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대외정책, 무엇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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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정권 인수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새 정부의 대외 정책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4년 동안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불안정에 견주면, 바이든 정부는 이전보다 “예측 가능”한 대외 정책을 펴고 국제 질서 안정을 추구하리라는 기대 섞인 예측이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동맹을 중시하여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설 것이며, 이에 따라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도 다소 감소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바이든 하에서 미국의 제국주의는 트럼프 때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전략
냉전 이후 미국 제국주의 전략의 출발점은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과 사뭇 달라진 상황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 미국은 세계 모든 주요 지역과 쟁점에서 지배적 영향력과 우위를 유지하고, 잠재적 경쟁국들을 (일본·독일처럼 서방 진영 내에서 성장했든, 중국·러시아처럼 진영 밖에서 성장했든) 미국 주도의 질서에 순응하게 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고 특히 군사적 우위는 압도적이지만, 경제적 우위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냉전이 시작된 1940년대 중반에 미국은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했지만, 냉전이 끝날 무렵에는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지금도 그 수준이다(2019년 현재 전 세계 GDP의 약 24.1퍼센트).
반면 미국이 가장 우려한 대로 잠재적 경쟁국, 특히 중국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는 이전에 미국이 누리던 우위에 견주면 많이 줄어들었다. 예컨대, 제조업 생산량은 미국이 중국보다 적다. 2007~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와 뒤이은 장기 불황 때문에 양국의 격차는 더 빠르게 좁혀졌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이 낳은 경제적 충격 때문에 격차는 더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여러 군데에서 나오고 있다. 이를 우려해 트럼프는 방역 기준을 모조리 무시하며 경제 재가동을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미국의 2사분기 경제는 역대 손꼽히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면 중국은 이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을 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군사력을 키우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더 넓은 지역으로 뻗치려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질서에 우호적으로 편입되리라 여겨졌던 중국은 (여전히 미국보다 약하지만) 미국의 최대 지정학적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으며, 장차 미국의 우위를 직접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미국 지배자들 사이에 일으켜 왔다. 이것이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진 진정한 배경이었다.(그럼에도 미국과 중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겨루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과장이다. 관련 기사 본지 330호 ‘미국과 중국은 신냉전에 돌입했는가’)
트럼프, 무엇을 했나?
트럼프는 미국의 기존 전략이 실패한 것을 배경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자기 뜻을 펴려 애쓰면서 미·중 갈등의 수준은 한 차원 높아졌다.
트럼프가 미국의 기존 대외 정책에 제기한 물음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을 미국 주도 국제 질서 하에 편입시킴으로써 고분고분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은 실패했다. 게다가 미국은 이전처럼 국제 질서를 떠받칠 여력이 없다. 따라서 국제 질서 유지를 위한 출혈을 줄이고 미국 고유의 이익을 위해, 특히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
여기서 트럼프의 경제적 국수주의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트럼프는 중국에 (그보다 부차적이지만 유럽에도) 관세 폭탄을 날렸고, 첨단 기술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동맹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트럼프는 미-중 간 공급 사슬 재편을 추구해 제조업 생산 설비를 미국으로 되돌리거나(“리쇼어링”)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로 돌리려 했다.
트럼프는 군사적·지정학적으로도 중국을 압박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 포위를 강화했고, 그것의 일환으로 인도-일본-호주와 4자안보대화, 소위 ‘쿼드’도 추진했으며, 특히 남중국해(와 대만)에서 군사력을 과시했다.
또 트럼프는 대만을 둘러싼 갈등을 더한층 첨예하게 만들었다. 퇴임이 코앞인데도 트럼프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대만을 방문한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특히 서유럽)과의 동맹 관계를 짐짝 취급했고, 러시아 견제는 후순위로 젖혀 뒀으며, 중동 정책에서도 불확실성을 키워 왔다.
미국 대자본가 계급과 기성 정치인들이 보기에 이는 우려스런 질서 교란 행위였다.트럼프가 단 한 번도 지배계급 주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핵심 권력자들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겠다는 바이든을 밀어 준 배경이다.
바이든의 다른 방식
트럼프가 추진한 중국 등 경쟁국 견제하기, 위기에서 미국 자본 보호하기는 미국 지배계급이 대개 공유하는 목표다.
바이든과 그가 대변하는 미국 지배계급 주류는 트럼프와 같은 목표, 즉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의 굳건한 우위를 트럼프와는 다른 방식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 다른 방식이란 미국 주도의 “자유시장 국제주의”(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를 굳히고 그 휘하로 세계를 결속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트럼프가 ‘부족’했던 면에서도 미국의 우위를 굳히겠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미국이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주요 수단이던 나토 같은 국제 동맹 기구를 강화하고, 임기 첫해에 ‘국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해 트럼프 하에서 갈등했던 동맹들과 관계를 추스르겠다고 한다. 이른바 “공정한 무역”을 복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트럼프가 탈퇴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추진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조금 더 넓게 보면, 바이든이 트럼프의 세계보건기구(WHO) 지원 중단, 파리기후협정 탈퇴 등을 비판하고 복귀를 시사한 것들도 “세계 질서 복원” 시도의 일환이다.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함으로써 … 미국이 세계적 규칙을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규칙”을 미국 자본주의에 가장 득이 되게 짜겠다는 것은 물론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내세우는 대표적 쟁점인 기후 재앙 대응을 봐도 그렇다. 바이든은 “강제력 있는 환경 규제 제정을 주도해 … 다른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발목 잡을 수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거명하며 중국의 대외 사업을 견제하고, (미국 기업들이 얼마쯤 손해를 보더라도) 탄소 배출량 1위국인 중국에 더 큰 타격을 입히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이런 일들을 “중국의 잘못된 행동과 인권 침해에 대응하는 미국 동맹들의 공동전선”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선 것이 바이든에게서 두드러지는 기조다.
내년에 바이든이 연다고 하는 ‘국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바로 그런 “공동전선”을 재확립하려는 시도다. 서유럽·일본·한국 같은 기존 동맹국들과 인도 등 새로운 파트너들을 결집시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시도할 것이다.
바이든의 외교·안보 라인 측근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다. 예컨대 바이든 정부 초대 국무장관이 될 앤터니 블링컨은 “러시아에 두드러지게 강경할 것이고, 중국과의 이데올로기적 경쟁이라는 관점을 더 수용해, 대외 정책 기조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라는 기치를 더한층 높게 들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달라진 현실과 불안정
그러나 그런 바이든의 의도가 뜻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그 근저에는 달라진 현실이 있다.
특히 “2007~2008년 금융 시장 붕괴와 그 후 이어진 장기 불황[이] … 세계 자본주의에 선명한 흉터를” 남긴 것이 중요하다.(관련 알렉스 캘리니코스 강연 ‘세계화는 끝났는가?’ 참고.) 미국 지배계급에게 득이 돼 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국제 금융 이동성이 둔화하고 무역 성장세가 둔화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중국(-유럽연합)을 잇는 경제 네트워크는 10여 년 전보다 훨씬 느슨해졌다.
바이든 역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생산 사슬에 문제의식이 있고(“미국의 동맹들이 중국 같은 경쟁국들에게 덜 의존하게 하겠다”), 그래서 보호무역 조처를 추진하려 한다.
예컨대 바이든은 대선 선거 운동에서 미국산 제품 구입 캠페인을 줄곧 옹호했고, 임기 첫날 공공인프라 사업에서 미국산 제품을 우선 구입하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했다. 또, 화웨이 제재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지적 재산권 절도, 산업 보조금 활용에 엄중 대응”해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을 견제하겠다고 했다. 이는 바이든 역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보호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것과 연관 있다.
트럼프 시절에 미국은 주요 동맹들, 특히 서유럽 열강과의 관계가 악화돼 왔다. 유럽 국가들도 위기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는 와중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도모하며 갈등의 씨앗들을 뿌려 왔다. 아무리 바이든이 동맹을 중시한다 해도, 이미 위기를 겪으며 생겨난 불씨들이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TPP도 트럼프 전후로 바뀐 것 중 하나다. TPP는 오바마 정부 시절 중국에 대항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를 미국 중심으로 결속하려고 갖은 노력을 들여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TPP를 탈퇴해 버렸다. 반면 중국은 최근 자신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타결했다.
중동 문제도 그렇다.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 패배 이후 계속된 미국의 역내 통제력 약화는 트럼프 시절을 거치며 더 심화됐다. 이제 러시아·터키 등이 그 공백을 차지하려 나서고 있으며, 국제 금융의 큰손으로 거듭난 걸프 연안국들은 중국과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하고 전통적 동맹 관계를 헤집어 놓아서 중동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키울 기회를 열어 줬다고 비판해 왔다. 바이든 역시 중동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최소화하고 싶어하지만, 그러면서도 터키·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스라엘 등 역내 강국들을 관리하고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러시아가 대표적이다)의 관여를 모두 견제하면서 미국의 통제력을 확립해야 하는 처지다.
이를 위해 바이든은 갖은 외교적 책략을 동원할 테지만, 꼬일 대로 꼬인 역내 상황을 뜻대로 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동에 발목 잡혀 중국의 부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기존의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다.
미국의 상대적 우위 약화가 반전되지 않았고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어려움이 더한층 드러나기도 한 국면에서, 바이든은 세계 주요 지역 모두에서 제기되는 도전에 모두 대응하는 동시에 “트럼프보다 더 효과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미국의 패권 자체는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그 패권이 안정적이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불안정성 속에서 바이든 정부가 취할 조처와 중국 등의 대응이 오가면서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에서 불안정이 더한층 심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