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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세계대전의 진실을 폭로한 영화들②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 2005년, 115분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조국의 승리’를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제1차세계대전에 끌려나갔다. 모든 참전국은 자국 병사들에게 ‘평화의 파괴자인 상대 국가를 박살 내라’고 세뇌했다. 지배계급은 그런 적개심이 군대 사기를 유지시켜 주길 바랐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병사들은 이 전쟁이 전쟁 중에도 호사를 누리는 장군·지배자들만 이롭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반면 전선 곳곳에서는 국가라는 장벽을 넘어 적국 병사들과 서로 우애를 나누는 일이 벌어졌다.

2005년에 개봉한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는 19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영국군, 프랑스군, 독일군 부대가 암묵적으로 ‘휴전’했던 사건을 다룬다. 각국 군대 수뇌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사건은 기록으로 분명하게 남아 있는 실화다.

이 영화에서 한 프랑스 군인은 상관에게 이렇게 항변한다.

“조국이요? 여기서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아요? 하나만 말하죠. 자기 집에서 칠면조나 뜯으면서 명령하는 자들보다 나는 저 독일군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

조금씩 다가간 각국 병사들이 끝내 서로 끌어안고, 함께 노래 부르고, 각자 두고 온 가족의 사진을 보여 주며 눈물짓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다.

위대한 환상 장 르누아르 감독, 1937년, 120분

장 르누아르 감독의 ‘위대한 환상’(1937년)은 독일 포로가 된 프랑스 장교들의 포로수용소 탈출기다.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유대인 출신 병사와 노동자 출신 병사가 만들어 가는 우정, 적국 포로들을 기꺼이 집으로 들여 숨겨 주는 독일 여성, 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프랑스 군인. 감독은 이런 장면들을 통해 살벌한 전쟁 와중에도 국적과 인종, 계층을 초월한 연대를 다뤘다.

영화 제목 ‘위대한 환상’은 ‘제1차세계대전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말을 꼬집는 것이다.

영화 ‘갈리폴리’(피터 위어, 1981년)는 영국·프랑스가 독일의 동맹인 터키와 처참한 전투(갈리폴리 전투)를 벌인 터키의 한 항구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 전투는 5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았다. 영국을 도우려고 파병된 호주군도 8500여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영화는 이 처참한 전투에 참전한 두 호주 청년, 아치와 프랭크의 얘기를 그렸다.

갈리폴리 피터 위어 감독, 1981년, 110분

평소 ‘전쟁 영웅’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아치는 전쟁에 참전한다. 프랭크는 아치를 따라간다. 파병된 곳에서 처음에 두 주인공은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이 둘에게도 전쟁의 참상이 찾아온다. 병사들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살 행위와 같은 진격 명령을 계속 내리는 장교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허무하게 죽어가고 이 둘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달리며 비극을 맞는다.

이 영화는 독특한 구성으로 강한 반전 메시지를 전한다. 감독은 혈기왕성한 두 주인공의 우정을 묘사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함으로써, 전쟁의 잔인함과 비극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조국을 위한 전쟁’이 이들의 희생을 감내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강렬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정지 화면은 미국의 사진 기자 로버트 카파가 스페인 내전 당시 찍은 유명한 사진에 바치는 오마주(경의를 담아, 다른 작가나 감독의 작품을 모방하는 일)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삽입곡 ‘Adagio in G minor’는 영화가 남기는 여운의 깊이를 한층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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