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 확정:
무역 규제 피하기 위한 그린워싱 꼼수
〈노동자 연대〉 구독
12월 22일 윤석열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발표했다. K택소노미는 친환경적인 경제 활동과 투자 부문을 규정하는 정부 기준이다.
정부가 밝힌 K택소노미의 취지는, 그린워싱을 방지하고 친환경적인 경제 활동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도록 기준을 마련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말이 무색하게도 K택소노미는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오히려 정당화할 내용을 담고 있다.
핵발전이 친환경?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의 핵심은 핵발전을 K택소노미에 새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과도적이고 한시적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기존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고 새로운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까지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력원”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발전은 우라늄을 채굴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화석연료를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는 발전소보다는 적지만 오늘날 광범하게 설치되고 있는 태양광·풍력 발전소에 비하면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방사선을 뿜어내는 핵발전은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K택소노미 개정은 이토록 위험천만하고 환경 파괴적인 핵발전을 친환경적으로 포장해 줄 뿐이다. 기후 위기 대응은 명분일 뿐 앞으로 핵발전을 더 늘리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실제로는 기존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마저 폐기하거나 되돌리고 있다.(관련기사 :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핵·화력 발전 늘리며 온실가스 줄인다는 거짓말’)
최근 유럽연합 등이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환경 규제를 강화해 무역장벽을 높이려 하자, 한국 정부도 불이익을 피하려고 2021년 말 K택소노미를 제정했다. 유럽연합이 유럽 택소노미를 기준으로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예측 속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을 만든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지 않겠다는 정부 기조를 반영해 핵발전은 K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유럽 지배자들은 코로나 팬데믹과 공급망 불안, 유가 인상 등으로 커져가는 기업주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의식해 천연가스와 핵발전을 유럽 택소노미에 최종 포함시켰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주요 선진국들의 기후 위기 대응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핵발전을 늘릴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K택소노미는 기업과 투자기관들의 “자발적 가이드라인”에 지나지 않는다. K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는 사업을 벌이는 기업도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인센티브와 규제를 어느 정도 동반하는 유럽 택소노미보다도 느슨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전혀 없을 수밖에 없다.
걸림돌
이런 조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 전환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가령 천연가스를 포함한 K택소노미가 발표되고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 발행된 ‘녹색채권’의 25퍼센트가 천연가스 발전 사업에 투자됐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해 발행된 녹색채권은 그 절반인 12.7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한겨레〉, 2022년 10월 3일치)
정부가 엄연한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녹색으로 포장하고 투자를 권장한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핵발전까지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되면 재생에너지 투자는 더더욱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K택소노미는 친환경적이라고 볼 수 없거나 논란이 있는 수단들도 포함하고 있다. 실용화 기술조차 개발되지 않은 탄소포집 기술이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미심쩍은 수소 에너지, 바이오매스*도 K택소노미에 포함돼 있다.
윤석열 정부는 시장 원리를 활용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말해 왔는데, K택소노미도 이런 정부 기조와 맞닿아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 기회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협할 기후 위기 대응은 겉치레로만 떠들어 대는 ‘그린워싱’일 뿐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 위기를 멈추려면 윤석열 정부와 주요 선진국 정부들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운동이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