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대다수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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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10월 25일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위드 코로나) 초안을 공개했다. 11월 1일부터 2022년 1월 말까지 3단계에 걸쳐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방역 조처 대부분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 팬데믹 이전 일상으로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위드 코로나 정책을 준비해 왔다. 현재 사용되는 백신들은 2차 접종까지 완료할 경우 치명률(감염자의 사망 비율)과 중증화율(감염자의 중증화 비율)을 상당히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월 25일 현재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은 4000만 명을 넘었다. 2차 접종까지 마치고 2주가 지난 ‘접종 완료자’도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를 넘었다. 1차 접종자가 대부분 2차 접종까지 하는 것을 고려하면 머지않아 전체 인구의 85퍼센트가 접종을 완료할 듯하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방역 조처를 상당히 완화해도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만 믿고 방역 조처를 완화하기에는 불안 요소가 여전히 많다.
먼저, 백신 접종이 감염 자체를 막는 데에 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백신 개발이 완료될 무렵 이미 알려진 바 있다(본지 348호 기사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백신이 아닙니다’). 전 세계 백신 접종자 수십억 명의 경험도 이를 뒷받침한다. ‘돌파감염’으로 알려진 접종 완료자의 감염 확률은 미접종자의 절반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델타 변이의 경우, 백신 접종을 완료해도 주변에 전파할 가능성이 미접종자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방역 완화와 계절 등 다른 요인들이 결합돼 감염이 빠르게 늘어나면 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도 늘어날 것이다. 환자 수가 늘어나면 현재의 보건 체계가 감당하지 못해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이는 모든 방역 조처를 해제한 영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성인 백신 1차 접종 완료율이 90퍼센트에 이르는 영국은 치명률이 0.27퍼센트까지 낮아졌지만(미국은 2.3퍼센트), 이는 계절성 인플루엔자 치명률(0.1퍼센트)의 세 곱절이다. 코로나19의 높은 감염률을 고려하면 전체적 위험은 그보다 더 크다. 최근에는 일일 확진자가 5만 명에 이르면서 매일 100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영국의 보건전문가들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할 수 있는 겨울이 되기 전에 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 조처를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 담당자들은 또다시 병원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질까 봐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중환자 병상과 인력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팬데믹 초기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위드 코로나로 환자가 폭증하는 상황을 대비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게다가 정부는 위드 코로나의 일환으로 경증 환자 대부분을 집에 머무르게 할 계획이다. 감염자 관리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 투입을 줄이기 위한 조처다. 그러나 집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증상 악화에 대비해) 것은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런 부실한 조처들 때문에 어느 순간에 확진자가 폭증할 수 있다. 또, 갑자기 증상이 악화하는 코로나19의 특성상 병원으로 이송도 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줄타기
물론 일부 심각한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호응한 것처럼, 위드 코로나도 압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면 일부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위드 코로나로 얻으려 하는 이득은 무엇인가?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 필요성”을 다음 네 가지로 제시했다. ① 예방접종률 향상, 방역 전략 수정 필요, ② 코로나19 장기화로 민생경제, 의료체계 부담 가중, ③ 델타 등 새로운 변이의 위협과 약 1100만 명의 미접종자, ④ 선행사례 분석시 감염 위험도 고려한 점진적 거리두기 완화 추진 필요.
그런데 ①은 필요성이라기보다는 위드 코로나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고, ③, ④는 ‘단계적’ 조처가 필요한 이유에 해당한다. ‘민생경제와 의료체계 부담 가중’만이 위드 코로나를 추진하는 이유라 할 만한데, 이 문제에 관한 한 방역을 완화하는 도박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고 안전한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비필수 부문의 가동을 최대한 미루고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려 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적게 일하고 최대한 많은 자원을 고르게 분배해 생계를 보호할 것이다. 소득이 끊긴 자영업자들에게는 정부가 생계비를 지원하고 각종 부채 상환을 동결해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큰 부담 없이 버틸 수 있게 할 것이다. 팬데믹 기간 내내 봐 왔듯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해 왔다. 실업을 방치하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필수재를 공급하지 않고 방치했다. 사람들이 ‘위드 코로나’를 차악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보건소 대응인력, 의료 인력 ‘번 아웃’”을 끝내려면 인력을 더 고용하고 노동조건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환자를 집으로 보내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병원 노동자들도 그것을 요구했지 환자를 치료하지 말자고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정부는 어처구니없게도 병원 노동자들을 위해 방역을 완화하는 것처럼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영국처럼 모든 방역 조처를 일시에 없애려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방역을 완화하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실내 마스크 착용은 계속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2월 이후 치료제가 보급되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방역 규제가 모두 해제된 뒤에도 실내 마스크 착용이 잘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런 조처는 집단감염 등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그 책임을 당사자들에게 떠넘기는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높은 백신 접종률과 마스크 착용 등 일상화된 거리두기 조처들 때문에 위드 코로나 이후 감염 추세가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보면 언제든 5차 대유행이 벌어질 가능성은 작지 않다. 이로 인한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풍토병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갈팡질팡하던 세계 여러 정부들은 이제 영국 정부가 나아간 길을 따라가려는 듯이 보인다. ‘일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이나 비교적 후한 실업급여도 없고, 무료 백신이나 무상 치료도 없는 일상 말이다.
이는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수십억 명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또, 백신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새로운 변이의 위험성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영국에서 등장한 새 변이(AY 4.2)가 러시아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영국 NHS의 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 인구의 94퍼센트가 코로나19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이토록 감염자가 많은 것은 단지 백신의 불완전성 때문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음을 뜻한다.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이 모두 접종(회복) 후 6~8주에 최대의 면역 반응을 보이지만 12~15주 차에는 그 수치가 0 가까이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경증 환자들에게서 일관된 면역 패턴을 찾기가 어렵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런 사실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영구적인 면역력을 획득하기가 어렵고 이제 감기나 인플루엔자처럼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 걸리는 병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뜻이다.
물론 거리두기를 더 철저히 오래 한다면 코로나19 감염을 어쩌면 완전히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난 2년 동안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처로 계절성 인플루엔자 균주 중 하나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는 보고가 최근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백신을 빠르게 보급해야 하고 더 많은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각국 정부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결국 위드 코로나 정책은 자본주의 경제(즉, 이윤 체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모험일 뿐, 자연스럽지도 불가피하지도 않은 조처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팬데믹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조처들에 더 투자할 것 같지도 않고, 생계 지원을 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위험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것은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를 끝내지 않으면 요원할 것이다.
백신 패스는 의무적이어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 영업을 재개하는 유흥시설 등 고위험시설에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고위험시설에는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곳들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흥시설 출입에 ‘백신 패스’를 요구하는 것을 백신 미접종자 차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는 일부 ‘행사’나 ‘집회’ 참가자에게도 백신 패스를 요구하겠다고 한다. 이런 조처는 기준이 모호하고 과학적 근거도 불충분해 보인다.
물론 백신 미접종자는 그 자신이 위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확률도 더 높다. 따라서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그들을 차별하는 방식이 돼선 안 된다. 예컨대 이탈리아 정부는 백신 미접종자를 사실상 출근하지 못하게 막아 백신 접종을 강제하고 있다. 이는 차별일 뿐 아니라 백신의 불완전성을 고려하면 권위주의적 억압이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 대부분은 부작용 때문에 접종을 기피한다. 게다가 현재 백신 접종 후 부작용 중 일부는 ‘인과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접종률을 높이려면 정부가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모두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이 끝내 백신 접종을 거부하더라도 이들을 비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만한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처럼 불완전한 백신을 공급한 것은 그동안 백신 개발에 투자를 미뤄 온 정부 탓이다. 그런 정부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할 자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