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협 반박] 쿠바 반정부 시위는 반혁명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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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쿠바 혁명은 진보적인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혁명이었다. 그러나 혁명 뒤에 수립돼 현재까지 존속해 온 쿠바 국가는 “사회주의 권력”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일당국가다(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이미 60여 년 전에 국제사회주의경향은 다음 같은 입장을 밝혔다. “첫째, 쿠바 혁명은 미국 제국주의의 중대한 패배다. … 둘째, … 이들은 분명 저항에 나선 민중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다.”(‘쿠바 혁명’,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3, (첫 번째 시리즈), 1960∼1961 겨울호)
〈노동자 연대〉 신문은 이런 전통에 따라 쿠바 문제를 다뤘다. 최근의 대규모 시위에 대해서도 ‘쿠바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라 — 미국 제국주의를 경계하면서도’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377호, 2021년 7월 13일.)
그런데 전국노동자정치협회가 이 기사를 반론했다.(필자를 밝히지 않고 노정협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이하 노정협으로 칭한다.) 반론의 요지는 이렇다. 노동자연대가 미국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면서도 쿠바 대중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것은 “제3의 길”이거나 “중립 노선”이며,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반혁명적 본질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우리는 쿠바 사회주의 권력의 굳센 벗들이다 _ 쿠바 반혁명 시위에 대한 제국주의 벗들의 논평을 규탄한다’)
본격적인 반박을 하기 전에 “제3의 길”/“중립 노선”과 “반혁명적”이라는 것은 다른 말임을 지적하겠다. 굳이 한국어 뜻풀이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논리 비약은 노정협의 고질적인 습관이다.
또, “비현실적”인 것이 곧 “반혁명적”인 것도 아니다. 가령, 버니 샌더스(미국 민주사회주의당의 리더)나 제러미 코빈(영국 노동당 전 대표)이 그린 뉴딜을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내놓았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보다 훨씬 급진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서 기후 위기에 대처한다는 건 공상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제안을 반혁명적이라고 치부한다면 구제불능의 종파주의일 것이다.
결국 노정협의 논리인즉, 미국 제국주의를 반대하면 쿠바 대중의 반정부 시위를 반대해야 하고, 쿠바 대중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면 미국 제국주의를 편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쿠바 정부 지지 = 혁명적’, ‘쿠바 정부 비판/반대 = 미 제국주의(의 벗) = 반혁명적’이라는 것이다.
조야한 흑백논리다. 2001년 9·11 공격 직후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우리 편이 아니라면, 모두 테러리스트 편”이라고 했던 것의 거울 이미지다. 테러리스트를 편들지 않으면서도 미국 제국주의와 아프가니스탄 침략을 반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2003년 2월 15일 국제 동시 다발 반전 시위에 참가한 수천만 명의 세계인들을 “테러리스트 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당찮다.(필자는 ‘백철현의 조잡한 진영논리와 흑백논리를 비판한다’는 오래전 글에서 노정협의 조야한 흑백논리를 상세히 비판한 바 있다.)
노정협이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니까, 레닌의 사례를 들어 반박해 보자. 제1차세계대전에서 러시아와 독일이 교전했다. 이때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러시아의 패배를 주장했다. 이것이 독일의 승리를 바란다는 뜻인가? 케렌스키(1917년 2월 혁명으로 등장한 임시정부의 수반)는 그렇다고 하며 레닌을 “독일 첩자”로 몰았다. 그러나 레닌은 결코 독일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키자는, 다시 말해 전쟁 반대와 자국 지배계급 타도를 결합시키자는 “혁명적 패전주의”를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러시아 국가를 상대로, 독일 혁명가들은 독일 국가를 상대로 혁명적 투쟁을 해야 했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회애국주의에 반대해 혁명적 국제주의를 견지했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러시아와 독일처럼 제국주의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노정협은 미국의 봉쇄와 압박을 받는 약소국에서 벌어지는 대중 운동들을 친서방 운동이라는 식으로 매도한다. “리비아, 시리아, 홍콩 등지에서 미제와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지지, 후원을 받는 레짐체인지 시위 때마다 [노동자연대가] 그것을 지지해왔[다.]”
노동자연대가 이 나라들에서 일어난 대중 투쟁을 지지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이 나라들의 투쟁은 우크라이나·조지아·키르기스스탄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 같은 게 아니었다. 리비아와 시리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시리아의 경우) 지역 강국들의 개입과 아사드 정권의 반동 등이 뒤얽혀 혁명이 좌절됐다. 홍콩에서는 중국 본토 정부의 민주주의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노정협은 미국의 봉쇄와 압박을 받는 약소국들에서 대중이 자국 정부에 항의하는 것은 그저 미국 제국주의를 이롭게 할 뿐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미국이 미얀마 군부의 시위 폭력 진압을 규탄하며 미얀마 대중을 걱정하는 척하는 상황에서) 미얀마 대중의 쿠데타 반대 운동을 지지하면 안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노정협 웹사이트에서 미얀마 투쟁 관련 글을 찾을 수 없다. 또, 2000년 세르비아에서 민중 항쟁이 일어나 바로 직전까지 나토의 공습을 받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몰아냈는데, 이 또한 지지하면 안 될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함
노정협은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각 나라 투쟁들의 구체적 맥락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미국을 반대하면 모두 우리 편’이다.
이런 단순화는 제국주의를 ‘미국의 세계 지배’로 환원하는 이론적 오류와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열강이 군사적·경제적으로 경쟁하는 세계 체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양상은 단순하지 않다. 제국주의적 경쟁이 벌어지고(미국과 중국),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이 특정 지역에 경쟁적으로 개입하고(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서구와 러시아의 동시 개입), 제국주의적 국가가 상대적 약소국에 간섭하고(미국의 대북 압박 등), 특정 약소 민족을 억압한다(미국이 후원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억압). 각각의 양상들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는 미·중(또는 미·러) 둘 다 반대, 미국 간섭 반대, 팔레스타인인의 해방 운동 지지 등으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실제 운동을 면밀하게 검토할 것을 강조하며, 흑백논리와 이분법이 아닌 변증법에 따라 “두 전선에서의 투쟁”을 강조했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정부의 쿠바 봉쇄를 규탄”하면서도 “쿠바 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존중할 것을 촉구”하는 놈 촘스키, 알렉스 캘리니코스, 마이크 데이비스, 에티엔 발리바르 등 “세계적 좌파 인사들”의 성명은 설득력 있다.(‘세계적 좌파 인사들의 쿠바 정부 규탄 공동 성명’을 보시오.)
쿠바 사회는 사회주의인가?
노정협은 쿠바를 “사회주의 권력”이라고 주장한다.
피델 카스트로 등 쿠바 지도자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오랫동안 맞서 온 것은 분명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60~1965년에 8차례나 카스트로 암살 공작을 폈다(1975년 미 상원 특별위원회의 보고). 다행히도 CIA의 공작은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의 눈엣가시였다고 해서 쿠바 정권이 사회주의 정권인 것은 아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쿠바 혁명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피델 카스트로가 친미 독재자 바티스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영향력을 축출했기 때문에, 혁명 초기에 쿠바 대중은 새 정부를 지지했다. 새 정부의 국유화 개혁 때문에 상층 유산계급의 대다수가 미국 마이애미로 도망갔다. 그러나 노정협이 주장하듯이, 쿠바 망명자들이 다 반혁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가령 새뮤얼 파버는 쿠바 망명자이면서도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서 자본주의에 맞선 다양한 투쟁을 발전시키려 애써 온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새 정부 하에서 노동자와 농민은 국정에 참여하거나 결정하지 못했고, 그럴 수 있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기관도 없었다. 도시 중간계급 기반의 지식인들로 이뤄진 정부 내 핵심 권력자들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국가 산하 기구로서 노동자가 아니라 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노정협은 “쿠바 정부가 노동자 인민의 권력인데 어떻게 노동자·빈민을 공격”하냐고 묻지만, 이미 혁명 초기에 카스트로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공격했다. 또, 농민들의 토지 분배 시도도 격렬히 반대했다. 그래서 카스트로의 농업 자문이자 좌파 농업경제학자였던 르네 듀몽은 이렇게 말했다. “카스트로 정부가 인민을 위한 정부였을지는 몰라도 인민에 의한 정부는 아니었다. 인민은 자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존재로 취급됐다.”
이것은 단지 “미제의 경제제재” 때문이 아니라, 쿠바 혁명가들이 추구한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카스트로 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는 쿠바 경제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변덕스러운 세계 설탕 시장에 덜 의존하는 것이었다(설탕은 쿠바 최대 농산물이자 주력 수출 상품이었다). 이를 위해 쿠바 경제의 주요 부문을 국유화했다. 그러나 작은 섬나라의 국유 경제로는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국유 기업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미국이 쿠바를 봉쇄하자 쿠바 정부는 소련에 의존하게 됐다. 미국 대신에 소련이 쿠바산 사탕수수를 구매하고 그 대가로 기본재들을 공급했다. 소련과의 경제적 관계는 쿠바의 정치·경제·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쿠바는 소련 사회와 똑같은 틀에 맞춰 사회를 재편했다.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구축됐다.
노정협은 이를 부정하며, 쿠바에 빈민과 부자가 있다는 증거를 대라고 말한다. ‘우리는 쿠바에 빈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쿠바에 빈민은 없다. 그러니 노동자연대가 쿠바에 빈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다(무지에 호소하는 논증). 실제로는 노정협이 입증의 책임이 있는데도, 자기 주장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며 전제에 대한 객관적인 입증을 책임지지 않는 것은 노정협이 논증의 기본 형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피델 카스트로의 말을 인용해 답변해 보겠다. “만약 우리가 수많은 악행, 즉 수많은 강도짓, 비행, 신흥 부자들의 여러 부의 원천을 없애지 못한다면 … 이 나라는 자멸할지도 모른다.”(‘이그나시오 라모넷과의 인터뷰’, 2006년 4월 2일치 〈엘 파이스〉지)
쿠바의 불평등은 혁명 이후에도 존재했지만, 특히 소련 붕괴 후 한층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친 1990년대 고난의 “특별한 시기”에 더 악화됐다. 소득 불평등이 크게 증가했다. 실업이 증가했는데, 특히 육체 노동자들과 흑인들의 실업이 심각했다. “몇 천 명의 학령기 아동들(5~11세)이 구걸을 하거나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아바나 구도심 지역에서 ‘일했다’”(아비바 촘스키, 《쿠바혁명사》, 삼천리, 2014).
반면, 해외 투자자들과 자주 접촉하는 국영 기업 경영진은 부가 늘었다. 달러를 만질 수 있는 관광업 종사자나 소기업주들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는 혁명 이전의 병폐가 되살아났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모두 매매춘 산업에 빠져들었지만, 젊은 여성, 특히 유색 [인종] 여성들이 많았다.”(아비바 촘스키, 같은 책)
노정협은 쿠바를 “사회주의 권력”이라고 옹호하면서 정권에 반대하는 “저명한 쿠바 좌파 인사”는 “노동자연대식 제국주의의 벗들”로 간단히 치부한다. 자기들이 아는 쿠바 좌파는 “고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라울 카스트로”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무지하면 무서울 것도 없다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교만한 것은 좌파의 덕목이 아니다.
카스트로 형제와 체 게바라는 혁명 동지들이었지만, 그들은 1965년에 중요한 정치적 차이로 갈라섰다. 카스트로 형제는 소련의 지원에 쿠바 혁명의 운명을 건 반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의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혁명을 다른 곳으로 확산시키고자 쿠바를 영원히 떠났다.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투쟁을 하다 1967년에 CIA와 볼리비아 정부군에 살해당했다. 게바라의 접근법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근본에 놓는 마르크스의 관점과 달랐지만, 카스트로 형제의 전략과는 더 큰 차이가 있었다.
노정협이 “제국주의의 벗”이라고 멋대로 단정한 프랑크 가르시아 에르난데스는 쿠바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다. 그는 국가 공인 마르크스주의에 도전할 목적으로 2019년 5월 쿠바 아바나에서 레온 트로츠키를 주제로 한 국제 학회를 조직했다.
증원군
동유럽과 달리 쿠바 혁명은 국내에 기반이 있었고 빈곤에 찌든 쿠바 대중에게 숨통을 틔우는 개혁을 일부 제공했다. 그리고 미국의 계속된 압박 때문에 쿠바 정부는 국제적으로 반제국주의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쿠바 정부와 동일시하는 좌파들이 국제적으로 꽤 존재한다. 그들의 일부는 ‘쿠바 식 사회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쿠바에는 중대한 사회 분단(계급)이 존재한다. 최근 쿠바 반정부 시위는 궁핍과 정부 부패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쌓인 고통과 불만이 터진 것이다.
노정협은 “쿠바 시위는 쿠바를 전복하기 위한 레짐 체인지(정권교체)의 일환”이라고 적대한다. 쿠바 시위의 전망을 함부로 예측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노정협처럼 적대감과 두려움(쿠바 권력자들이 대중 운동에 대해 느끼는 감정)으로 볼 게 아니라, 국제적으로 상대적 빈국들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새로운 증원군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