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
군사적 긴장 고조시킬 공산 큰 바이든의 아시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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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 발표된 ‘아미티지-나이 보고서(2020년 미일동맹 보고서)’ 내용 등 새로운 소식들을 반영해, 12월 13일에 기존 기사를 증보했다.
최근 중국과 호주 사이에 갈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그동안 호주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 협력해 왔다. 올해 호주 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19 기원 문제를 조사하자고 주장하고, 지난 11월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자 중국 시진핑 정부는 호주산 쇠고기 수입 제한, 보리·와인에 대한 고율의 반덤핑 관세 부과 등 호주에 무역 보복책을 잇달아 시행했다.
물론 바이든 측은 호주를 두둔하며 나섰다. 바이든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제이크 설리번은 미국이 호주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중국과 호주의 갈등은 대리전으로 여겨진다. 동맹 강화를 천명한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두고, 시진핑과 바이든 양측의 신경전이 벌써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바이든과 그의 외교·안보 인사들은 대체로 오바마 정부에서 활동했고 월가와도 긴밀히 연결된 자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표방하며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데 미국의 역량을 집중하려 했다. 바이든이 내정한 내각 인사 중 국무장관 지명자 앤터니 블링컨, 국가정보국장 지명자 에이브릴 헤인스 등은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라는 전략 컨설팅 기업 출신이다. 이 기업은 주로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구글 같은 대기업들에 자문을 해 주는 곳이다.
바이든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을 대외 정책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그래서 바이든 측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업무를 총괄하며 전권을 행사하는 직책(일명 “아시아 차르”)을 신설하려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바이든 정부가 이 직책 아래에 중국 담당, 인도 담당, 일본 등의 동맹국 담당을 맡을 선임 국장 3명을 둘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 4년 동안 무역전쟁 등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빠르게 악화돼 왔는데, 바이든 정부 하에서도 아시아의 불안정은 계속 점증할 것이다.
물론 바이든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 면에서 트럼프 정부와는 다소 다른 행보를 할 수 있다. 미국의 주류 정치인들 다수는 경제 국수주의를 비롯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이 주도해 온 기존 국제 질서를 약화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에 나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2020년 미일동맹 보고서)에도 이런 시각이 반영돼 있다.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는 전前 미국 국무장관 리처드 아미티지와 전前 국방부 차관보 조지프 나이 등이 작성하는 문서로, 미국 주류 안보 브레인들의 아시아 상황 인식과 전략을 보여 줄 뿐 아니라 바이든 정부의 관련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2017년 트럼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결정을 비판하고 TPP의 후신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복귀할 것을 권고했다. CPTPP는 미국이 “역내 경제공간을 탈환”하는 데서 “필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공들인 TPP에서 탈퇴했다.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의 제안은 이 결정을 뒤집어 CPTPP를 미국의 패권 전략에 맞게 새로 고쳐서 재활용하자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다시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며 미국의 전통적 위치를 다시 강화하려 한다. 바이든은 아시아에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질서를 다지고 확대하려 할 것이다.
바이든은 임기 첫 해에 “국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적해 미국 주도 하에 전통적인 서방 동맹들과 인도 등 새로운 “민주주의” 파트너들의 결집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이든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은 부쩍 미국(서방)과 중국의 갈등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포장한다.
그러나 바이든 같은 자가 중국을 비난하며 민주주의를 언급할 자격이 있을까? 그는 경찰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벌여 논란이 되자 몸통 대신 ‘다리를 쏘라’고 했던 자다. 소위 ‘민주주의’ 진영에 포함되는 각국 정상들 중에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무슬림 살해 방조자이자 농민 탄압자 인도의 모디, 브라질의 새로운 극우 대통령 보우소나루처럼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강성 우익 정부 수반들이 있다. 바이든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거대한 기만이자 위선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제국주의(적) 갈등이다. 양측 지도자들의 합리화와 궤변을 비판하며, 국제 노동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한다.
외국기업책임법
바이든은 세계가 1930년대 대불황과 제2차세계대전기의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적과 동맹을 가리지 않고 너무 무분별하게 무역전쟁을 벌였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실제 바이든 측의 대선 공약에는 강력한 보호무역 수단들이 포함돼 있다. 경제 위기가 워낙 심각하고, 코로나19 위기 속에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크기 때문이다.
12월 2일 미국 하원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합의로 ‘외국기업책임법’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회계 조사를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이 시행되면, 3년 연속 조사를 거부한 중국 기업은 미국 증시에서 퇴출될 것이다.
바이든 측도 이런 흐름에 호응할 것이다. 지난 2월 제이크 설리번은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왜 골드만삭스 같은 기업들의 중국 금융시스템 진출이 미국[정부]의 협상 우선순위에 놓여야 하느냐?” 미국 국내 산업에 투자돼야 할 자금이 중국으로 가는 걸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5G 통신,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등 첨단 산업에서 미국이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초당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 바이든도 중국을 배제한 5G 네트워크를 개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미국 의회에 상정된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는 화웨이와 ZTE 등 중국 업체들의 5G 기술이 사용되는 나라에서 미군과 전략 무기 배치에 위험이 없는지 검토하고 배치를 재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따라서 화웨이 장비를 쓰는 한국의 LG유플러스 등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 같다.)
바이든을 비롯한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와 공화당 못지않게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 문제에서 강경하다. 그들은 중국 군사력을 압도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에서의 군사력 전진 배치와 군비 증강에 찬성해 왔다.
바이든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다양한 수준의 다자 군사 협력을 추진하고 이를 강화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일 동맹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동맹이고, 여기에 한국 등이 협력자로 합류하길 원할 것이다.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도 중국의 현상 변경 위협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이런 문제 등에 대응해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돼 다른 우방들을 결집해 [중국과의] “경쟁적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안보대화인 쿼드(QUAD)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확대·강화를 주문했는데, 예컨대 일본을 미국 주도의 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에 포함시켜 ‘식스 아이즈(Six Eyes)’를 결성해야 한다고 했다.
대만해협
물론 바이든 정부가 아시아에서 원하는 대로 중국을 제압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장기 불황 속에 미국의 동맹 진영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불거질 소지가 커진 데다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면 중동 등 다른 지역에도 관여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 견제에 역량을 오롯이 집중하기는 여전히 힘들 것이다.
결국 바이든 정부가 아시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패권 질서를 계속 유지하려면 여러 책략을 계속 동원하는 것은 물론, 때로 확실한 우위를 입증할 모험수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중 갈등의 심화는 아시아의 여러 지역 갈등들을 자극하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아시아에서 돌발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미 트럼프 정부 하에서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기존의 갈등이 커졌고, 대만해협 같은 일부 지역은 꽤 위험한 수준으로 악화됐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에 장관을 보내고 무기를 대거 수출하는 등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사실 트럼프 정부뿐만 아니라, 최근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주류 정치인들의 입장이 강경하게 바뀌어 왔다. 올해 미국 민주당은 정강(정책)의 대만 관련 진술에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기존 표현을 뺐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고 공언해 왔을 만큼 예민한 문제인데, 미국 민주당의 입장도 중국에 대해 이전보다 강경하게 바뀐 것이다. 심지어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는 일본이 미국처럼 대만의 안보를 지원하는 “법적·외교적 의무”를 지게 하자고 제안했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 하에서 대만해협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가장 큰 지역의 하나일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러나 패권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는 미국과 그 도전자들의 제국주의(적) 갈등이 심화되면 그만큼 세계는 정말 위험해질 수 있다.
바이든 정부 하에서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으로 있던 2013년, 당시 한국 대통령 박근혜를 만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 하고 은근히 협박한 바 있다.
앞으로 바이든 정부는 통상·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 견제에 대한 한국의 협력 증대를 요구할 것이다.
중국을 포위하는 다자 군사 협력에 대한 참여도 강력하게 요청할 것이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재개 등이 향후 쟁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악화 속에서 한국 지배자들의 딜레마는 더 깊어질 것이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가 중국이 주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한 후 논란이 일자, 청와대 대변인은 ‘RCEP은 중국이 주도한 협상이 아니고 협상 시작부터 이번 타결까지 협상을 주도한 것은 아세안’이라는 군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한국이 처한 처지가 그리 녹록치 않음이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 브레인과 입안자들은 한국이 미국 편에 서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다 포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도 한미동맹 일변도로 너무 치우치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일 뿐, 한미동맹이 외교·안보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대부분 공유한다.
12월 10일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는 한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전략적 파트너(중국)보다는 한미동맹에 대해 좀 더 관심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적대 관계를 피하기를 원한다면서도, 대외정책의 무게중심이 한미동맹에 있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아시아에서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한일 갈등 해결을 촉구하며 한국에 압력을 가할 공산이 크다.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도 한일 갈등을 아시아에서 협력을 강화하려면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로 꼽았다. 게다가 “[한일] 양측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봐야 한다”며 일본 과거사 문제의 올바른 해결보다는 한·미·일 동맹 강화와 이에 필요한 제반 조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오바마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적극 관여한 점 등을 생각해 보면, 바이든 정부의 견해도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 문재인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문제 등에서 일본과의 타협을 적극 모색하는 것도 바이든 측을 의식한 행동일 것이다. “바이든이 한국, 일본, 미국과의 삼각 전략동맹을 굉장히 중시하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 압박이 있을 것”(민주당 의원 김진표)을 예상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한편, 12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RCEP 등을 견제하기 위해 CPTPP에 가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얘기를 꺼낸 듯하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타협할 가능성을 계속 경계하고 반대해야 한다.
이란 모델
다른 한편, 바이든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호흡이 잘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바이든이 백악관에 들어가도 한반도의 불안정 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바이든도 북·미 관계를 제국주의(적) 경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기 때문이다.
앤터니 블링컨은 2020년 9월 미국 CB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한을 쥐어짜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진정한 [대북] 경제 압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일본 등 동맹국들과 밀접하게 협업하고 중국을 밀어붙여야 한다.”
블링컨이 북핵 문제 해결의 모델로 이란 핵협정을 제시한 바 있어서, 소위 ‘이란 모델’이 언론에서 언급된다.
그러나 블링컨 등은 바로 그 모델을 따라 ‘국제사회’(즉, 서방 제국주의)가 북한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 위에 앉히는 것을 우선한다. 그러려면 “[북한이] 생존이 위험한 수준에 처했다고 믿는 수준까지 강화된, 포괄적이고 지속적이고 가차 없는 국제 압력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대북 압박 강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의 반발을 불러 한반도의 긴장 수준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이란 핵협정이 끝내 휴지조각이 되는 과정이 보여 주듯이, 북핵 합의들은 결국 협상 테이블 바깥의 정세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즉,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잠정적 합의를 맺어도 제국주의(적) 갈등이 낳는 불안정 때문에 그 합의가 오래 유지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전임 정부들처럼 자국의 패권 전략을 관철하려고 북한 ‘위협’을 과장해 이용할 공산이 크다.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내세워 사드의 한국 배치 등을 정당화한 것처럼 말이다.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도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두고 당장에는 북한의 도발 억제와 방어에 주력하자고 했다. 이를 위해 한-미-일 삼자의 정보 및 방어 협력을 증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 핵 문제는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되, 오히려 북한 ‘위협’을 근거로 한·미·일 삼각 동맹의 강화를 도모하자는 의도로 읽힌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로서 바이든 정부를 잘 설득하는 게 아니라, 바이든의 대북 정책에 문재인 정부가 보조를 맞추게 될 공산이 훨씬 크다.
대안
바이든 정부 하에서 북·미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듯하자, 일각에서는 미국과 북한 모두 섣불리 상대방을 자극하지 말고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얘기에 일부 좌파 단체도 영향을 받은 듯, “쌍중단(북핵 동결과 한미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이 내년 상반기에 가장 시급한 조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쌍중단 요구는 한반도 평화 운동 안에서 미국과 북한 양측을 모두 공평하게 비판하는 내재적 논리와 연결되곤 했다. 즉, 자칫 미국의 대북 압박이 당면한 한반도 불안정의 주된 책임이라는 점을 흐릴 수 있다. 북한 핵무기가 아래로부터의 반제국주의 운동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사실이지만, 북핵은 세계 최강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한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한 것이 낳은 효과일 따름이다.
쌍중단 같은 요구를 내놓아야 평화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모을 수 있다고 볼지 모르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주된 책임이 미국에게 있음을 회피하면서 대중 추수적으로 평화주의적 지지를 모으는 것은 원칙에 입각한 것이 못 된다. 무엇보다 막상 대중 행동이 필요할 때 적들의 이간질로 운동이 마비될 수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정부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적이고 능동적인 지지다.
장기 불황과 점증하는 제국주의(적) 경쟁은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곳곳에서 불안정을 키워 왔다. 그리고 이 불안정이 머지않은 미래에 특정 상황과 맞물려 한반도에서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지 모른다.
일관된 좌파라면 반제국주의적·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제국주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문재인 정부와 전략적 제휴를 추구할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지배계급의 친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맞서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이 대안은 반자본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제국주의가 세계 자본주의의 최신 국면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 열강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급진성과 철저한 좌파성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