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법치 내세운 윤석열의 노동개혁 ─ 무엇을 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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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월 1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윤석열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듭 “노동개혁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며 강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화물연대 파업을 종료시킨 이후 탄력을 받아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발족시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신자유주의 노동개혁의 밑그림을 내놓았고, 고용노동부가 본격 추진에 나섰습니다.
윤석열의 노동개혁은 착취율을 끌어올려서 노동자들에게 경제 위기의 고통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장기 침체를 배경으로 커져 가는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이윤과 국가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구체적으로 내놓은 정책들은 직무성과급제, 연장근로시간 단위 확대, 노조의 부당행위 신설, 파업시 대체근로 확대 등입니다. 이것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두 가지 목표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노동조건을 후퇴시켜 노동자들의 임금몫을 줄이는 것입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없애려는 것이나 추가 근무를 해도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노동시간 유연화 모두 임금 억제 효과를 냅니다. 파견 대상 확대는 간접고용 비중을 늘려 더 많은 노동자들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몹니다.
다른 하나는 집단 행동을 제약해 고통 전가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려는 것입니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의 확대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파업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탄압해, 노동자들이 가장 효과적인 투쟁 수단인 파업을 택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노조의 관행을 단속하겠다는 것도 집단 행동으로 얻어 냈던 비공식적 양보들을 법치의 이름으로 회수하려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냉전 시절 미국의 악명 높은 태프트-하틀리법을 본떠서 아예 사용자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규정을 신설하려고 합니다.
청년·비정규직에게 공정한 개혁?
윤석열은 이런 개악을 흔들림 없이 전진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급 전체를 한꺼번에 상대하면서 일련의 노동개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이간질해서 각개격파하려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이 청년 세대와 여성,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악화시키는 양극화 주범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양극화가 자본과 노동 사이에 있다는 것은 몇몇 지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 내의 임금 격차보다 기업 임원과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훨씬 큽니다.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고 있는 반면 많은 노동자들은 부채에 시달립니다.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한 것은 1997년 경제 공황 이후 정부와 사용자들 자신입니다. 그들은 기존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강요하고 신규 정규직 채용은 줄였습니다.
물론 노동계급 내부 격차를 줄이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전반적 처지를 보면 그 방향은 상향 평준화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단결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남성 노동자 때문에 여성 임금이 낮다거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간질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정부의 비난과 달리, 대기업 정규직과 나머지 노동자들은 제로섬 관계가 아닙니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기업·하청 노동자들의 조건도 그 영향으로 동반 상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정규직 임금 억제는 사용자들에게만 이로울 뿐 청년·비정규직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직장 개념이 흐려진 요즘, 청년들은 연차가 늘어나면 임금이 느는 연공급제보다 차라리 직무급제가 더 낫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격차가 줄면 저연차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당장은 임금이 약간 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연차와 경력이 쌓일수록 올라가는 생애 최고 임금은 연공급제에 비해 크게 낮아집니다. 2018년 서울시가 발표한 직무급제 모델에서는 생애 최고 임금이 호봉제의 절반 이하였습니다.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라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고 고착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무기계약직이 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직무급제를 도입했는데, 평생 최저임금 수준이었습니다.
직무급제가 도입된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저연차 청년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본급 인상률은 하향 평준화되거나 제자리이고, 직무/직책 수당은 관리자들의 성과 평가에 좌우됐기 때문입니다(〈서울경제〉, 2022년 6월 30일자).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노동자간 경쟁을 부추겨 단결을 저해하는 효과도 냅니다. 작업장에서 단체행동을 약화시키고 그 자리를 개인별 성과와 보상으로 대체하려는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은 “임금이 투쟁으로 오르는 거 아니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는 노동자들이 단결된 투쟁으로만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문제에 대해서도 세대와 남녀를 이간질합니다. 가령 정부는 워라벨을 추구하는 20~30대 청년들에게는 자유롭게 노동시간을 선택하는 유연근무제가 적합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의 선택권이 고용주에게 있다는 건 알바만 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연장근로시간 단위를 연간으로 확대하면 사용자는 원하는 대로 특정 기간의 노동시간을 더 대폭 늘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들쭉날쭉한 노동시간 때문에 일상을 계획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소득 감소로 불안정성이 더 커집니다.
정부는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해 획일적인 노동시간 규범은 낡은 것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라고 해서 사용자의 관리와 통제 없이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이 마음대로 앱을 껐다 켰다 하며 스스로 노동시간을 통제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앱을 끄고 오래 접속하지 않으면 일감 배정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장시간 일하게 됩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규제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절실한 요구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으로 대기업 정규직 ‘기득권’을 깨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계급 전체의 삶을 악화시킬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투쟁에 공권력 투입을 압박했던 것이나 최저임금 인상을 거의 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미조직·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은 윤석열이 공정의 이름으로 대기업 정규직의 기득권을 타파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가 세대, 성별, 고용형태 등으로 노동자를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려는 것에 맞서 단결해 투쟁해야 개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윤석열의 법치주의가 뜻하는 바
윤석열 정부가 중요하게 내세우는 또 다른 키워드는 “법치주의”입니다.
정부는 맨 먼저 노조 회계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산하 조직이었다가 제명된 건설연맹의 간부 비리 사건을 기회로 노동조합 전체를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정부가 직접 나서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의 일환입니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노동조합 자체를 불인정하고 파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법치를 내세워 노동조합 내부 운영을 규제해 단체행동에 제약을 가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안팎 인사들이 노동개혁 모델로 삼으려는 영국 대처 정부가 취했던 조처이기도 합니다. 대처 정부는 노조 회계 관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파업 시 사전 찬반투표와 노조 임원 선출 절차 등을 법제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전 찬반투표 없이 단행된 파업이 불법화됐고, 노조원이 투쟁 중 받은 벌금을 노조 재정으로 지원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근 TV조선은 전국공무원노조가 해고자들에게 지급해 온 생계비의 소득세 탈루를 문제 삼으며 이런 방향의 포석을 깔고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하다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겪게 된 조합원을 노조 재정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집단 행동과 단결은 약화될 것입니다.
정부는 법치주의를 내세워 노동 관행들도 표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는 건설 현장의 임금, 고용 관련 관행이 집중 공격 대상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격려금, 휴식시간 연장, 근무시간 중 노조 모임, 빠른 퇴근 등 현장 노동자들의 힘이 센 작업장에서 볼 수 있는 관행들이 이미 문제가 돼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노동 관행은 오랫동안 노동 현장에 정착돼 온 것인데, 사용자들은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행을 없애고 싶어 합니다. 이윤에 타격을 준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부와 사용자들은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공갈 협박에 의한 금품 갈취”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는 초과 근무와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대가로 사용자들이 지불해 온 일종의 성과급입니다. 건설 경기가 잘 나갈 때는 노동자들을 달래 공사를 빨리 진행시키려고 지급했던 것이 경기가 후퇴하는 상황에선 부담이 된 것입니다.
좌파는 노동조건을 보호해 온 관행을 부당한 것으로 매도하는 정부와 사용자의 공격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관행을 없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어떤 관행들은 현 상황에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하므로 좌파는 부문이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점에 비춰 판단해야 합니다.
노동조건 공격에 반대하면서도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한다는 원칙에 서면, 정부와 사용자에 단호히 맞서면서도 노동운동이 자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들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가령,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는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맞서고 건설 현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조건 개선의 적용 확대보다 조합원 우선을 배타적으로 내세운다면, 노동자 간 경쟁과 반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기에 갈등이 증대할 수 있고, 이주노동자처럼 더 열악한 노동자들 배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노동관행 같은 까다로운 문제에 잘 대처해야 정부와 사용자의 공격에 제대로 맞설 수 있습니다. 노동자 부문 간의 분열을 뛰어넘지 못하면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는 저항 능력이 심각하게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때로 대규모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1996년 말 민주노총은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2주간 최대 38만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을 일단 유예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사정위원회에서 통과됐습니다.
성과연봉제와 해고 요건 완화가 박근혜 퇴진 운동에 부딪혀 좌절된 것은 또 다른 사례입니다. 철도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폐지 투쟁이 박근혜 퇴진 운동의 발판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임금체계 개편 등은 문재인 정부 들어 지속 추진됐습니다.
이 투쟁들은 비록 약점과 한계가 있었지만, 대규모 노동자 투쟁으로 노동개악을 일정하게 저지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현재 노동운동 측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에 대해 우려하고 비판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투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민주노총 산하의 주요 노조들은 7월 시기 집중 파업 참여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조건 개악을 부문이나 사업장별로 대응할 문제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조 재정과 기구에 대한 공격에는 열의 있게 맞서기도 하는데, 그런 공세가 항상 투쟁을 자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섣부른 파업이 노조 재정과 조직을 불안정에 빠뜨린다며 보수성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처 정부의 노조 통제 강화에 대한 영국 노조 지도자들 대부분의 반응이었습니다.
노동조합 내 일부 좌파는 노동개악은 노조마다 해당 사안과 이해관계가 다르고 추진 일정도 상이해 투쟁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며, 노조법 개정 같은 입법화 요구를 모아서 투쟁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의 각개격파 전술을 그냥 두고 보자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부문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며 투쟁을 서로 연결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일부 부문이 격파 당한다면, 하반기에 입법화를 강제할 동력은 어디서 나오단 말입니까.
좌파는 어렵더라도, 노동자 부문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고 단결해서 싸워야 한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조와 정치단체의 좌파 활동가들 상당수가 지난 수년 동안 일종의 정규직 특권론을 수용하면서 정부의 이간질에 맞서 저항을 조직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가령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하기를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호봉제 혜택은 소수 정규직만 누리고 중소기업·비정규직 다수에는 해당사항도 없는데, 임금체계 개편 반대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이는 임금 억제가 주목적인 윤석열의 노동개악 앞에서 철저하게 무기력한 입장입니다. 또 정부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하기를 회피하는 노조 지도자들을 정당화해 줄 뿐입니다. 노조 지도자들 상당수는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하기보다 직무 평가에 참여하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다중 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노동개악을 추진하려 합니다. 이를 저지하려면 정부의 이간질에 맞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정치가 절실합니다. 혁명적 좌파가 이를 제공해야 합니다.
윤석열에 대한 반감은 광범합니다. 윤석열 퇴진 운동이 수개월 지속되고 있는 한편 노동계급은 난방비 폭탄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생계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혁명적 좌파는 이런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