 공공기관들이 용역회사 때보다 낮은 낙찰율을 적용하는 것도 임금과 처우 개선을 제약한다. 정부도 수의계약 시 “동종·유사업종 대비 거래 가격을 고려”해 계약을 체결하도록 권고했다. 이렇게 되면 제대로 된 처우 개선은 커다란 제약이 따르기 십상이다.

적잖은 자회사들은 정부가 제시한 최저임금 수준의 ‘표준임금체계’(직무급제)를 도입했다.

사용자들이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근무형태를 바꾸면서 임금을 깎거나 부족한 인력은 충원하지 않아 노동강도가 대폭 강화되기도 했다. 심지어 인천공항은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인력이 감축됐다.

10월 29일 한국자산관리공사 시설관리 노동자 파업 집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 이후 오히려 임금이 삭감됐다 ⓒ양효영

원청 책임 강화는커녕 노동권 제약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말도 완전 거짓말이었다. 원청은 여전히 고용과 노동자들의 처우 전반을 좌우하면서도 사용자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려 한다. 자회사 노조들이 참가하는 원하청 협의회는 대부분 구성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만들어진 곳도 전혀 운영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더 심하게 제약되고 있다. 곳곳에서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이용해 파업권을 제약하는 공격도 벌어지고 있다. 가령,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인 KAC는 노동자들이 자회사 분할 저지와 조건 개선을 위해 파업을 하려 하자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들이댔다. 파업 금지 인원의 비율을 정해야 한다며 수개월간 발을 묶었고, 결국 높은 필수유지업무 비율이 적용됐다.

터져 나오는 불만

이처럼 2년 만에 자회사의 폐해들이 선명히 드러나면서 자회사 중단과 반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온건한 노동계 인사들도 자회사를 둘러싼 갈등이 ‘정규직 전환 정책의 성공적 정착을 되돌리는 위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 점에서 노동운동내 일부가 애초 정부의 자회사 정책을 전면 반대하기보다 ‘좋은 자회사 방안’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안일하게 접근하며 자회사 수용의 문을 열어 뒀던 것은 문제다.

지금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일부 노동 단체들은 제도 개선을 통해 무분별한 자회사 도입을 제한하고 기존 자회사들의 문제점을 개선(처우 개선, 원청 사용자 책임 강화)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자회사가 상당수 도입된 현 시점에서,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등이 자회사 폐해에 맞서거나 지금도 자회사 수용을 반대하며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연결하고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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