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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도 기후 위기에 책임져야 하는가?

전례 없이 심각한 기후 재난이 노동계급 대중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은 심각한 생계비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 많은 노동자들이 지옥 같은 환경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정부와 기업주들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겠다며 이런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탈탄소 산업 재편을 명분으로 일자리와 조건을 후퇴시키려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핵발전과 LNG발전을 대폭 늘리는 전력수급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4900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산업통상자원부 용역 보고서).

자동차 산업에서도 ‘전기차 전환’에 따라 기존의 내연기관차 부품을 생산하던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등 조건이 위협받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런 책임 전가에 대한 도전으로서 제기됐다. 즉,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산업들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재편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대체고용, 생계 지원금, 재취업 교육, 사회보험 등을 제공하자고 한다.

실제로, 기후 재앙을 막으려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폐기와 재생에너지 전환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이해관계

이 같은 정의로운 전환 요구는 지난 몇 년간 광범하게 지지를 넓혀 왔다. 기후정의 운동이 쌓아 온 성과다.

그럼에도 운동 안에는 여전히 노동자들에게도 기후 위기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적지 않다. 기후 위기에 가장 큰 고통을 받는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비용이 조금치도 떠넘겨져서는 안 되는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이 소비자로서 온실가스 배출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적잖이 있다. 이는 유류세나 전기요금 인상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입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손쉽게 싸고 질 좋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효율적인 재생에너지가 보편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한, 평범한 노동자들은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기후 위기의 공범이기는커녕, 기후 위기의 피해자이자 그에 맞설 투쟁 잠재력이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적잖은 사람들은 화석연료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 산업의 유지로 득을 본다고 본다. 그 분야 노동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우선시해 기후 문제를 외면한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산업 재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의 고용·조건 보장을 확고하게 옹호하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일부 활동가들은 특히 정규직의 임금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화석연료 산업으로 득을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기후 위기의 피해자이고, 기후 위기 대응의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점점 기후 문제로 내몰린다.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74퍼센트는 석탄발전소 폐쇄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자동차 산업 노동자의 82.2퍼센트도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조건이 보장된다면 말이다.

기후와 노동 문제를 대립시키며 이런 노동자들의 절박한 바람을 외면하면, 노동자들을 화석연료 산업 지키기로 내몰고 기후정의 운동의 잠재력을 스스로 약화시키게 될 수 있다.

기후 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노동계급이고, 이들은 이윤 체제를 멈춰 기후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투쟁과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연결돼야 한다. 투쟁의 연결, 상호작용 속에서 노동자들은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계급투쟁

기후 단체, 노동조합, 좌파 정당들의 대다수 간부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으로 주되게 정책적·법률적 수단에 무게를 싣고 있다. 운동 내 정의로운 전환 논의에서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정의당이 국회에 발의한 법률안이 그렇듯, 사회적 대화와 경영참여를 강조하기도 한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상호 협력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녹색 산업 재편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가령 금속노조는 사용자들에게 전기차 생산과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기후 위기 대응에도, 노동자들의 일자리에도, 기업 경쟁력에도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내연기관을 모두 전기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생산에 뛰어든 것은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그래서 전기 생산도 화석연료에 의존하려고 하고,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늦추려 하고, 노동자들에게 인력 감축과 조건 악화를 압박한다.

노사(또는 노사정) 협력을 통해 정의를 설득하겠다며 경영참여나 사회적 대화에 매달리면, 노동자들도 일부 희생하라는 압박을 쉽사리 받게 된다.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투쟁의 힘을 약화시킬 위험도 크다.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계급 타협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계를 거슬러 만만찮게 투쟁해야 한다. 신속하고 과감한 탈탄소 전환을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삶을 지키기 위해서도 말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자 존 벨라미 포스터는 정의로운 전환이 “계급투쟁과 필연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맺어야 하고, “아예 다른 생산양식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노동자들이 자동으로 기후 저항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적 민주주의하에서 정치·경제 영역이 서로 분리되는 듯하면서 노동조합 투쟁은 그 투쟁을 경제적 이슈들로만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 활동은 노조 지도자들의 기자회견 참석이나 의회 로비 정도로 여겨진다. 이런 문제는 흔히 노조와 온건좌파 정당의 정치인들에 의해 강화돼 왔다.

노동조합주의와 정치적 개혁주의에 갇히지 않는 전 계급적인 정치와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건설·쿠팡·중공업·학교비정규직 등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이상 기후 속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은 일자리 상실 위험에 맞서고 있다.

이는 탈탄소 전환 같은 더 큰 변화를 위한 투쟁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런 발전을 꾀하려면 노동자들의 투쟁을 서로 연결시키고 기후정의 운동과 연결되도록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