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戰) 소설의 고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새로 각색한 이 영화는 산업화된 전쟁의 참상을 온전히 보여 준다.
영화는 한 젊은 병사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이 병사의 피투성이 군복은 수선해 재사용하려고 전선에서 후방으로 보내진 군복 무더기에 더해진다. 이 장면은 애국주의 열기에 휩싸인 채 전쟁 기계에 총알받이로 동원된 한 무리 젊은이들의 장면과 교차된다.
불길하게도 앞 장면에서 죽은 병사의 군복이 이 파릇파릇한 신병 중 한 명에게 지급된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다.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처음 영화화된 것은 헐리우드에서였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 배우들이 독일 병사들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1930년에 개봉했는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베스트셀러 독일어 소설이 출판된 지 1년 후였다. 그때만 해도 제1차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의 대학살이 아직 최근의 기억이었다.
왜 지금 리메이크된 것일까? 이번에 개봉한 영화의 독일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영국 시사회에서 밝히기를, 유럽에서 민족주의 정당들과 나치 정당들이 부상하는 것이 영화 제작의 동기였다고 했다.
베르거의 이번 영화는, 제1차세계대전을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복권시키려는 샘 멘데스 감독의 최근작 〈1917〉 같은 시도들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다.
이 영화에 영웅은 없다. 화염방사기·탱크 같은 신무기가 횡행하는 참혹한 현대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연출과 촬영 기법도 훌륭하다. 진창과 유혈 투성이인 전쟁 장면들과 숨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교차된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당시의 애국주의 열기를 그리며 시작된다. 이를 베르거의 영화는 1917년 봄에 시작한 후 1918년 11월 평화 회담으로 건너 뛰는 것으로 각색했다.
다니엘 브륄이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를 연기했다. 에르츠베르거는 이 회담의 독일측 대표로, 이후 암살당하고 훗날 나치에 의해 반역자로 악마화됐다.
에르츠베르거는 독일군이 굴욕적 평화 협정을 거스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깨닫고는, 정식으로 휴전을 선포하는 데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독일군 장군 하나는 독일의 항복에 격분한 나머지 자기 연대의 비참한 상태는 무시하고 종전 바로 몇 분 전에 최후의 자멸적 공격 명령을 내린다. 베르거의 각색은, 독일 극우가 그토록 떠받드는 “대반역” 신화*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그러나 베르거의 각색이 낳은 문제들도 있다. 거의 3년 간 계속된 대학살 이후에도 여전히 입대를 열망하는 10대 무리들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또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가 1917년~1918년으로 바뀌었지만, 영화는 “볼셰비키”와 유럽을 휩쓰는 혁명의 파도에 관해서는 아주 최소한으로만 언급한다. 전쟁을 실제로 끝낸 봉기는 고사하고 독일군 내의 반란에 대해서도 일말의 언급이 없다.
고참 병사 크로프의 멋진 대사도 빠졌다. 소설에서 크로프는, 장군과 각국 지도자들만 나가 싸워야 하는 전쟁이 있다면 자신은 그 전쟁을 지지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각색한 이 영화는 산업화된 현대전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이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