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미얀마 군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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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 인정 추구는 저항에 해악적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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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의 폭력이 더한층 고조되고 있다.
군대는 거리 시위 거점과 주택단지뿐 아니라 시위대가 은신처로 삼는 병원·사찰을 매일같이 습격하고 있다. 양곤에서 파업 중인 간호사 한 명은 외신에 이렇게 전했다. “거리는 ‘킬링필드’를 방불케 합니다. 군인들이 주택가에서 총을 난사해 다섯 살배기 아이들도 죽었어요. 시위 참가자를 산 채로 불태우는 것도 봤습니다.” 4월 20일 현재 최소 738명이 사망했다.
지난주 명절 연휴 동안 군부는 시위 조직자들을 체포 1순위로 삼고 습격과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핵심 인물들에게는 현상금이 걸렸다.
군부는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고, 저항의 중심지인 양곤·만달레이 등 대도시에서 운동을 파괴하려 한다.(군부 수반 민 아웅 흘라잉이 4월 24일 아세안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전에 상황을 확실히 장악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시위대가 교차로에 쌓은 거점 바리케이드를 RPG 유탄발사기로 폭파하고 그 자리에 검문소를 세우고, 중상자를 치료하는 의료 인력을 표적 공격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고문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운동은 저항할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
대도시에서 청년·학생들은 군경의 무차별 폭력에 대응해 (대개 오토바이나 스쿠터를 탄) 게릴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야음을 틈탄 추모 행진이나 장례식도 저항의 수단이 된다. 대학생뿐 아니라 초중등 학생들도 동맹 휴업에 나섰다.
보건·은행·운송 부문에서 계속되는 무기한 파업도 여전히 미얀마 경제에 압박을 주고 있다. 양곤에서 파업 중인 은행 노동자 한 명은 외신에 이렇게 전했다. “은행 노동자 4분의 3 이상이 파업 중이라, 송금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항만·트럭·물류는 사실상 정지 상태입니다. 군대는 철도를 가동하려 하지만 기관사 파업 때문에 기차를 운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부는 파업을 공격하고 있다. 탄압으로 파업 노동자들이 모임을 갖거나 시위를 벌이기 어려운데다 파업 지원 조직들이 군경의 집중 공격을 받는 탓에, 노동자 파업이 군부의 핵심 기반인 석유·가스·보석 채굴 등으로는 충분히 번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핵심 부문의 투쟁을 지키기 위해 일부 지방 중소 도시들에서는 무장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만달레이 북쪽의 사가잉주, 수도 네피도 서쪽의 마궤주에서 지역 주민들은 대도시로 가는 군경 병력을 붙잡아 두려고 군 수송대와 지방 경찰서를 습격했다. 몇몇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이 군부대를 일시 점령해,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은 경보병 부대 일부가 국경 지대로 급파되기도 했다.
이런 전투에서 나오는 사망자는 거의 집계되지 않고 있는데, 군부가 시신과 중상자를 가리지 않고 부대로 싣고 가 암매장하기 때문이다. 바고시(市) 시민 무장대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시체의 산을 쌓고 있습니다. 시신 무더기에서 아직 비명이 들릴 때도 있어요.
“저희도 무섭습니다. 하지만 시위가 끝나서는 안 돼요.
“내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저희는 이미 내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라?
상황이 점차 첨예해지는 지금, 민주주의 운운하던 강대국들(특히 미국)은 미얀마가 NLD와 군부가 동거하던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듯하다.
4월 16일 미일 정상회담 공동 선언문이 미얀마가 “민주주의로 속히 돌아가야”(강조는 인용자) 한다고 촉구한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군부와 동거하던 기존의 허울뿐인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비록 군부의 쿠데타가 완승을 거둘 수 없게 된다는 뜻이긴 해도) 군경의 진압으로 가족·친지·동료를 잃은 평범한 미얀마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이는 아웅산 수치의 정당 민족민주동맹(NLD)의 전략과도 맞닿는 데가 있다.
역사적으로 NLD는 군부와 오랫동안 경쟁해 왔지만, 적극 타협하고 동거하기도 했다. 이번 쿠데타가 터지고서도 NLD는 쿠데타 이전의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가기를 바랐고, “국제 사회”의 지지를 그 핵심 수단으로 여겼다. NLD가 비폭력 저항을 매우 중시한 것도 이와 연관 있다.
이런 목표와 전략은 운동에 해가 되기도 했는데, NLD가 파업 노동자 생계 지원 조직을 사실상 볼모 삼아 몇몇 부문 노동자들의 방어적 무장을 자제시킨 바람에 그 노동자들이 지금 꼭 필요한 방어 수단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기도 했다.
군부 쿠데타를 좌절시키고 진정한 민주화를 바라는 대중과 목표가 (그래서 필요로 하는 전략도) 달랐던 것이다.
NLD가 주도해 수립한 임시 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국민통합정부는 군부에 맞선 미얀마인 모두를 대표하는 ‘정통’ 정부를 자처하지만, 출범하며 발표한 헌장에서 쿠데타의 주범인 미얀마 군 장성 집단 ‘탓마도’ 해체도 명시하지 않았다.
한편, 국민통합정부는 소수민족들의 자결권을 보장하는 자신들이 미얀마인 모두를 대표할 만하다고 한다. 그 맥락에서 이들은 4월 16일 발표한 내각 명단에 몇몇 소수민족 출신 인사들을 포함시켰다.(이는 여러 민족이 반군부 투쟁에 동참하는 데서 압력받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인사들은 대개 친NLD 성향의 직업 정치인·지식인들이고, 요직은 대개 버마족 출신자들에게 돌아갔다.
국민통합정부는 수치 정부 시절에 기소된 로힝야족 사람들을 사면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 ‘통합’을 내세울 때 가장 중시한 것은 “국제 사회”, 즉 미국 등 강대국 정부들에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NLD가 임시 정부를 앞세워 운동 안에서 ‘국가’ 구실을 하고, 더 나아가 공식 군대 “연방군”을 창설해 (반(反)군부 진영 전체를 대변·수호한다고 자처하며) 무장력을 사실상 독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군부의 탄압을 물리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에서, 무장력이 NLD에 독점돼 있으면 NLD와는 전략이 다른 운동이 성장하는 데에 커다란 압력(심지어 성장을 억누르는 힘)이 될 수 있다.
평범한 미얀마인들은 계속 심해지는 탄압에도 영웅적으로 투쟁해 왔다. 잔혹한 군부를 타도할 힘은 그런 사람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