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항쟁 두 달, 사망자 500명 넘어:
최악의 유혈 탄압에도 대중 항쟁이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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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반동적 쿠데타를 벌인 지 꼭 두 달 만에, 군경의 폭력으로 사망한 미얀마인들의 수가 500명을 넘어섰다(3월 30일 현재 521명, ‘버마정치수지원협회’ 집계). 하지만 미얀마인들은 놀라운 투지를 보이며 대규모 항쟁을 이어 가고 있다.
3월 27일 ‘미얀마군의 날’에 군부는 유혈낭자한 탄압으로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 시위대와 행인을 가리지 않은 폭력으로 어린이 4명을 비롯해 최소 100명이 죽었다.(관련 기사 본지 361호 ‘미얀마: 쿠데타 이후 최악의 유혈 진압이 자행되다’)
28일 양곤에서 군대는 진압 중 사망한 20세 청년의 장례 행렬에도 발포해서 최소 12명을 살해했다. 3월 29~30일에도 군대는 양곤 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들을 폭탄을 쏴서 박살내고, 자동차와 주택을 불태우고, 상점을 털어 식량을 쓸어 갔다. 사흘 동안 미얀마 전역에서 약 70명이 사망했다.
군부가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 배경에는, 쿠데타 후 두 달이 지나도록 정국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조바심이 있다. 군부는 전격적 쿠데타로 손쉽게 승리하리라 기대했지만 결연한 대중 항쟁에 부딪혔다. 거리 시위가 매일같이 대규모로 벌어졌고 대규모 파업 물결로 미얀마 경제의 주요 부문들이 마비됐다.
군부는 거리 시위와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려고 갖은 애를 써 왔다.
군경은 시위 조직자를 색출하려고 주택단지를 침탈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다. 파업 조직자들의 가족을 납치해 파업을 해산하지 않으면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군부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업무 복귀 시한을 3월 25일로 두고, 복귀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정부 지원 주택(관사)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했다.
이런 혹독한 상황에서 미얀마인들이 보이는 투지는 놀랍다.
의료·전력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관사에서 나와 파업을 지속하는 대규모 ‘이사 작전’을 벌였다. 이 작전 후 노동자 최소 수만 명이 복귀를 거부하고 파업을 이어 가고 있다. 개중에는 3월 초부터 파업을 지속해 온 군수공장 노동자 수백 명도 있고, 은행 등 민간 부문 노동자들도 있다.
‘미얀마군의 날’ 유혈 진압 직후인 3월 29일에도 양곤·만달레이·사가잉 등지에서 수천에서 수만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청년들은 분노에 차 있다. 양곤 공업지대 흘라잉타이에서 군경의 공격에 맞서 싸운 (이곳에서는 5일 동안 시위대 53명이 사망했다) 한 청년은 현지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저들을 멈추려면 화염병으로는 부족합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해요.”
하지만 아웅산 수치의 정당 민족민주동맹(NLD) 정치인들은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민주동맹이 군부에 맞선 저항보다 더 몰두하는 것은 “국제 사회”의 개입 촉구다. 하지만 그 “국제 사회”의 계산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뒷전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미얀마 군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해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바이든이 부통령을 지내던 2010년에 미국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대거 해제하며 군부와 거리를 좁히고 이를 외교적 성과로 내세웠다. 미국은 미얀마를 대(對)중국 압박에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군부 독재도 얼마든지 보아 넘겼다.
3월 27일 미국 바이든 정부는 한국·일본·호주·영국·이탈리아 등 12개국을 규합해 합참의장 공동 성명을 발표해 미얀마군이 “국제적 표준을 준수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이해관계에 도움이 될 때면 잔혹한 독재자가 자국민을 대량 학살해도 보아 넘긴 사례가 역사 속에 허다하다.(성명에 연명한 모든 나라 군대들에 제국주의 전쟁에 참전해 민간인을 살해한 이력이 있기도 하다.)
바이든 정부는 28일에 미국의 대(對)미얀마 교역을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30일에는 비필수 공무원에 철수 명령을 내리는 등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이 역시 민주주의의 종주국 운운하는 언사와 달리 지정학적 득실을 의식한 신중한 스텝으로 풀이된다. 미국-미얀마 교역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미얀마에 실질적으로 압박이라 보기 어렵기도 하다.
한편, 중국은 그간 말을 아끼긴 했지만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것도 거부해 왔고, 미얀마인 100여 명이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3월 27일에는 군부가 개최한 ‘미얀마군의 날’ 열병식에 대표단을 파견해 군부에 힘을 실어 줬다.
이는 미얀마를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중국의 이해관계와 연관 있다. 미국 전략·정보 웹사이트 〈스트랫포〉의 지적처럼, “중국의 최우선 고려 사항은 [인도양 진출을 위한] 인프라 사업 유지, 경제적 이득, 국경 안전 보장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중국은 누가 승리하든 지지할 태세가 돼 있다.”
한편, 미얀마와 국경을 맞댄 인도·태국도 열병식에 참석해 군부에 힘을 실어 줬고, 이제 군부의 공격을 피해 미얀마에서 탈출한 소수민족 난민 수천 명의 입국을 거절하면서 국경 통제에 나서고 있다. 군부의 총부리 앞으로 사람들을 내몬 것이다.(인도와 태국 모두 지난해에 거대한 대중 항쟁이 벌어진 바 있는데, 이번 결정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각국 지배자들은 미얀마 상황에서 자기 잇속을 도모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3월 31일(미국 현지 시각)에 미얀마 문제가 유엔 안보리 이사회가 예정돼 있지만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예측이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선사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미얀마 군부는 앞으로 기세 등등하게 폭력 수위를 높일 것이다. 이에 맞설 유일한 힘은 대중 자신의 저항에 있다.
대중 스스로의 방위책을 마련해 군부에 맞서야 한다. 이미 몇몇 거리 시위에서는 부상자를 호송하고 사수대에 방패와 화염병 등을 조달하는 자경 조직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조직이 더 발전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파업 노동자들도 정당방위에 적극 나서는 한편 파업을 더 확산시킨다면 군부에 더한층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