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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호 씨의 정부 ‘상생임금위원회’ 참여:
노골적인 정규직 양보론이 낳은 퇴행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악 추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2월 2일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상생임금위원회는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상생임금위원회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직을 맡고, 윤석열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동개악의 밑그림을 그린 여러 학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발족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고용노동부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지난해 ‘정의당 10년 평가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던)이 여기에 함께하기로 했다.

(한석호 씨가 노동운동에 영향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상생임금위원회 참여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노동부도 한석호 씨 참여를 두고 특별히 노동계가 참여했다고 내세웠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악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노동계 쪽과도 협의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노동개악이 “공정성”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는 데 이용하려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당초 노진귀 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한국노총과 상의한 뒤 최종 고사했다. 한국노총은 “(상생임금위원회는) 노동시장 임금격차 해소를 빌미로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상생으로 포장한 대기업이윤사수위원회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석호 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정의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의 구색 맞추기에 협조해 들러리를 서려는 셈이다.

한석호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주변의 찬반 의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 소득 3000만 원 이하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높이기 위해 참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것을 위해 재벌과 양대노총 등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제기하겠다면서 말이다.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선한 의도를 내세우지만, 상생임금위원회 참여나 사회적 대타협 제안은 그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좋은 제안을 해도, 들러리 기구에서 뭘 얻을 수 있겠는가? 한석호 씨 개인의 ‘사회적 명망’을 세워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비현실적

그동안 한석호 씨는 거듭 “상층노동의 과도한 임금 인상 욕구를 가라앉혀야 한다”, “돌팔매를 맞더라도 목청껏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싶[다]”고 주장해 왔다. 대기업 정규직이 저소득 노동자들을 위해 임금을 양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석호 씨가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은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득이 될 게 없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면 그 돈이 고스란히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어느 기업이 정규직 임금을 깎았다고 그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지 않고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들에게 준다는 말인가? 애초에 정규직 임금 삭감의 목표가 뭐겠냐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를 줄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윗돌을 빼서 아랫돌 괴는 게 아니라 상향평준화여야 한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는 나머지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꺾어 투쟁을 분열시키고,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다. 정규직의 양보(투쟁 회피)를 손에 쥔 사용자 측은 비정규직의 양보를 압박하기도 더 쉬울 것이다.

반대로,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한 부분의 승리가 다른 노동자들에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단결 약화

그동안 한석호 씨는 정규직의 임금 양보가 연대의식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규직 임금 양보론은 특히 노동계급 내부를 이간질해 각개격파 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공격에 맞서는 데 상당히 무기력하다.

대기업 정규직이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열악한 조건에 책임이 있다고 보면, 두 노동자 부문의 이해관계를 연결시키고 투쟁을 연결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단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투쟁의 김만 빼는 효과를 낸다.

정규직 양보론은 노동자 몫을 늘리기는커녕 줄어든 파이를 놓고 노동자들끼리 아옹다옹하게 만든다. 이는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만 낳는다.

정규직 양보론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거나 투쟁을 자제시키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는 (진정한 문제인) 투쟁 회피적인 보수적 대기업 노조 지도부들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준다.

물론, 활동가들은 노동조합의 부문주의적 한계를 넘어 미조직·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함께 개선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것은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울 때 얻을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연대 의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공동의 적(사용자)에 맞서 단결해 싸울 때 발현될 수 있다. 그럴 때 정부와 사용자들에 맞서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지킬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석호 씨의 퇴행은 그저 우연한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정규직 특권론을 수용하는 정치가 어떻게 노동자 양보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석호 씨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노동운동의 기존 분열을 이용하려는 우파 정부와 협력하는 것으로까지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